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추구하는 완벽성을 남에게 요구하지 말자.
나는 유럽의 몇 나라를 여행한 적이 있다. 그동안 많은 놀라운 것들을 보았지만, '완벽'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곳은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박물관의 금속 공예품 전시실이었다. 여러 가지 원석을 가공하여 문양을 넣고 형상을 빚어낸 작품들을 감상했다. 완벽(完璧)이라는 말의 한자말이 ‘완전한 보석’이라는 뜻이므로,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금속 공예품을 보고 이 단어를 떠올린 것은 적절했다. 처음에는 연속해서 탄성을 지르다가, 그런 것들이 너무 많아 나중에는 설렁설렁 대충 둘러보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완벽함이 좋은 것이기만 할까?
완벽함은 흠이 없다는 뜻이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작은 흠 하나 찾을 수 없을 때, 우리는 그것을 완벽하다고 한다. 그런 것을 보면 누구나 찬탄하며 기립 박수를 보낸다. 그것은 단순한 물건이나 행위가 아니라, 예술 작품이거나 경이로운 퍼포먼스이다. 이런 작품들에 많은 값을 치러주고, 작가들에게 경외감을 표하며 예우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완벽함이란 이처럼 숭고한 가치를 지니기에, 이를 추구하는 사람은 참 아름답게 보인다.
그런데 이런 완벽함을 추앙하는 사람들이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완벽함’ 위에 ‘온전함’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좋겠다. 완벽함은 흠, 결점, 실수, 약점, 허점이 전혀 없는 그야말로 완전무결한 상태를 일컫는다. 반면에 온전함은 흠이나 결점이 있지만, 실수나 약점을 포용하는, 그래서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완벽한 작품은 결점이 전혀 없지만 가까이 두기엔 너무 조심스럽게 되고, 온전한 작품은 손색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곁에 두고 늘 감상하고 싶게 된다. 완벽한 사람은 참 위대하다 싶지만 가까이하기엔 너무 부담스럽다. 반면 온전한 사람은 존경스러우면서 그 곁에 머물고 싶어 진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무의식에 있는 완벽의 그림자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융 심리학의 이론에 따르면, 완벽함을 추구하다 보면 무의식에 정반대 성질의 그림자가 쌓인다. 그 에너지가 쌓이면 문제 성격, 행동, 사고로 나타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허술함을 증오하거나, 그들이 완벽해지도록 끝없이 요구하게 된다. 일명 그림자 투사이다. 그러면 완벽함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건 아니다. 다만 무이식에 있는 그림자를 알아채고, 그림자도 온전한 나를 이루는 한 부분으로 포용하면 된다.
완벽은 어떤 작품 행위를 할 때나, 직업상의 어떤 일을 탁월하게 해내야 할 때만 짧게 집중적으로 추구하면 된다. 일상에서 모든 일에 완벽함을 추구하거나, 타인에게까지 완벽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할 수 있다. 자기 그림자의 에너지가 응축되어 폭발하는 것을 막을 길이 없을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자신의 에너지는 고갈되어 나가떨어질 것이다. 차라리 안전한 공간에서 완벽과 정반대 성질의 행위를 해 주는 것이 낫다. 융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그림자 작업이라고 한다.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을 위한 몇 가지 그림자 작업을 소개한다. 집에서는 좀 어질러놓아도 되지 않을까? 집 안에서 속옷 바람으로 다닌다고 어떻게 될까? 설거지를 꼼꼼하게 했다면 정리는 좀 대충 하자. 아니면 그 반대로 하든지. 완벽하지 못한 주변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사람이 내 그림자라고 보면 된다. 상대의 헐렁함이 혐오스러운 이유는 무의식적으로 내 그림자가 그에게 투사되었기 때문이다. 내 그림자를 스스로 알아채면 투사를 멈출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