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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타타타 Jul 18. 2024

고통을 견뎌내게 했던 히든카드

이 또한 지나가리라

 

벌써 4년 전 일이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큰 누님이 나에게 경고했다. “동생! 올해 동생에게 삼재가 들었다는 데 조심해야 해!” 부처님 오신 날에 등(燈) 달라는 말로 받아들이고 흘려버렸다. 지금이나 그때나 나는 점치는 것과 같은 행위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해 나와 우리 가족에게 최악의 일이 세 건이나 터졌다. 송사에 휘말리고, 경제적 손실을 크게 보고, 덩달아 몸마저 앓아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다.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밤마다 잠을 청하며 유언장을 몇 장이나 썼다. 그때 내가 그 고통의 나날을 견뎌냈던 힘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가족이고, 둘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다.


고난이나 고통을 이겨내는 데 힘이 되는 경구는 지구상에 널려있다. 거의 모든 사상과 종교, 처세술에서는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가장 흔한 것이 ‘하늘은 크게 될 자에게 큰 고난을 주신다.’와 같은 경구이다. 고통을 수행으로 보라는 가르침이다. 다음으로 ‘어디 고통이 없는 자가 있는 주변에서 찾아보라. 고통은 인간에게 주어지는 원초적 조건이다.’와 같은 경구이다. 고통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라는 가르침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내가 이 꼴로 내던져져 있지만 죽을 때까지 나는 자유인이다.’처럼 주체적 결단을 요구하는 실존주의적 처방법도 있다. 당시 내게 이런 고급 처방전은 아무 소용도 없었다. 오로지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부모님과 아내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자식이 제일 눈에 걸렸다. 지금 이대로 내가 죽을 수는 없다. 최소한 자식에게 최선은 아니다. “자식을 위해 살아남아야 한다.” 그다음 부모님이 눈에 걸렸다. 부모님 먼저 내가 갈 수는 없다. 최소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내가 가야 한다.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거듭 미안한 말이지만 아내는 마지막이었다. 내 아내에게 아직 갚아야 할 것이 많다. 너무 빚진 너무 게 많다. “아내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가족들이 있어 그 삼재를 견뎌냈다.


이렇게 살 결심을 하고 나니 다른 경구들이 마음에 들어왔다. 가장 강력했던 것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다. 종종 듣던 말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처음 이야기가 꽤 감동적이다. 유대인 성경 주석, <미드라시>에 나오는 이야기다. 전쟁에서 크게 승리한 다윗은 승리의 기쁨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도록 기념 반지를 만들기로 했다. 보석 세공사에게 명을 내리면서 말하기를 “반지를 만들되 승리의 기쁨을 조절하고, 동시에 절망에 빠졌을 때 용기를 낼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 보석 세공사가 고민 끝에 찾아낸 글귀가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한다. 여기에서 힌트를 얻은 랜트 윌슨 스미스는 한 편의 시를 지었다. 각색하여 두 연만 소개한다.


 큰 슬픔이 거센 강물처럼 밀려와 / 마음을 산산조각 내고 / 가장 소중한 것들을 앗아갈 때면 / 네 가슴에 대고 말하라 / "이 또한 지나가리라" // 끝없는 고통이 네 노래를 멈추게 하고 / 기도하기조차 지칠 때면 / 이 진실의 말로 / 네 슬픔을 사라지게 하고 / 무거운 짐을 벗어나게 하라 / "이 또한 지나가리라" (랜트 윌슨 스미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각색 인용 ) 

    

아! 나에게 고통은 다시 오지 말았으면 한다. 그렇지만 인생에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고통은 미리 대비하는 것이 상책이요, 왔을 때 잘 피하는 것은 능력이요, 닥친 고통을 견뎌내는 것은 의무이며, 그 고통을 통하여 성장하는 것은 지혜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와 같은 고통을 견디는 데 힘이 되는 비장의 카드 한 장쯤은 가지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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