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습작생의 페이크다큐식 칼럼쓰기
나는 이야기꾼이 아니다. 오히려 재밌는 이야기라도 나를 거치면 제법 재미 없어진다. 그럼에도 내가 읽은 소설 줄거리를 누군가에게 이야기 해 줄때면 누구도 흥미롭게 듣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수많은 대상에게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그 대상은 친구였고, 군대 선임이었고, 연인이거나, 연인은 아닌데 그냥 만나는 중이거나 뭐 그랬다.
스포일러에 대해 심각한 공포를 느끼는 어느 형이 안다면 기겁할 이야기이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유별나지 않았고 어차피 그 책을 읽을 일은 없을 거라고 했기에 나는 별 걱정없이 얘기를 이러나갔다. 그러면서 나는 마치 그 이야기의 저자라도 된 듯 은근히 뿌듯한 기분이었고 천일야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았다. 어쨌든 그들은 모두 내가 필요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게 목숨은 아니어도, 관심어린 시선이든, 애정이든, 근무시간동안 편의를 봐주는 배려이든 말이다. 외국소설도 많았지만 한국 현대문학이 주로 내 이야기 재료였고 나는 필사적으로 내가 아는 이야기들을 기억해내고 때로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장면들을 지어내고 때로는 과장하고, 때로는 넘어갔다.
아마 원작자들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면ㅡ, 장담컨데 나는 한 번 멱살잡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 청자들은 내 입에서 어서 다음 이야기가 나오기를 바랐고 이야기가 끝나서는 만족스러워했다.
서투른 이야기꾼인 내가 제법 공연을 잘 마무리한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들이 즐거워했던 그 이야기는 더 온전하고 매끄럽게 그들의 집이 어디든 갈 수 있는 도서관이란 장소에 잘 보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걸작들이 다른 매체보다 조금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그저 책장에 꽂혀있는 것일까. 왜 우리는 책을 읽지 않을까. 그건 지성인 코스프레를 위한게 아니고, 성공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유명항 사람들이 읽어서도 아니고, 그냥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인데 말이다.
그건 아마도 도서관은 이런저런 공부하는 사람들로 이미 붐비고 있으니까.
그건 아마도 서점에서 문학책장을 찾으려면 수 많은 자기개발서와 이런저런 문제집들을 헤쳐가야하니까.
그건 아마도 우리가 새로운 생각을 더 환영하지 않고 고립되고 있으니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