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순이 중에 상 집순이지만, 1년을 집 안에서 두문불출하다 보니 슬슬 밖에 나가 활동적인 일이 하고 싶어졌다. 혼자 생각만 하면 코로나 끝나자마자 없었던 일 취급할 게 뻔해서 인스타그램에 각오 삼아 올렸더니,
“댄스, 발레는ㅋㅋㅋㅋ 한다면 꼭 구경하고 싶어요ㅋㅋㅋㅋㅋㅋ”라는 댓글이 달렸다. 아니 내가 춤을 추겠다는데, 그게 ‘ㅋ’을 10개나 붙일 일인가? 그리고 관람도 아니고 ‘구경’이라니. 춤을 추는 내 모습이 무척이나 우스울 것을 확신할 때 나올 수 있는 단어 아닌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중2 수학여행 때 반대표로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를 췄던 사람이다. 그것도 내 역할은 팀의 중심 ‘김지현’ 역할이었단 말이다! 그때 사회를 보던 사람이 “저 골반이 중학생 맞나요!”라고 말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미친놈) 당시 나의 골반 웨이브는 학생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라 특별히 쉬는 시간에 배우러 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또 중3 수련회 때 갑작스럽게 진행된 반 별 장기자랑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반 아이들을 이끌고 김건모의 ‘스피드’를 췄었다. 단 한 번도 나를 칭찬해 준 적 없던 담임 선생님마저 내 춤에 커다란 감동을 받으시고는 “뭐 이런 기 다 있노!”(칭찬 맞죠?)라고 말씀하셨지.
그땐 티브이에 댄스 가수가 나오면 무조건 비디오 녹화를 해놓고는 친구들과 함께 따라 추며 놀았다. 솔로 가수의 설렁설렁 가벼운 몸짓부터 그룹의 다소 격한 군무까지 커버 못할 안무는 없었다. 내 몸과 마음은 늘 무대에 오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 이후 시간이 너무도 무심히 흘러가버렸다는 것이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갑자기 불어버린 체중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게 점점 부끄러워졌다. 중3까지 체력장 1급을 받던 몸에서 체력장을 하면 차라리 결석을 해버리는 몸으로 변했다. 그래도 춤을 계속 추고 싶었다. 주말이면 방에서 혼자 거울을 보고 춤을 추다 밖에서 마당을 손질하던 아빠와 창을 통해 눈이 마주쳐 서로 민망했던 때도 있다. 대학생 때는 클럽을 두어 번 가보기도 했으나, 그곳은 춤추는 곳이 아니라 짝을 찾는 곳이라는 것을 깨닫고 발을 끊었다. 재즈 댄스를 배우기도 했는데 몇 달 가지 못하고 재미가 없어 그만뒀다. 그러고는 춤은 내 인생에서 영영 사라지나 했다.
마지막 춤을 시도한 것은 28살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면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2개월 정도 머물렀는데, 탱고의 고향이라는 ‘라 보카’를 네댓 번은 갔던 것 같다. 갈 때마다 탱고 공연을 보고, 무용수와 사진을 찍기도 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주말 밤에는 곳곳에서 탱고 추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꼈던 장면은 노인들의 탱고다. 지금은 더 심각하다지만, 당시 아르헨티나도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노인들이 입은 옷에서도 그게 느껴졌다. 낡은 옷이지만, 깨끗하고 단정하게 차려입은 노인들, 붉은 립스틱을 진하게 바른 노인들. 둘씩 짝을 지어 낮고 느린 반도네온 소리에 맞춰 흐릿한 노란 불빛 아래서 춤을 추는 사람들. 나도 저런 춤을 추고 싶다, 나도 저런 노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왕 탱고의 나라에 온 김에 한 번 배워보기로 하고 강습에 찾아갔다.
강습을 시작한 지 10분 만에 ‘아,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하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탱고는 스텝과 파트너와의 눈 맞춤이 중요한데, 나는 도저히 두 가지가 동시에 되질 않았다. 눈을 보면 발을 밟고 발을 보면 파트너의 신호를 알 수가 없었다. 시종 고개를 끄덕이며 바쁘게 스텝을 밟다 보니 인내심 많던 파트너도 “수! 룩 앳 미!”하고 짜증을 냈다. 분명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예요!”라고 했는데, 스텝이 엉키면 파트너를 화나게 할 뿐이었다. 서너 번 더 가고 말았는데, 나는 내내 술 취한 사람처럼 갈지자만 그리다 탱고에 대한 로망은 영영 접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춤은 관두자 하게 만든 말은 같이 탱고를 배우던 일본 아저씨의 말 때문이다. 늘 내게 온화함과 애정을 보이던 그였지만, 춤추는 나는 도저히 참기 힘들었나 보다.
“수, 부끄러워 말고 춤에, 자신에 집중해요.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내가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었나?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나? 믿기 힘들었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나는 나를 부끄러워하는, 누군가의 앞에 서서 춤을 춘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른으로 자라 버렸다.
뭐 큰 문제는 없었다. 내가 뭐 댄서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전국노래자랑에 나갈 것도 아니고, 살다가 춤출 일이 뭐가 있겠는가. 직업이 강사니까 남들 앞에 설 일은 많지만, 말하는 건 전혀 부끄럽지도 움츠러들지도 않으니 뭔 상관인가.
그런데 참 이상하다. 티브이에 아이돌만 나오면 어깨와 엉덩이가 들썩이는 건 도대체 왜인가. 도대체 왜 나도 모르게 아이돌의 표정을 따라 하고 있는가. 전혀 닮은 부분이 없는데! 지금 이 나이에 그들과 나를 동일시하고 있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우아하게 열린 음악회를 보던가, 신나게 현역가왕을 보란 말이야! 그러나 여전히 인기가요로 리모컨을 누르는 나.
마흔을 넘기면서 마음이 더 급해졌다. 가만히 5분만 서 있어도 숨이 차는 몸뚱이가 되니 덜컥 겁도 났다.
‘이러다 영영 내적 댄스만 추다 끝나는 거 아냐?’
‘나중에 무릎 연골 다 사라지고 나서 땅을 치고 후회하면 어쩌지?’
라인댄스 배우러 다닐 나이가 되기 전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도전하고 싶었다. 마흔이 넘었지만, 근육이라곤 없는 몸이지만, 움직일 수 있을 때, 마음이 있을 때 한번 해보자! 지금이 아니면 안 될 일도 있을 테니까. 그렇게 나의 ‘케이팝 댄스 커버 도전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