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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박히는 한 문장을 쓰는 원리

한 문장 쓰기 _ 6

by 고로케

위인들은 자기 생각을 짧은 경구로 많이 표현한다. 그들이 구사하는 꽤 많은 경구에는 한 가지 원리가 녹아있다. 그것은 아이러니다. 즉, 모순된 역설 화법을 사용하여 그 말을 읽는 사람에게 문장을 깊이 각인시킨다.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님의 ‘필사즉생 필생즉사’라는 문장은 ‘죽기로 싸우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는다.’라는 뜻이다. 이 문장이 지금까지 회자 되는 이유는 단순히 이순신 장군님의 말씀이어서가 아니다. 문장은 매우 단순하지만 죽음과 삶이라는 양극단의 의미를 한 문장 안에 일치시키면서 역설적인 효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건축가 루드비히 미스 반 데 로에가 한 ‘Less is More'(덜한 것이 더한 것이다.)라는 말 또한 ’덜하다‘와 ’더하다‘를 동일시하면서 역설적인 문장을 구사한다. 비움이 오히려 풍성한 채움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역설적인 의미를 전달한다.


아이러니는 매우 드라마틱한 기술이다. 이렇게 극과 극을 일치시키는 역설 화법이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한 줄의 문장 안에 아이러니라는 매우 드라마틱한 원리를 활용하여 농축된 스토리를 녹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를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맥키는 아이러니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매우 높은 수준의 기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나리오에서 아이러니는 주인공 자신이 맹목적으로 쫓는 어떤 가치가 오히려 자신을 파괴한다는 설정으로 많이 활용된다고 한다. 영화 《타짜》에서 고니는 도박으로 번 돈이 자기 인생을 멋지게 만들어 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화를 초래한다. 결국 고니는 마지막 도박판에서 자신이 딴 돈을 불태워 버리고 돈의 부정함을 깨닫는다. 이것을 한 줄의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얻는다는 것은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러니는 긍정과 부정이 서로 교차하면서 드라마적인 원리를 구현한다. 따라서 단 한 줄의 문장이지만 그 안에는 스토리가 있어서 읽는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다음은 나이키가 쓴 한 줄의 문장이다. 이 문장 안에는 조금 더 응용된 극과 극의 원리가 담겨 있다.


오늘 아침 달린 5킬로미터의 트랙 중 가장 먼 구간은 침대에서 현관문까지의 거리다.


이 문장 안에는 앞에서 설명한 예시처럼 선명하게 극과 극의 단어가 양립되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문장에서는 단어가 아니라 양극단의 문장 개념으로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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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 문장을 살펴보면 이렇다. 5킬로미터의 트랙은 침대에서 현관문까지 거리 보다 길다. 하지만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현관까지 가는 것이 5킬로미터보다 심리적으로 훨씬 길게 느껴진다. 5킬로미터의 트랙과 침대에서 현관문까지의 거리의 충돌 그리고 객관적 거리와 주관적인 거리감을 충돌시키면서 문장의 정서와 메시지가 드라마틱해졌다. 아침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현관문까지 가는 것이 더 천근만근 같다는 상황 또한 이 문장을 읽는 독자에게 충분히 공감대를 전달할 수 있다.


극과 극이 선사하는 아이러니한 문장 기술은 세상의 원리기도 하다. 물이 컵에 적당히 있지 않고 많으면 흘러넘쳐서 없는 것과 같다. 우리는 사자성어로 이것을 과유불급이라 한다. 너무 많음은 곧 없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또 빛이 좁쌀만큼 없어도 세상을 보기 힘드나 빛이 바다처럼 많아도 눈부셔서 세상을 볼 수 없다. 빛이 없어도, 빛이 많아도 세상을 볼 수 없다는 뜻은 같다. 따라서 아이러니는 세상의 보편적인 원리를 설명하는 문장 기술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공감과 깊이 있는 의미를 전달 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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