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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타타타 Jul 17. 2024

신발 속에 흙이 튀어 들어가도록

MBTI로도 설명할 수 없는

우리 부부를 포함하여 세 쌍의 부부로 구성된 모임을 소개한다. 함께 책 읽고 토론하고, 여행 다니며 사소한 것까지 서로 나누는 모임이다. 남편 세 사람 중 두 명은 대학 선후배 사이이고, 아내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또 다른 대학 선후배 사이인데, 우연히 아내 한 명과 남편 한 명이 같은 직장에 다니면서 서로의 배우자가 선후배 사이임을 알고, 우리 같이 밥 한 번 먹을까 제안하여 만난 모임이다. 만난 지 8년째 되니 이젠 서로 호형호제하며 지낸다. 우리 여섯 명을 이 글에서는 편의상 환진, 준희, 의선 부부로 칭한다. 이름의 끝 글자를 땄고 우리 부부는 환진이다. 

    

 여섯 명은 참 희한한 특성으로 반반씩 나뉜다. 여행을 함께 가는데 번번이 부부 중 한 명은 열심히 검색하고, 챙기고, 사진 찍고 하는데 다른 한 명은 기다리고, 따라가고, 찍히기만 한다. 준희, 의선 부부의 남편과 내 아내가 전자에 속하고 나와 준희, 의선 부부의 아내가 후자에 속한다. 여행 갈 때 누가 더 적극적인가를 기준으로 나누면 어떻게든 두 그룹이 생겨나게 되어 있으니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든지 이 두 그룹으로 특성이 나뉘는 게 신기했다. 식당에서 수저를 놓고 음식을 차리는 쪽은 언제나 내 아내와 준희, 의선 부부의 남편이고, 차려주는 것을 기다리며 음식을 품평하는 쪽은 나와 준희, 의선 부부의 아내이다. 몸을 많이 움직이고 봉사하는 쪽은 언제나 내 아내, 그리고 남의 남편 둘이고, 몸을 덜 움직이며 돌봄을 받는 쪽은 언제나 나, 그리고 남의 아내 두 명이다. 나만 좀 이상한 사람이 된 느낌이다. 

     

재미나는 것은 그다음이다. 여섯 명이 함께 산행을 하는 중에 발견한 사실이다. 한 30분 걷다가 휴식을 하는데, 세 사람이 동시에 신발을 벗어 흔들어 신 안에 들어간 흙을 틀어 내고 있었다. 그 세 사람은 내 아내와 다른 두 남편이었다. 평소 신발 안에 흙을 잘 튕겨 넣는다고, 참 재주도 용하다고 남편이 자주 구박했기에, 아내는 지원군을 두 사람이나 만난 듯 상기되어 “아니, 걸으면 신발 안에 흙이 들어가는 것은 정상적인 거죠. 그렇죠?” 다른 두 남편도 이런 동지를 처음 만난 듯 “당연히 그렇지, 지극히 자연스러운 거야.” 다른 아내들은 나와 함께 희한하다는 듯이 “어찌 그럴 수가 있죠?. 이렇게 좋은 길을 걸으면서 바닥의 흙을 차올려 신발 속에 집어넣으시다니요!” 티격태격 한바탕 웃음보가 터진다. 그들은 3시간 산행에 신발 속 흙을 무려 예닐곱 번은 틀었다.


이런 식으로 편이 갈리는 것은 비단 이뿐이 아니다. 식당에 자리를 잡을 때, 음식을 시킬 때, 물건을 살 때, 간식을 먹을 때 등 거의 모든 행동 특성에서 같은 사람끼리 구분된다. 사실 이런 구분은 요즘 유행하는 MBTI 성격 검사로 거의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신발에 흙 들어가는 것은 MBTI로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지극한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내 아내가 그 해답을 내놓았다. 그것에다 도덕적 해석을 내놓았다. 

    

“우리(내 아내와 남의 남편 두 명)는 뭐든지 주도면밀하다. 계획적이고, 책임질 일이 많아 뭐든지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발걸음조차 힘차게 빨리빨리 걸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너희 님들(나와 남의 아내 두 명)은 무슨 좋은 팔자가 타고났기에 걸음마저 그렇게 어슬렁어슬렁 걷는가?” 마지막 한 마디가 압권이다. “신발에 흙도 못 튕겨 넣는 사람들이여! 제발 신발에 흙 들어가는 사람을 놀리지 마시라. 당신들은 한 번이라도 흙이 튀도록 걸어보았는가? 신발 속에 흙이 튀어 들어가도록 바쁘게 살아보기는 했는가?” 더 이상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수동적인 사람은 입이라도 다물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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