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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난 Oct 21. 2024

장삿속으로 유명한 병원에 입원한 후기


지난 주 브런치를 쉬면서 생각해봤다. 왜 내 글이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게 느껴지는지. 두 가지 이유가 떠올랐다. 첫 번째, 몇 년 전 섬유근육통이 한창이던 때와 비교하면 고통의 강도가 덜 하다. 그래서 괜한 일로 엄살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글을 쓰는 게 좀 창피하다. 두 번째, 글을 쓰는 게 창피하다보니 내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고 있었던 사건 위주로 전달하게 됐다. 그러니까 글이 재미가 없다.


그렇다면 감정을 잔뜩 담아서… 아파서 이것도 못 하고 저것도 못 하고 그래서 억울하고 죽겠고 이런 글을 써야 재미있을 것인가? 애초에 재미란 건 뭘까… 모르겠다. 어쨌든 지난 15화 남짓의 글은 별 재미가 없었다. 의미도 없었다. 아니, 이석증 같은 질병 키워드로 검색한 사람들에겐 조금은 의미 있을지도…?


요즘 심리상담을 받는데, 내가 모든 일에서 가치와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 큰 문제점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러니까 가치롭지 않은 행동을 하면 항상 죄책감을 느끼고, 이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안절부절하는 것이다. 나는 내 행동에 정당성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근데 내가 요즘 쓰는 글은 그 당위를 부여받지 못 한 기분이다.


그러나! 어제 보험 서류 정리를 하며 이 병원에 대한 분노가 차올랐기 때문에, 오늘 쓰는 글은 이 분노를 다스리는 데 의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지난 이야기를 읽고 오셔야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https://brunch.co.kr/@hwannan/51

https://brunch.co.kr/@hwannan/52




2인실에서 나는 종일 잤다. 허리가 아파 앉아있기 어려웠던 이유도 있지만, 약이 독해서 종일 잠이 왔다. 수면제를 달고 살 정도로 잠을 못 자는 사람이었는데, 낮잠을 마구 자는 게 이상하다 싶었다. 퇴원하고 처방전을 받고 나서야, 내가 평소 필요시 약으로 먹는 디아제팜 알약을 하루 세 번이나 먹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한 알만 먹어도 불안이 확 가라앉고 차분해지는 약인데 그 세 배 용량을 먹었으니 종일 존 게 당연했다.


입원 당시에도 이상해서 무슨 약인지 물어보았지만, 상세한 복약지도를 받지 못 했다. 그냥 어지럼증에 좋은 약이에요, 라는 설명만 받았을 뿐이다. 왜 내가 먹는 약이 뭔지 알려주지도 않는 거지? 간호사라는 인간이 환자한테 아파서 쉬는 게 부럽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


너무 급작스럽게 입원했기 때문에 매점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려고 했는데, 매점이 하루에 딱 4시간만 연다고 한다. 같은 병실의 할머니가 종이컵과 물티슈를 나눠주어서 급한 대로 쓸 수 있었다.




하나 더 이상했던 점은 외출이 불가한 거였다. 그냥 외출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문과 후문에 양복을 입은 경비원들이 앉아서 나가는 사람을 붙잡았다. 외출증이 없는 환자는 내보내지 않았고, 외출증을 받기 위한 절차는 너무 번거로웠다. 내가 폐쇄병동에 갇혔나 싶었다. 과거 코로나가 유행하던 때라면 이해하겠지만, 4월에 다른 병원에 입원할 때는 아무 제약 없이 외출해서 편의점에 갈 수 있었기에 이런 조치가 이해가 안 됐다.


그래도 입원해서 찍었던 이 사진은 남아 브런치북의 표지가 되었다.


