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풍요로움
의미[명사]
1. 말이나 글의 뜻.
2. 행위나 현상이 지닌 뜻.
3. 사물이나 현상의 가치.
효과[명사]
1. 어떤 목적을 지닌 행위에 의하여 드러나는 보람이나 좋은 결과.
2. 소리나 영상 따위로 그 장면에 알맞은 분위기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실감을 자아내는 일.
3. 작품에 나타나는 색채의 배치나 조화에서 느낄 수 있는 느낌.
영화를 보다 보면 '저건 무슨 의미지?' '이 대사는 뭘 뜻하는 걸까?' 같이 궁금증이 생기는 적이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수석의 의미는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항간에는 봉준호 감독이 의미와 상징을 묻는 관객들에게 질려서 빅엿을 날리려고 만든 장치라고도 하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수석에 의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수석은 영화 흐름에 긴장감을 부여합니다. 뭔지 알 수 없는 수석이 미스터리 한 효과를 자아낸 것이지요. 그렇게 보면, 수석이 텍스트적인 의미가 없을지라도 그 의미 없음이 오히려 영화적인 효과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 영화를 보면서 소품이나 대사의 숨은 의미 보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저에게 영화는 수수께끼가 아니라 즐거운 감각 놀이이기 때문이죠. 누군가는 의미를 풀이하는 것이 영화의 재미라고도 하지만 전 오히려 영화가 저에게 일으키는 효과와 감각을 해부하는 걸 즐기는 편입니다. 영화가 만들어낸 의미에 매몰되는 것보다, 내가 어떻게 영화를 감각했는지 알아가는 재미가 더 좋습니다. 의미 찾기의 열쇠는 영화가 지니고 있지만, 내가 어떻게 영화를 느꼈는지의 열쇠는 영화가 아니라 저에게 있기 때문이죠.
사실상, 의미와 효과는 분리되지 않고 서로가 수반 관계입니다. 효과가 나에게 전달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죠. 그건 영화 속에서 벗어나 나에게 전달되었을 때 그 의미가 발견됩니다. 예를 들어, 영화 <태풍 클럽>에서 태풍이 몰아치는 밤에 뜬금없이 학교에서 나와 비를 흠뻑 맞으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장면은 그 장면 자체의 의미를 떠나서 보는 사람에게 일종의 해방감을 전달합니다. 그 장면은 저에게 해방감이라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죠.
감각적인 효과를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과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하는 영화는 적어도 저에게 좋은 영화는 아닙니다. 수수께끼 정답을 풀어야지 감상할 수 있는 영화는 영화적으로 온전히 관객에게 말을 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무슨 의미일까? 물음을 던지는 영화가 아니라 눈이 펑펑 내릴 때, 정서적인 효과의 의미가 관객에게는 중요하겠죠.
군대에서 파도 그만 안 파도 그만인 땅을 삽질할 때 이런 물음을 던진 적 있습니다. '이게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영화가 아닌 실제 삶을 살다 보면, 우리는 늘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하지만 가끔씩 무의미한 행동이 저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효과를 주기도 합니다. 카페에 책을 가지고 가지만 책은 읽지 않고 창밖을 보며 멍 때 리거나, 새하얀 눈밭 위에 먼저 발자국을 새기며 괜히 흐뭇해하거나, 흘러가는 강을 멍하니 바라보며 이 강은 어디서부터 시작했을까 쓸 때 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요. 생산적인 활동으로 의미를 창출하지 않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무의미한 행동이 삶의 여백을 만들고 그것이 인생의 소소한 풍요로움으로 가득 차게 하죠. 풍요로움은 의미로 가득찬 삶이 아니라, 무의미함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