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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 기록

[독서 기록] 알랭 드 보통 - 불안

by 화랑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p22

촌철살인 알랭 드 보통씨..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이야말로 불안과 울화의 원천이다. -p57

그래서 재작년~작년에 힘들었다. '내가 교사가 아닌 다른 직업을 선택했다면?' '교대를 안 갔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가정법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를 괴롭게 했다.


제임스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성공을 거두어야만 우리 자신에게 만족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 어떤 일에서 실패한다고 해서 반드시 수모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자존심과 가치관을 걸고 어떤 일을 했는데 그 일을 이루지 못했을 경우에만 수모를 느낀다. ...(중략)...

이 세계에서 자존심은 전적으로 자신이 무엇이 되도록 또 무슨 일을 하도록 스스로를 밀어붙이느냐에 달려 있다.

자존심 = 이룬 것 / 내세운 것

제임스의 방정식은 우리의 기대 수준이 높아지면 수모를 당할 위험도 높아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무엇을 정상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복이 결정된다. ...(중략)...

이 방정식은 우리의 자존심을 높일 수 있는 두 가지 방법도 암시한다. 하나는 더 많은 성취를 거두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성취하고 싶은 일의 수를 줄이는 것이다. 제임스는 두 번째 방법의 장점을 지적한다.

"요구를 버리는 것은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만큼이나 행복하고 마음 편한 일이다." -pp68~70

근데 성취하고 싶은 일의 수를 줄일수록 대신에 내가 내세우는 단 한 가지에 집착하게 되는 것도 같다. 예를 들어 나는 중고등학교 때 대부분의 욕구를 포기하고 '나는 공부 잘 하니까 괜찮아' '나는 대학 잘 갈 거니까 괜찮아'라며 자기위안을 했다. 꾸미지도, 놀지도, 대외활동도 안 하고 오로지 공부 하나만 내세웠다. 그래서 수능 망했을 때 너무... 힘들었다ㅎㅋ

그 이후로는 내 자존심과 가치관을 뭔가에 걸지 않는 편이다. 뭐 그렇다고 행복해진 것 같진 않지만 마음은 편하다.


루소에 따르면 부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었다. 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뭔가를 가지려 할 때마다 우리는 가진 재산에 관계없이 가난해진다.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할 때마다 우리는 실제로 소유한 것이 아무리 적더라도 부자가 될 수 있다. -p78

강남에 살 때 내가 제일 가난했다. 마음이 가난했다. 반면에 지방으로 내려오고 꽤나 풍요로워졌는데 그건 아마 '얻을 수 없는 뭔가'를 욕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쁘게 표현하면 우물 안의 개구리고 트렌드에 뒤쳐진 거겠지. 좋게 말하면 '얻을 수 없는 뭔가'가 눈에 보이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아 굉장히 편안하다.


불안은 현대의 야망의 하녀다. -p118

키야


신의 힘과 자연의 예측 불가능한 변덕을 존중하던 시절에는 자신이든 남이든 사태의 흐름을 제어할 수 없다는 관념이 널리 퍼져있었다. 그래서 외적인 힘에 감사를 하기도 했고 책임을 돌리기도 했다. ...(중략)...

우리의 지위의 문제를 우연적 요소들에 맡긴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다. 그러나 합리적 통제라는 관념에 완전히 물들어, '불운'이 실패를 설명하는 그럴듯한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관념을 폐기해버린 세상에 산다는 것은 더 힘든 일이다. -pp120~121

요즘에 특히 비슷한 생각을 많이 한다. 차라리 내가 어떤 종교에 맹목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이었음 좋겠다. 내 앞에 펼쳐지는 일들을 '하늘의 뜻'으로 맡겨버리고 싶으니까. 난 아무리 노력해도 종교를 믿을 수 없는 사람이고 때문에 모든 게 다 내 선택의 결과인 것만 같다. 이것도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 앞으로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과거에 대한 후회와 자책을 지나치게 많이 한다.

죄책감을 많이 느끼는 사람은 오만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다르게 선택했음 그렇게 됐을 텐데'는 자의식 과잉이자 오만 맞다. 내가 뭐라고. 근데 어쩔 수 없다ㅜ


몽테뉴는 힘 있고 부유한 자를 만날 때 흥분을 억제하고 가난하고 미미한 자를 만날 때 판단을 억제할 것을 요구했다. -p238

인간관계에서 뼈에 새길 말..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불안을 극복하거나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의 불안 해소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p247

그렇지.. 그래서 번뇌가 끝이 없다. 어떤 사람은 이래도 저래도 계속 불평불만만 한다. 불평이 다른 불평으로 대체되니까. 나도 끊임없이 불안하고 화가 나는 고질적인 습관이 있다. 이거 하나가 해결되면 다음엔 다른 일로 화가 나는..


그러나 울프는 쉽게 입을 다물지 않았다. 그녀는 "도서관에 입장이 허용되지 않다니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하고 묻는 대신 "나를 들여보내지 않다니 도서관 문지기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하고 물었다.

관념이나 제도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때는 고통의 책임을 아무에게도 묻지 못하거나 고통을 겪은 당사자에게 묻게 된다. 그러나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아니라 관념이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게 된다. -p259

내가 아니라 시스템이 문제라는 걸 알게되는 순간이 있다. 보통 그 당시에는 잘 모르고 시간이 지나야 불현듯 깨닫는다. 숲에서 나와야 숲이 보이는 것처럼..


아주 큰 자연을 보면 두 사람 사이의 차이는 우스울 정도로 작아 보이는 것이다. ...(중략)...

우리 자신이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느낌은 우리 자신을 더 중요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pp296~297

이 장면이 생각남 ㅋㅋ 수천년 수명의 바오밥나무를 보고 인생의 덧없음을 깨달은 기안84. 근데 역설적으로 인생이 한없이 짧고 인간은 너무나 하찮은 존재라는 걸 깨달을수록 삶이 가벼워지는 것 같다.



주류 문화와 갈등하면서도 자신 있게 살아가려면 우리의 직접적인 환경에서 작동하는 가치 체계, 우리가 사교적으로 어울리는 사람들, 우리가 읽고 듣는 것이 중요하다. ...(중략)...

그래서 보헤미안들은 함께 시간을 보낼 사람을 고르는 데 특히 주의를 기울였다. -pp337~338

이것도 진짜 너무 공감.. 강남에 있을 때 주변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다.. 아니 정말 다 좋은 사람들인데 그냥 자꾸만 작아졌다. 가십걸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살았으면 제대로 정병왔을 듯.. ㅎㅋ 너무 잘난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도 그렇게 좋진 않은 것 같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물론 잘났고 못난고는 상대적인 거지만.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산업가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보헤미안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으며,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철학자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다. ...(중략)...

우리가 어떤 가치를 따르는 것은 두려움을 느껴 나도 모르게 복종을 하기 때문이다. 마취를 당해 그 가치가 자연스럽다고, 어쩌면 신이 주신 것인지도 모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거기에 노예처럼 매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상력이 너무 조심스러워 대안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pp355~356

그래서 항상 대안을 찾으려 한다. 대안적인 삶, 대안적 교육, 대안적 육아... 태생이 반골이라 그런지 주류만 쫓다보면 숨이 막힌다. 이곳저곳 유영하다 나만의 길로 가고싶다.



두 번째 읽은 <불안>

어쩐지 불안할 때마다 찾게 된다. 철학서에 가까운데 은근한 위로가 되고 두꺼운데도 술술 읽힌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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