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청하-I’M READY
I'm ready to get this / Ready to get this / Ready to get this stage
소란스런 밤을 지나 / 저 빛을 향해 가
움츠렸던 시간만큼 / 날개를 펼쳐 가
Never stop I love this feeling / 더 높이 날아 난
새로운 취미를 시작할 때 뭐부터 준비해야 할까? 그렇다. 바로 장비다.
역병의 시절, 강제로 일을 쉬어야 했던 나는 홀연 웹툰 작가의 꿈을 갖고 그 즉시 인근 도시로(창원) 달려가 아이패드프로를 장만하였다. 몇 달 부지런히 그리다가 웹툰 전용 리더기로 변질되고 말았지만. 어쨌든 무언가 갖춰져야 시작할 마음이 생기는 것 아닌가. 달리려면 러닝화가 있어야 하고, 캠핑을 하려면 텐트가 있어야 하듯. 그럼 춤을 추기 위한 장비가 뭐가 있더라?
제길.... 몸만 있으면 되잖아.... 쇼핑세포가 시무룩해졌지만 그것도 잠시. 아하! 춤을 출 장소가 있어야 하지! 내가 이날을 위해서 단독주택에 살기로 했구나. 아파트였다면 언감생심, 집에서 뛸 생각조차 못했겠지만, 주택이니 마음껏 발을 구를 수 있었다. 자, 그럼 어디다 나의 댄스 연습실을 만들지?
20평 집 안에 고만고만한 크기의 방 세 칸 중 아무리 봐도 내 기량을 맘껏 펼칠 수 있는 장소는 현재 침실로 쓰고 있는 방밖에 없었다. 나머지 두 방은 옷과 잡동사니로 가득 차있었고, 무엇보다 아주 좁았다. 매우 격렬하게 춤을 출 예정이었으므로 이 두 방은 열정으로 충만한 나라는 사람을 담아내기에는 부족했다. 그렇지만, 나 혼자 사는 집도 아니고, 남편이 순순히 침실을 내어줄지 걱정이었다. 계략이 필요했다.
“있다이가. 우리 침대 이거 10년 넘게 썼잖아. 신혼여행 때 태국서 사온 라텍스 이거, 10년이면 수명이 다한다드라(근거 없음). 그래서 요새 내 허리가 아픈 거 같다.”
“운동 안 해서 아픈 거지.”
“아니 그게 아니고. 라텍스 밑에 매트리스도 10년 쓰면 스프링이 휘어져서 몸에 안 좋단다(근거 없음). 그리고 이 방에 화장실이 있어서 그런지 곰팡이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내가 잠을 잘 못 잔다.”
“이사 온 지 3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우째 잤노.”
“아니, 들어봐 봐. 여기 옷장이 있어서 옷 냄새가 많이 나는 것 같고, 나는 잠자는 방엔 딱 침대만 있어서 잠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화장실이나 옷장이 없는 작은 방으로 침실 바꾸는 게 어떻겠노?”
“옷장하고 침대를 우리 둘이 들어서 옮길 수 있겠나?”
“분리해서 옮기면 되지.”
“그럼 이 방은 뭘로 쓸라고?”
“우리 운동방 만들자. 나중에 돈 모아서 니 헬스 기구도 사고.”
당시 남편은 스미스머신을 사서 홈짐을 꾸미고 싶어 했기 때문에 솔깃한 제안이 되었고, 그렇게 작은 이사가 시작됐다.
가장 작은 방에 침대를 옮기려 했지만 들어가지 않아, 당근에 무료로 올렸더니 금세 누군가가 가져가버렸고, 옷장은 옷방으로 옮겼다. 옷방이 작아 레고 맞추듯 옷장과 서랍장, 행거 등을 끼워 넣느라 진이 다 빠졌다. 전부 들어가지가 않아서 몇 년을 안 입고 처박아 두기만 한 옷을 몇 뭉텅이나 갖다 버렸다. 그렇게 둘이서 몇 시간을 땀 흘리며 낑낑 댄 덕분에 우리 집에서 가장 큰 방이 텅 비었다. 그곳에 자리를 못 잡고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아령과 요가매트를 넣고, (곧 빨래걸이가 될 운명에 처한) 러닝머신을 넣고, 대형거울을 사서 벽에 세웠다. 아이패드 거치대를 사서 거울 옆에 세우니 완벽한 댄스 연습실 완성! 이젠 누구도 나를 막을 순 없어!(막은 사람 원래 없었음)
취미가 춤인 덕분에 단돈 20만 원과(대형거울+패드 거치대) 두 사람의 노동력만으로 장비빨을 세웠다. 캠핑이나 낚시 같은 취미였다면 얼마나 큰돈이 들었겠는가. 춤은 정말 가성비가 뛰어난 취미인 것 같았다.(이 생각은 후에 크게 바뀌게 된다) 물론 덕분에 우린 가장 좁은 방에서 침대 없이 바닥에 이불 깔고 잠을 자고, 옷 방에 빈틈없이 잡동사니를 넣어두게 됐지만.
이젠 뭐다? 열정으로 부풀어 올라있는 나를 하늘로 둥둥 띄어줄 선생님을 찾아야 한다!
*남편은 이후 4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스미스머신을 사지 못하고 있다. 스미스머신이 들어가면 내가 춤출 공간이 없어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