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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쌤 Sep 09. 2024

다시 만난 세계

♬BGM

소녀시대-다시 만난 세계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 / 다시 만난 나의 세계          



통영에는 댄스 학원이 딱 한 곳 있다. 그런데 그곳은 성인반이 없었다. 성인이 댄스를 배울 수 있는 곳이 두 곳 있긴 했는데, 한 곳은 헬스장의 G.X(Group Exercise) 중 하나였고, 다른 한 곳은 점핑 학원에서 하는 수업이었다. 두 곳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성인만 배우는 게 아니라서 내가 글쓰기를 가르치는 학생들을 만나는 일이 생길 것 같아 망설여졌다. 수업하던 중 내가 춤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을 때, 한 학생이 “선생님 하반신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라는 말을 했다. 그렇다. 나는 정말 움직임이 없는 사람이다. 매번 앉아있는 모습만 보인 선생님이 일어나는 것도 신기한데 춤을 춘다니 더 믿기지 않는다며 놀리는데 학생과 같이 춤을 배우는 일은 상상만 해도 쑥스러웠다. 부끄러움을 극복한다 하더라도 시간이 맞지 않아 갈 수 없었다.

좀 더 영역을 넓혀 거제도 쪽을 알아보았다. 거제에는 댄스 학원이 두 곳이었다. 이모션 댄스 학원과 아일랜드 댄스 학원. 그중 시간이 맞는 곳이 이모션 댄스학원이었다. 낮 12시에 시작하는 수업이 있었던 것이다. 그 학원이 거제도에서 가장 오래된 것 같았고, 수강생도 많아 보여 안심이 됐다. 게다가 아주 멋지게 촬영을 해준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뭘 하든 결과물을 남기는 걸 의미 있게 생각하기 때문에 글을 쓸 때도 신문이나 문집, 책을 만들어야 뭔가 해냈다는 기분이 들었다. 춤을 춘다면 할 수 있는 결과물은 영상뿐이니 이렇게 촬영을 잘해준다면 일석이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로 몇 가지 물어본 뒤 당장 수업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코로나19로 인해 정오반이 폐강되었다는 문자가 온 것이다. 갈 곳이 사라졌다!

이모션 댄스학원과 아일랜드 댄스학원 둘 다 저녁 수업이 있었지만, 일을 마치고 그 시간까지 거제도로 날아갈 방법이 없었다. 두 학원에 모두 오전반이 생기면 꼭 연락 달라는 문자를 남기고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어디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계속 문의하기도 민망해져서 남편 번호로 다른 사람인 척 “성인 오전 수업 있나요?” 하고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결국 “앞으로도 개설 계획은 없습니다.”라는 냉정한(?) 답변을 받고서야 미련을 접었다.     

부산으로 다시 이사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난 왜 이런 촌구석에 살아서 매번 뭘 배우고 싶을 때마다 부산으로, 서울로 가야만 하는가 하고 속으로 절규했다. 글쓰기를 배울 때도 그랬다. 왕복 서너 시간씩 운전해서 부산에 가서 한두 시간 수업하고 돌아오는 게 너무 허무하고 피곤했다. 팬데믹 덕분에(?) 줌 강의가 많아져서 글쓰기 수업을 정말 편하게 듣게 됐다. 그런데 춤은 온라인으로 배우는 것엔 한계가 있다. 유튜브 화질은 아무리 높여도 세세한 동작은 잘 보이지 않았다. 또 같이 춤 출 동료를 얻고 싶었다. 함께 으쌰 으쌰 하면서 즐겁게 춤추고 싶었다. 그러나 갈 곳이 없다. 나를 받아줄 댄스학원 어디 없는가 서러운 눈물이 차올랐다.

