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타게 찾았지만...... 안 계셨다. 어디에도 안 계셨다. 통영에는 케이팝 댄스 학원이 하나인데 그곳에선 성인은 받아주지 않았다. 가까운 고성과 거제, 진주, 진해, 창원까지. 시간이 맞는 곳이 없었다. 혹시나 싶어 동네주민센터나 복지관에서 하는 수업이 없나 뒤져 봤지만, 댄스는 라인댄스와 스포츠 댄스밖에 없었다. 연습방까지 준비해놓았는데 배울 곳이 없다니. 털썩. 내가 사는 곳이 수도권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소도시라는 게 실감이 났다.
돈이 좀 들더라도 개인교습을 받아볼까 싶어 ‘숨고’ 앱에 들어가 검색을 해봐도, 없었다. 통영엔 한 명도 없었고, 거제나 창원엔 선생님이 있었지만, 선생님의 이동 가능 거리가 짧았고, 연습실 대여비에 차비까지 생각하면 비용이 어마어마했다. 아이돌 지망생도 아니고 그 비용을 들여 배우는 건 아무래도 도가 지나쳤고 부담스러워 얼마 배우지도 못할 것 같았다.
남은 건 온라인 밖에 없었다. 때는 바야흐로 대역병의 시대를 지나가고 있었고 그동안 각종 독서모임과 글쓰기 수업을 온라인으로 하는 것에 적응되어 있었다. 그런데 앉아서 말하고 듣기만 하면 되는 거랑 몸을 움직이는 게 같을까? 댄스 학원을 찾는 나에게 사람들은 “그냥 유튜브에 올라오는 수많은 댄스 튜토리얼 영상이나 커버 영상을 보면서 익히면 되지 않느냐.”고 했지만, 나는 그게 성에 차지 않았다. 배우는 느낌이 없다고나 할까? 뭔가 잘 안 되는 게 있으면 물어보고 싶기도 하고, 이 동작을 잘하기 위해 기초 연습할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싶었고, 목표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춤추고 싶기도 한데, 그저 영상을 보며 따라하는 건 내가 원하는 그 무엇도 만족시켜 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댄스학원 차려서 선생님을 모실 것도 아니고, 댄스학원 생길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오십견 올지도 모르고.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어쨌든 시작해봐야 했다. 온라인 수업이 없는지 검색을 해보던 중 때마침 가끔 이용하던 온라인 강의 플랫폼 ‘클래스 101’에서 안무가 리아킴의 강의가 열린다는 소식을 알려 왔다. 어쩜 이리 딱 맞는 시기에 거장께서 수업을 열어주시다니! 나는 당장 수강 예약을 해놓고 강의 오픈 일만 기다렸다.
내가 리아킴의 제자라니! 물론 스승님께서는 내 존재를 모르겠지만 말이다. 수업 내용 목록을 보며 다이어리에 일정을 메모했다. 10개 챕터에 30개 정도의 강의가 있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보면 한 6개월 정도면 다 마스터하겠군! 계획 세우는 것(지키는 것 제외)을 매우 좋아하는 나로서 강의계획서가 분명히 제시되고, 원하는 시간에 내 일정에 맞추어 수업을 들으면 된다는 것이 큰 장점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영상 속도 조절도 되니 초보인 나에게는 오히려 온라인 수업이 더 좋겠단 생각도 들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연습방에 들어가 첫 수업을 듣기 위해 영상을 켰다.
한껏 충만했던 기대는 30분도 안 되어 피식피식 숨이 빠지기 시작했다. 제일 첫 수업은 스트레칭이었는데, 내가 알던 스트레칭과는 좀 많이 달랐다. 팔이나 좀 뻗고 허리나 휘휘 돌릴 줄 알았는데, 왜 갑자기 스쾃을 하시죠? 플랭크는 또 뭐죠? 그걸 또 왜 그렇게 길게 하죠? 근데 선생님은 그걸 왜 웃으면서 하시는 거죠? 앞에 계시면 따지기라도 할 텐데 화면을 보며 아무리 투덜거려도 소용이 없었다.
첫 날부터 이렇게 무너지나 싶었다. 게다가 선생님은 이 준비운동을 매번 수업 듣기 전 할 것을 권유하셨다. 춤을 추기 위해선 기초 체력이 필요하고, 댄서의 몸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근육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든 그렇겠지만(?) 난 근육 운동을 매우 아주 베리 혼또니 싫어한다. 살을 빼기 위해서 억지로 헬스장을 다니기도 했지만, 되도록 내 삶에서 영원히 제외시키고 싶은 공간이다. 마흔 살이 되면서 건강에 위기를 느끼고 PT를 받기 위해 헬스장에 갔을 때 난생처음 인바디를 쟀는데, 체지방률이 37.1%에 근육량은 18.6kg이 나와서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눈바디는 보통의 체형이라 이정도로 수치가 나쁜 것에 놀란 것이다. 이후 3개월 PT를 받는 동안 런지를 하다 울기도 하고, 와이드 스쾃을 하다 바지가 찢어지기도 할 만큼 열심히 했지만 인바디 수치는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도 밥 먹어도 배가 나오지 않고, 5분 이상 걸어도 숨차지 않고, 남편 코고는 소리에 깨지 않고 푹 자는 등 건강해진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계속 운동을 하겠다 굳은 결심을 했지만, PT가 끝나고 혼자 운동을 시작하자마자 그 결심은 헤어질 결심으로 바뀌었다. 이후 집에서 하겠다며 예쁜 아령 세트도 샀지만, 결국 무거운 쓰레기만 더 만든 꼴이었다. 몸은 무겁고 허리는 아프고 다시 똥배가 나왔지만, 근육 운동을 하지 않는 시간은 참 행복했다. 그런데, 춤을 추기 위해 또 근육 운동을 해야 한다니요!
리아킴 스승님을 맞이한 기쁨도 잠시, 근력 운동의 벽에 막혀 엉덩이도 제대로 한번 흔들어 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댄스의 세계에서 발을 빼야 하는 것인가 하고 울분에 차있던 나의 눈에 리아킴 선생님의 복근이 들어왔다. 그냥 마르기만 한 것처럼 보이지만 흔들림 없이 탄탄한 팔뚝도 보였다. 모든 댄서가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하는 고난이도의 동작은 근육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유연성이나 지구력 또한 근육에서 나온다. 춤을 추기 위해 내가 준비해야 할 장비는 연습방이 아니라 근육이었다.
처음 몇 회는 스승님의 가르침대로 준비 운동을 했으나, 준비 운동만으로 심신에 무리가 와버려 안무 연습으로 넘어가면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즐겁지가 않았다. 얼른 아이돌처럼 추고 싶은데 현실은 개업 풍선 인형처럼 흐느적거리고만 있으니 답답했다. 다이어리에 세워 둔 완벽한 계획을 계속 수정하게 됐다. 다음 날로 미루고, 주말로 미루고, 다음 달로 미루다가 더는 계획도 세우지 않게 되어 버렸고, 그렇게 영영 리아킴 선생님을 뵐 낯이 없는 부끄러운 제자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