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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난 Sep 30. 2024

똑바로 걷지 못해 응급실에 갔다


5월 11일 오후. 나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카페에서 식혜를 마시고 있었다. 외식은 사치인 허리 상태였기 때문에, 간만에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고 보통 사람처럼 친구와 대화하는 무척 기뻤다.


1시간 정도 대화를 하고 일어나려던 순간. 갑자기 몸이 뒤로 휘청거리며 넘어갔고, 나는 의자에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어? 몸이 왜 이러지. 다시 일어나려 하자, 누군가가 나를 뒤에서 잡아당기는 듯 저절로 몸이 뒤로 넘어가서 똑바로 설 수가 없었다. 나는 벽에 기대어 간신히 일어섰다.


이석증인가? 의심했지만, 익숙한 회전성 어지러움이 아니라 균형을 잡을 수 없는 이상한 어지러움이었다. 뇌질환이 아닐까, 건강염려증 환자답게 겁이 더럭 났고 친구는 병원을 가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은 토요일. 이미 병원 진료는 전부 마감되었을 시간이었다. 집에 가서 쉬어볼까 생각도 들었지만, 카페를 나서 제대로 걸으려고 하자, 균형이 잡히지 않고 몸이 자꾸 뒤로 쏠려서 친구의 부축 없이는 걸을 수 없는 상황임을 알게 됐다.


그럼 나 응급실까지만 데려다줄래?


친구는 흔쾌히 승낙했다. 다행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종합병원 응급실이 있었고, 나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뚫고 친구의 팔을 붙든 채 응급실로 향했다. 도착해서 익숙하게(!) 접수하고 환자분류소에 들어가 증상을 설명했다. 몸이 저절로 뒤로 넘어가요. 균형을 잡을 수가 없어요.


간호사분은 뇌질환을 의심하는 여러 질문을 했다. 말이 어눌해지지 않았느냐거나, 어디 감각이 무딘 곳은 없냐거나. 그런 징후는 느껴지지 않았다. 원래 방사통 때문에… 하체 감각이 항상 이상했기 때문에… 새로 이상해진 부분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괜찮은 것 같다고 답했다….


그렇게 분류소에서 (휠체어에 실린 채로) 나와 기다리는데, 아까 그 간호사분이 돌아나와 나에게 말했다.


지금 신경과 선생님이 안 계세요. 다른 병원으로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119에 전화해보시면 안내해주실 거예요.


이게 말로만 듣던 의료파업의 여파인가. 난 대기실 의자에 앉아 119에 전화를 해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119에서는 신경과 진료를 볼 수 있는 근처의 병원을 알아보고, 지금 해당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구급차를 보내겠다고 했다.


구급차 안에서 구급대원분이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다. 주변에서 신경과 진료를 볼 수 있는 병원을 찾는 중이었다. 멀지 않은 거리에 병원이 한 곳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응급실에 들어오는 대신 조건을 내걸었다.


환자분, 여기는 검사를 거부하는 환자는 받지 않는다고 해요. 검사에 전부 동의하시겠어요? 동의하실 경우에만 이송이 가능하세요.


난 아프면 당연히 검사를 하는 것이지… 대체 누가 검사를 거부하나 싶었다. 괜찮다고 말하자 차가 출발했다.




병원에 도착해도 어지럼증은 전혀 나아지지 않아서, 나는 휠체어를 타고 안으로 실려갔다. 사지가 멀쩡(?)한데 남이 끌어주는 휠체어에 타니 기분이 이상했다. 응급실에 들어가자 베드를 한 자리 내어주고, CT용 대바늘을 꽂았다. (이때 꽂았던 주사자국은 흉터가 되었다….)


그때까진 미처 몰랐다. 검사에 동의해야만 병원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게 무슨 뜻인지, 왜 구급대원이 몇 번이나 동의 여부를 확인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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