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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Sep 15. 2020

좋은 콘텐츠의 조건

예전에는 에세이류의 책을 읽지 않았다. 일단 에세이 하면 법정스님류의 에세이가 쉽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교과서로 처음 에세이를 접해서 그런지 흥미롭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가 지인 추천으로 에세이 책을 읽었는 데 그 책이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다. 이 책은 내가 가지고 있던 에세이에 대한 선입견을 깼다.


남자에게 여자축구 문화는 생소하다. 순전히 여자들은 축구를 어떻게 할까 라는 호기심에 책을 읽었다. 이건 마치 여자들도 이제 남자처럼 서서 소변을 본다고 하는 데 어떻게 서서 소변을 본다는 거야?라는 호기심이랑 비슷하다. 책을 읽었을 때는 여자들도 남자들이랑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지면 똑같이 분해하고 경기가 안 풀릴 때는 짜증도 내고 축구를 더 잘하려고 연습도 했다. 작가의 필력이 생생하게 살아 있고 몰입감 있게 글을 잘 써서 후루룩 읽었다. 특히, 각 챕터를 인사이드킥, 로빙슛, 월패스처럼 축구 기술 개념으로 잡고 거기에 맞는 자신의 축구 이야기를 녹여낸 발상이 호소력 있었다.


사실 이 책은 페미니즘의 화두가 전반에 깔려 있다. 이 책을 보고 느낀 건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이렇게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면 거부감 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거다. 다른 페미니즘 문학이 보이는 답답한 면 없이 책 제목처럼 호쾌하게 탁탁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문학의 순기능은 전혀 다른 세계의 문을 열어주고 탁 트인 시야를 만들어 세계관을 변하게 한다면 이 책이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책이다.  


요즘 좋은 콘텐츠는 자신의 내밀하고 사적인 경험에서 시작해서 사회적 보편적 화두를 경유하는 콘텐츠다. 이런 에세이를 읽으면서 생각한다. 나의 사적인 경험이 보편적이고 사회적인 의미로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일까. 나와 사회가 만나는 접점은 무엇일까. 하루 24시간을 이 복잡한 사회 속에 살면서 정작 나와 사회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오히려 외딴섬이나 부표처럼 고립되어 있다는 생각이 강하다. 하지만 가끔씩 에세이를 읽으면 나의 내밀한 감정과 경험이 어떻게 사회와 연결될 수 있을지 가닥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내가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나에게 침잠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사회의 문을 두드리기 위한 행위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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