거의 매일 댄스학원 검색을 했다. 미련 접은 척했지만, 사실 전혀 접지 못하고 이모션 댄스학원과 아일랜드 댄스학원의 SNS 계정을 들여다봤다. 나보다 그 학원의 댄스 영상을 꼼꼼하게 보는 사람이 아마 없었을 것이다. 혹시나 하는 가능성을 찾고 있었다. 5명 같이 가면 새 반을 열어줄 수 있다고 해서 SNS에 “댄스 크루 뚝딱이 모집합니다. 같이 하실 분!” 하고 글을 올리기도 했지만, 그 누구도 호응해 주지 않았다.(눈물 주르륵)

이 정도 했으면 할 만큼 했다. 나와 댄스는 인연이 아닌가 보다. 하고 쓸쓸히 돌아서려던 그때! 나의 검색 레이더망에 개원한지 얼만 안 된 따끈따끈한 영 댄스학원이 걸려들었다. 오전 10시에 수업을 하는 곳, 집에서 차로 25분이면 도착하는 곳, 새로 생겼으니 텃세 부릴 회원도 없겠지? 선생님도 의욕에 가득 차 있겠지? 내가 그곳의 에이스가 될 테야!(?) 첫 만남에 손주 이름 고민하는 설레발 심각한 사람처럼 헛된 상상의 나래를 펴며 문의를 했고, 드디어, 무사히! 댄스학원에 등록하게 됐다.     


댄스학원에 가기 전, 어떤 곡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혹시 진도가 많이 나갔다면 다음 노래 들어갈 때 등록할까 해서다.

“지난 시간에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들어갔는데 전주까지만 진도 나가서 충분히 따라가실 수 있을 거예요.”

어! 아는 노래잖아! 최근 아이돌 노래를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익숙한 노래 제목이 반가워 “그럼 이번 시간부터 가겠습니다!”하고 답장을 보냈다.

노래만 좋아했던 거라 소녀시대의 무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게 떠올랐다. 검색해보니 소녀시대 무대 뿐 아니라 각종 커버 영상이 쏟아졌다. 커버 영상에는 ‘다이어트 댄스’, ‘살 빠지는 춤’이라는 문구들이 붙어있었다. 얼마나 혹독한 춤이길래 이러는 거지?

소녀시대는 한 인터뷰에서 데뷔곡인 ‘다시 만난 세계’를 1년간 연습했다고 말했다. 손 끝 각도와 보폭까지 딱딱 맞춰 칼군무를 선보일 수 있게 연습을 반복했다고 한다. 다른 예능에선 20년 만에 즉석에서 춤을 추면서 “나 다 까먹었는데.”, “틀릴 것 같은데.”하다가도 노래가 나오니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전주를 제외하고 쉴 틈이 하나도 없는, 펄쩍 펄쩍 뛰는 부분도 많은데 턴은 또 왜 그렇게 자주하는지. 팔다리를 크게 휘저었다가 얼른 제자리로 돌려야 하고 멤버가 많으니 동선도 컸다. 이 힘든 안무를 웃으면서 노래까지 부르며 할 수 있으려면 나에겐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할까? 시간을 주면 줄수록 나에겐 불리하다. 이미 마흔두 살이니까.

당시 5분만 걸어도 숨을 쌕쌕 내쉴 만큼 체력이 좋지 않던 때라, 원래 속도의 0.5배속으로 따라하는 데도 노래가 너무 빠른 느낌이었다. 0.25배속이 적당한 듯싶었다. 속도를 늦추자 소녀시대의 청량하고 기운찬 목소리가 걸쭉한 타령처럼 들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0.25배속으로 시작해 0.75배속으로 따라할 수 있을 정도로 맹렬히 연습을 했다. 원래 박자로는 절대 되지 않았다. 전곡이 아니라 30초 정도인데도 3시간이 걸렸다. 안무를 외우지는 못했고 보고 겨우 따라하는 것일 뿐이지만 그래도 몸이 움직여진다는 것이 기뻤다. 이정도면 망신은 안 당하겠지. 너무 못해서 민폐가 되지는 않겠지. 이마저도 까먹기 전에 수업 날이 빨리 다가오길 손꼽아 기다렸다. 16살 이후로 26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세계’가 두려우면서도 설렜다.          


*학원명은 모두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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