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영정 방문기 2
식영정에 올랐다. 정자의 건축학적 의미는 잘 모르겠으나, 시야가 시원하니 그림자도 주인 따라 쉴 수밖에 없을 풍광이다. 나무에 가려 전망이 훤하진 않지만 옛 정자 주인 시절에는 저 나무들이 자잘해 전망이 훤했을 게다. 나무 사이로 넓게 보이는 물은 광주호라고 한다. 1970년대에 조성된 호수이니 이전에는 강이 흘렀고 양쪽으로 들판이 펼쳐져 있었을 거다. 정자 주인은 이곳에서 무엇을 했을까? 사서삼경 같은 거는 좀 멀리하고 노자 장자를 논하면서 가사(歌辭)를 짓고 읊었을 게다. 정철 같은 글쟁이를 불러다가 세상을 품평했을 터이니, 멋 내기에 좋은 장소임에는 분명하다.
식영정 왼쪽 아래 골짜기에는 또 다른 정자 서하당이 있다. 서하당은 식영정을 지어 장인어른에게 선물한 김성원의 당호이다. 그러니 그 골짝과 주변 산이 다 그의 소유일 가능성이 많다. 저 호수로 물에 잠기기 전 논밭 상당한 땅이 그의 집안 소유였을 게다. 벼슬에서 물러났겠지만 그는 엄연히 이 지역 지주 출신 문인이다. 땅 주인에게 언덕 위 높은 정자는 무엇을 위한 용도일까? 단순히 장인어른께 체면치레로 사 드린 걸까? 동호인들을 불러 음풍농월하기 위한 곳일까? 저 언덕 아래 땅과 관련이 있을 터이다. 짐작은 가지만 증명할 길은 없어 보인다.
김성원이 벼슬했을 때만 해도 전도유망한 유학자였을 게다. 그런데 여러 사화니, 당파 싸움으로 앞길이 밝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노자 장자 사상은 은신처로 매력 있었을 것이다. 낮에는 공맹을, 밤에는 노장을 논했을 것이다. 나아가 한양에서는 예악을, 물러나 담양에서는 무위자연을 추종하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정철을 만나고 가사문학을 만났다. 가사는 우리 전통 풍류에 노장의 향기를 섞은 문학 장르다. 풍류도 앞에서 부귀가 무엇이며, 무위의 도 앞에서 공명이 무엇이랴? 이미 벼슬 경험도 있겠다, 조상이 물려준 토지가 여기 있으니. 퇴계처럼 물러나 칠현처럼 노니면 되겠거니, 서하당에서 인의를 주장하고 식영정에서는 자연을 노래하자. 그래 정자를 짓자 저 언덕 위에. 그리고 이름은 은둔처사 장인어른 석천 선생께 부탁드리자.
석천이 김성원에 말하기를 "내가 이 외진 두메로 들어온 것은 한갓 그림자를 없애려고만 한 것이 아니고 시원하게 바람 타고 자연조화와 함께 어울리며 끝없는 거친 들에서 노니는 것이니 .~ 그림자도 쉬고 있다는 뜻으로 식영이라 이름 짓는 것이 어떠냐? 이에 김성원도 좋다고 응하였다."(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김성원은 장자의 그림자 이야기를 얼마나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장인어른이 말한 것 중에서 '시원하게', '어울리며', '노니는' 장소로서 식영정 이름을 받은 듯하다. 이 정자에서의 소요유는 조건이 있어야 가능한 유사 소요유로 보인다. 유사 소요유는 단순히 좌망과 심재를 통해 편견과 오만을 씻어낸다고 도달되지 않는다. 물질적 기반이 있어야 한다. 먹고살만해야 하며, 평판 좋은 이웃이 있어야 한다. 그 위에 세상을 품평하는 교양이 있으면 더욱 좋고, 예술적 심미안이 있으면 더더욱 좋다. 식영정 건축주는 이런 조건을 갖추었고 자기 수준에서 즐긴 사람으로 보인다.
장자에서 말하는 진정 그림자를 쉬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별장을 지어놓고, 친구들을 불러 모아, 고준담론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그림자를 생기게 할 뿐이다. 그림자는 마음의 주인이 빛을 쫓아 살기 때문에 생긴다. 스스로 빛이 되면 되는데 그저 빛을 쫓아다니기 바쁘다. 그러니 그림자가 피곤해하는 줄도 모른다. 명예를 좇으면 권력에 굴종하는 그림자가 생기고, 돈을 좇으면 가난을 수치로 여기는 그림자가 생긴다. 지식을 좇으면 무지를 숨기려는 그림자가, 도덕을 쫓으면 부도덕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림자가 생긴다. 외부의 빛을 좇으면 나도 모르게 그 반대 성향은 그림자로 무의식에 거주하게 된다. 이런 발생 메커니즘이 있는 그림자를 김성원처럼 정자 지어놓고 그 그늘 아래서 어슬렁거린다고 해서 쉬게 할 수 있을까? 또 다른 그림자를 발생시키는 것은 아닐까? 자꾸 의심이 든다. 그림자 이야기의 원조 <<장자>> <어부>에는 그림자를 없애는 방법이 아닌 듯해서다. "삼가 몸을 수양하고, 신중히 참된 것을 지키며, 외물의 빛은 다른 사람들에게 돌려주어라. 그러면 매이는 바가 없을 것이다.(謹修而身愼守其眞還以物與人則無所累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