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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wa Seub Lee Nov 17. 2022

집을 사기로 했다(9회)

부동산에 1도 관심없던 이의 내집마련 비망록

9. 너무 잘 흘러가서 불안했다


가계약금 500만원을 지불하고 난 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한 가지 큰 실수를 했다. 지금 돌아보면 큰 실수였지만 그 때만 해도 '실수'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왜 그랬을까. 


그 때 했던 가장 큰 실수 한 가지는 부모님께 내 자금 사정을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었다. 당시 나는 '실탄 확보'라는 명목으로 대구은행과 카카오뱅크를 통해 도합 4천만원의 신용대출을 땡겨놨었다. 이를 부모님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나 돈 있어"라고 하며 가계약금 500만원을 턱 내놓은 것이었다. 


적어도 그 날 집에 가서는 부모님에게 자금 계획을 이야기했어야 했다. 일단 가계약금 500만원은 내 돈으로 해결했고, 3억6천만원 중 3억5천500만원이 남았는데, 내가 학사장교 복무하면서 모아놓은 퇴직금 2천300만원, 재형저축으로 모아놓은 1천500만원, 그리고 부모님이 해 주실 수 있는 최대 금액이 5천만원, 보금자리론 대출로 받으면 2억5천만원, 합치면 3억3천800만원. 그러면 1천700만원이 모자란다. 이 때 나는 "이 부분은 신용대출로 해결하겠다. 충분히 갚을 여력 되니 믿어달라"고 하면서 부모님을 설득시켜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미리 신용대출로 실탄을 확보했다"는 말 또한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몇 년 전부터 우울증 증세로 정신과 치료를 계속 받아왔는데 그 때 의사의 조언 등을 종합해보면 어머니에게 근원적인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셔서 말수도 적으신 분이고 나의 삶에 대해 가타부타 이야기를 크게 하지 않으셨다. 교육 관련 부분은 어머니가 다 담당하셨기 때문에 아버지께 혼났던 기억보다는 어머니께 혼난 기억이 더 많다. 대부분 그럴지도 모르겠다. '신용대출을 받았다'는 말에 어머니에게 혼날 게 더 두려웠던 모양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작은 잘못 때문에 어머니에게 혼날 걸 걱정하듯 나 또한 그랬다. 그걸 끝내 극복 못 했던 게 향후 일어날 사태의 시발점이 됐다.


그 이후는 너무 스무스하게 잘 풀려나갔다. 8월 쯤 계약금 3천만원을 지불했고 9월에 잔금을 지불해서 결국 등기는 내게 넘어왔다. 너무 잘 풀려서 나와 부모님은 '집이 인연이 있었던 모양'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사이 뭔지 모를 불안함이 조금씩 싹트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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