맛없는 밥으로 배를 채우며 주말을 보냈다. 병원 밥에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닌데 진짜… 좀 심했다… 이를테면 생선구이에 살이 하나도 없었다… BMI 지수가 15쯤 될 것 같았다… 나 만큼이나 말라 비틀어진 생선을 먹는데, 이렇게 마르고 볼품없는 생선을 굳이 먹어치우는 데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월요일 아침이 되자 드디어 의사가 회진을 돌았다. 신경과 의사가 오더니 역시나 말한다.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고. 그러면서 뇌CT, 뇌MRI, 경동맥초음파 등 온갖 비급여 정밀검진에 대한 동의서를 내밀었다. 그 무렵 나는 이틀 내내 곯아떨어질 정도의 약을 먹고 어지럼증이 조금 호전된 상태였다. 그 얘기를 듣고서도 내가 돌려받는 것은 검사 동의서 뿐이었다.


가족력도 없고 신경학적 증상이 남아있지도 않은 20대 환자에게 뇌CT, 뇌MRI, 경동맥초음파와 온갖 피검사를 시키는 게 정상적인 일인지 궁금했다.


문득 이 병원에 실려오기 직전 구급차에서 들었던 질문이 떠올랐다.


환자분, 여기는 검사를 거부하는 환자는 받지 않는다고 해요. 검사에 전부 동의하시겠어요? 동의하실 경우에만 이송이 가능하세요.



그랬군요. 이런 뜻이었군요!


나는 거절하고 퇴원하겠다고 했다. 퇴원하기까지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질병명이 나온 입퇴원 확인서가 있어야 보험 청구가 된다. 입퇴원 확인서에 질병명이 나와있지 않으면 2만원 짜리 진단서를 받아야 한다. 다른 병원에서는 큰 문제 없이 입퇴원 확인서를 받아 보험 청구를 했는데, 여긴 질병명이 나오는 입퇴원 확인서라는 양식이 없단다. 그게 뭔지 전혀 모르겠단다. 간호사들은 쉴새 없이 교대를 했는데, 전부 어리버리하고 혼란스러워보였다….


난 너무 지쳤고… 어지럽고… 그리고 짐을 싸서 집에 혼자 가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음에 다시 와서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퇴원 서류를 받기 위해 창구로 갔다.


그리고 내가 살면서… 대학병원까지 가봤지만, 그렇게 사람이 붐비는 창구는 처음이었다. 해당 병원 전체적인 분위기와 창구의 분위기는 아래 실제 네이버 지도 리뷰로 갈음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랬답니다.


하지만 구급차 타고 실려가는 마당에 네이버 리뷰 보고 갈 순 없으니 당하는 수밖엔 없겠죠?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퇴원하며 저는 진짜 아프지 말아야지, 이런 일 당하기 싫으면 아프지 말아야지, 하고 분노를 억눌렀답니다… 환자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일단 진짜 물리적으로 아파서 힘이 없다고요….




그리고 다음 날 처음 전정신경염과 이석증이 생겼을 때 방문했던 집 근처 이비인후과에 가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설명하자, 의사선생님을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 병원 원래 검사 있는대로 다 시키기로 이 주변에서 유명해요. 그렇다, 난 그러기로 유명한 병원에 갔다온 것이다!


받아온 약 처방을 보고, 약이 너무 세서 이렇게까지 먹을 필요 없다는 말을 덧붙이며 약을 조절해주셨다. 괜히 병든 닭처럼 존 게 아니었던 거다.




지금 보험 청구를 하려는데, 진단서를 받고 싶으면 의사 진료를 한 번 더 봐야 한대서(아니, 지금 상태를 보는 것도 아니고 5월달에 입원했던 진단서를 받는데 왜 굳이 진료를 한 번 더 봐야 되나? 이런 말 하고 싶진 않지만, 진료비 한 푼까지 꾸역꾸역 받아먹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내일 가야된다. 예약 잡아놨다. 괴롭다. 가깝지도 않은데.


하여튼 이렇게 후기를 마칩니다. 여러분은 평소 건강 관리 잘 하셔서(건강이라는 게 관리한다고 관리가 되는 게 아닌 면도 있긴 합니다만) 이런 경우 없으시길 바란다는 공익적인 목적을 가진 글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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