퇴원하고 잠시 건강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내과적인 문제가 가라앉았을 뿐 근골격계 통증은 여전했다. 당시 썼던 일기를 보면 온통 통증에 관한 기록뿐이다.
5월 2일, 닭껍질 튀김이 먹고 싶어서 멀리까지 산책을 갔다가 돌아올 수 없어서 버스정류장 벤치에 누웠다. 사람이 많아서 창피했다. 5월 4일, 허벅지를 두르듯 쑤시는 통증이 다시 생겼다. 내일이 두렵다. 5월 6일, 이상한 다리 통증이 있고 허리는 아팠다가 안 아팠다가 한다. 여름이 오는데 집에만 있어야 해서 슬프다.
그리고 5월 9일, 감염내과 외래. 이전에 입원했을 때, 입원 기간이 짧아 정밀검사했던 부분은 외래로 결과를 보자는 얘기를 들었었다. 별생각 없이 진료실에 가서 앉았는데, 선생님이 말했다.
ANA 수치가 높습니다. 자가면역 질환일 가능성이 있으니, 앞으로는 류마티스내과에서 진료를 보셔야겠습니다.
나는 전에도 ANA 수치가 높아졌던 적이 있지만, 항상 약양성이었다. 어떤 자가면역 항체에 문제가 생겼는지 정밀검사를 해도 이상이 없었다. 그래서 놀라운 얘긴 아니었다. 이걸 말씀드리자, 선생님이 곤란한 듯 말했다.
보통 1:80 이하를 약양성이라고 하는데, 환자분의 수치는 1:640 입니다. 이 정도면 아주 높은 수치입니다.
그렇군요…. 나는 통증에 지쳐서(병원 진료를 보려면 대기를 해야 하고, 대기를 하려면 아주 오래 앉아있어야 한다) 알겠다고 답하고, 서류를 받아서 바로 류마티스내과로 갔다. 다행히 맨 마지막 순서로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잘 끼워 넣어주시니 감사하군.
류마티스내과 선생님은 구면이었다. 이전에 섬유근육통의 통증으로 이런저런 병원을 전전할 때 와서 약을 받아간 적이 있었다. 내가 마지막 순서였고 이미 진료 마감시간을 넘긴 뒤라, 선생님은 초주검이 된 상태로 나를 반겼다.
우리 예전에 본 적 있네요?
네. 섬유근육통으로요.
감염내과에서 오셨고요.
네. ANA 수치가 높다고 해서요.
선생님은 한참 내 차트를 들여다보더니, 책상에서 책자 하나를 꺼내 펼쳤다.
이게 ANA 수치가 높아졌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불명확한 이유로 높아졌다가 사라지는 경우도 많고요. 그중 일부가 류마티스 질환으로, 나머지는 비류마티스성 질환으로 높아지는 경우입니다.
분명 불명확한 임상증상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은 그래프를 보면서도, 나는 익숙하고 공포스러운 병명에 먼저 눈이 갔다. 선생님은 아주 나른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내 증상을 물었다. 나는… 여기저기 아픈 부위를 있는 대로 털어놓았다… 머리 어깨 무릎 허리 다리 손가락… 파스 없이는 생활이 안 되고… 전 우울증이랑 수면장애도 심하고요… 만성적으로 소화불량에 최근에는 어지럼증이….
루푸스… 일 수도 있습니다.
아닐 수도… 있고요.
관절에 변형이 없어서 류마티스 관절염은… 아닐 것 같지만.
검사해 봐야… 정확히 할 수 있고요…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은 금방이라도 스러질 것 같은 말투로 그렇게 말하곤, 수십 가지 정밀검사를 지시한 뒤 나를 내보냈다. 꽤 길었던 진료가 끝나자, 대기실엔 아무도 없었고 건너편 진료실은 불이 거의 꺼진 채였다. 종합병원 선생님들 정말 고생하시는구나.
채혈실도 마감이라 다음 날 와서 피를 뽑아야 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2주. 피 말리는 기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