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병원에 도착하자, 내가 평소 알던 응급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풍경이 보였다. 권태로워 보이는 간호사들, 텅텅 빈 베드, 그나마 몇 있는 환자는 주취자와 노인이었다. 얼마 기다리지 않고 의사를 만나볼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균형장애가 증상이었기 때문에, 우선 뇌 CT와 뇌 MRI를 찍어보겠다고 했다. 뇌 MRI 비싼데. 걱정이 앞섰으나, 검사에 동의를 하고 병원에 들어왔기 때문에 일단 찍기로 했다. 엄마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실려 CT, MRI 촬영을 마쳤다. 이 병원은 왜 보호자에게 휠체어를 밀게 하는 건지…?
1시간쯤 걸려 검사 결과가 나왔다. 응급실에서 찍는 응급 CT와 MRI는 당장 뇌에 터진 부분이 있는지 없는지만 알 수 있다고 했다. 당장 문제가 생긴 부분은 안 보이지만, 혹시 모를 위험을 위해 주말 동안 입원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러고 나서 월요일에 정밀검사를 하자고.
엄마와 나는 고민했다. C병원은 처음 와보는 병원이었다. 원래 가려다가 신경과 당직의가 없어 빠꾸를 먹은 A병원, 그곳에 류마티스내과부터 비뇨기과, 이비인후과, 내과, 신경외과 등 진료를 봐온 모든 기록이 있었다. 심지어 거긴 소아과부터 다니던 병원이다.
갑자기 여기서 새로운 진료기록을 만들어봤자, 어차피 A병원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당장 응급수술이 필요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면…. 그렇다고 퇴원을 하자니, 주말 동안 다시 어지럼증이 심해져 응급실을 찾아야 할까 봐 두려웠다. 결국 주말 동안 '지켜보기 위해' 입원하기로 결정했다.
다 늦은 저녁이 되어 입원 수속을 완료했다. 지난달 입원했을 때, 5인실에서 소음으로 잠을 못 잤던 기억이 있어 2인실로 들어갔다. 귀마개 좀 하고 자면 되지 뭘 유난인가 싶을 수 있겠지만, 나는 7년째 수면제 없이는 단 하루도 잠을 못 잘 정도로 심한 불면증을 앓고 있다….
사진이 없어 올리는 이튿날 아침 병원 밥. 맛없었다.
2인실 메이트는 할머니였다. 인사를 드리고 입원복으로 갈아입자, 간호사가 와서 입원 안내를 해주었다. 아무리 많아봤자 내 또래거나, 나보다 어려 보이는 간호사가 이런저런 병력과 신상정보를 물어보았다. 성실하게 답했다. 직업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아파서 쉬고 있다고 답하자, 간호사가 말했다.
와, 부러워요. 저도 좀 아파서 쉬어보고 싶어요.
아니 환자한테뭔 소릴 하시는 거예요 지금. 저 지금 허리 아파서 침대에 제대로 앉아있지도 못하는 거 안 보이나요. 저 휠체어 타고 들어왔다고요. 지금 제 병력을 다 들었잖아요.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은, 내가 너무 부러워서 눈도 마주치기 싫은 사람은요. 바로 당신처럼 평범하게 일하고 자기 밥벌이를 하는 내 또래라고요. 부러우면 나랑 바꿀래요? 퇴사하고 환자복 입고 편하게 쉴래요?
순간 속에서 화가 울컥했으나, 난 화가 난다고 화를 내는 사람이 못 되었기 때문에… 푹 쉬니 좋다고 웃어넘겼다. 간호사는 내 속도 모르고 비슷한 소리를 몇 번이나 했다.
체중을 재고 소변 검사 컵을 제출하고 침대에 누워서, 까맣고 앳된 간호사의 얼굴을 떠올렸다. 밤새 스테이션을 지키며 병실에서 ‘푹 쉬는’ 환자들을 보고 그는 부럽다는 생각을 했을까.
그 간호사는 아파서 무언가를 못 해본 경험이 있을까. 원치 않아도 쉬어야 할 때 어떤 심정이 되는지 알까. 앞으로 알게 될 일이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운 좋게도, 평생 본인의 몸을 본인이 제어할 수 있다고 믿고 살아간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아니면 무언가에 소홀해서 아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러므로 무언가를 잘못하지도, 무언가에 소홀하지도 않은 자신들에게는 이런 불행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믿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마주치면 양가감정이 든다. 한편으론 어떤 몹쓸 병에 걸렸으면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것도 복이니 쭉 그리 건강하게 살았으면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