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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Sep 10. 2020

아버지라는 라이벌

내 나이 때 아버지는 뭘 하셨지?라는 생각을 한다. 아버지는 지금 내 나이 때 3살 6살 아들딸 놓고 가정을 일구셨다. 그에 비해 지금 난 내 먹기 살기 바쁘다. 어려웠다는 옛날에도 아버지는 집 안팎에서 자신의 세계를 건실히 쌓고 계셨다. 사춘기 때는 얼른 독립해야겠다는 생각을 품으며 아버지를 원망했다. 돌이켜 보면 난 아버지보다 더 잘 살 자신이 있었나 보다. 택도 없는 생각이었다. 난 아직 아버지를 뛰어넘을 수 없다. 나이만 먹었지 아직 어린애다. 가끔씩 이런 생각도 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33살의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거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아니라 친구로서 대화를 나눠보면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사셨을까 궁금하다. 자식들이나 가족에게 미처 보이지 못한 속마음은 무엇이었을까?


24살쯤 니체의 책을 읽었다. 니체의 책을 읽다가 내가 꽂힌 건 그의 사상이 아니라 24살이라는 나이에 바젤 대학교 문헌학 교수가 됐다는 이력이다. 난 속으로 24살에 그게 가능하다고? 지금 내 나이 때 니체는 교수가 됐단 말이야?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외국 나이로 보면 26살에 교수가 된 거겠지 라며 애써 위로했다. 2년을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혹시 아나? 그 2년 동안 나도 니체 못지않은 업적을 쌓을 수 있지. 하지만 2년이 흘러 다시 니체를 읽었을 때 좌절했다. 난 2년 전이랑 똑같았다.


인터넷 상에서 옛날 사람과 요즘 사람이 나이는 동일하지만 노화 속도가 다른 비교 짤이 돌았다. 요즘은 자기 나이에 0.8을 곱해야지 진짜 나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요즘 사람이 얼굴만 옛날 사람에 비해 동안인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정신도 동안인 게 아닐까 한다. 물론, 과거와 현재의 삶의 패턴이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 여자는 20대 초반에 남자는 20대 중반에 결혼을 해야지 정상적인 삶의 궤도라는 인식이 있었다. 지금은 그 연령대가 많이 높아졌다. 과연 이렇게 달라진 삶의 패턴이 정신의 성숙도와도 연관이 있는 걸까? 


삼시세끼 시즌 5를 보니 손호준의 나이가 36살이라고 해서 놀랐다. 그렇게나 많아 라고 생각했는 데 차승원이랑 유해진도 적지 않아 놀란 눈치다. 아직 막내 이미지가 풀풀 나지만 손호준도 꽤 나이가 많다. 그러다가 36살에 이런 막내 역할하는 게 좀 너무하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차승원은 31살에 신라의 달밤을 35살에 박수칠 때 떠나라 를 찍었다. 그때 차승원과 지금 손호준의 이미지를 비교해보면 차승원은 그 당시 어른처럼 느껴졌지만 36살 손호준은 그렇지 않다. 


몇 년 전에 아버지와 팔씨름을 했는데 지고 말았다. 꼬꼬마 때 장난 삼아 아버지와 팔씨름했을 때 지는 건 충분히 이해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도 지고 나니 난 도대체 뭐하며 산 것인가 생각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나 보다 아직 돈도 더 잘 벌고 건강하시다. 내가 환갑이 돼도 저렇게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 난 아직 한참 멀었다. 티끌도 없으면서 아버지의 삶을 무시했던 나 자신이 부끄렀다. 과연 난 언제 아버지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 난 아직 더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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