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양이쌤 Sep 05. 2024

나의 K-POP 역사

♬BGM 

PRODUCE101-나야 나     


오늘 밤 주인공은 / 나야 나 나야 나

너만을 기다려 온 / 나야 나 나야 나

네 맘을 훔칠 사람 / 나야 나 나야 나

마지막 단 한 사람 / 나야 나 나야 나          



아이돌에도 세대가 있다. 내가 댄스학원에서 주로 배우는 노래를 부르는 아이브, 르세라핌, 에스파 등이 4세대 아이돌이라고 한다. 사실 나는 30대부터 아이돌의 노래는커녕 음악 자체를 잘 듣지 않는다. 어릴 때는 유행하는 가요만 들었고, 청소년 때부터 한국 밴드 음악을 들었다. 20살 때 록밴드 동아리에 들어간 이후 주로 유럽이나 미국의 밴드 음악을 들었고, 20대 중반 취업한 이후에는 강의나 뉴스를 듣는 것만으로도 귀가 힘들었기 때문에 듣는 것 자체를 멀리했다. 정말 마음이 힘들 때 차 안에서 1~2시간 노래를 듣거나 따라 부르곤 했는데, 대부분 예전에 듣던 밴드 음악이었다. 그러다보니 20대 후반부터 노래방에 가면 “저는 신곡은 몰라서요.”라는 말부터 나왔다.

40대가 되어 새롭게 듣기 시작한 K-POP은 내가 예전에 알고 있던 그런 가요가 아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가 나왔을 때, “뭐시라 씨부리 쌌는기고.”라고 하셨던 엄마의 말을 이제 가슴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당시 이모는 알록달록한 그들의 머리카락 색과 너덜너덜한(?) 옷을 보며, “세상말세!”라고 까지 한탄하셨지. 

그런데 ‘서태지와 아이들’은 아이돌 0세대라고 한다. 시조새 같은 거다. 0세대에서 5세대까지 오는 동안 나에게 그나마 익숙한 아이돌은 1세대인 HOT와 젝스키스 밖에 없다. 1996년 HOT가 데뷔했을 때, 중3이었다. 여중을 다니고 있었는데, 한 반에 ‘강타마누라’, ‘토니부인’등이 꼭 한두 명씩 있었다. 당시 내가 토니와 문희준을 약간씩 닮았다는 이유로 나에게 연애편지를 보내는 애들이 있었을 정도로 그들의 인기는 대단했다. 


중2때까지 늘 ‘가요톱10’을 녹화해놓고 가수들의 춤을 따라 추던 나는 정작 아이돌의 역사가 시작되던 1996년부터는 남들 앞에서 춤을 거의 추지 않았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스스로 나서는 게 부끄러워지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따라 추기에 춤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남자 아이돌의 파워 댄스, 칼군무가 대세가 되면서 방구석에서 화질 낮은 녹화 테이프만 보고 따라 추는 건 불가능해졌다. 게다가 그 시절엔 왜 그리 카메라를 현란하게 돌려 대는지 몇 번을 봐도 어떤 춤을 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부턴 진짜 춤꾼들의 시대가 열렸다. 댄스동아리나 학교에서 춤 좀 춘다고 이름이 나있는 애들과 또 그 애들과 친한 애들만 무대에 올라갈 기회가 주어졌다. 나처럼 그냥 나대는 애들의 시대는 간 것이다.(비통하다 크흑)

그래서 아이돌에 관심이 없었던 걸까? 나는 당시 김종서와 김건모, 시나위, 강산에, 신성우 등을 좋아했는데, 댄스보단 록을 좋아하는 게 뭔가 좀 있어 보여서 그랬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남이 좋다는 건 싫다고 해야 하는 반사회적 성향이 다분했기에 아이돌에 더 반감을 가졌던 것 같다. 엄마는 나에게 “멀쩡한 애들 놔두고 못 생긴 애들만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신성우가 채시라와 사귄다는 발표를 수학여행 중 숙소에서 듣고 눈물을 흘린 걸로 보아 얼굴도 제법 따질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런 내 눈에 HOT와 젝스키스는 음악성도 없고, 얼굴도 별로고, 수준 낮은 애들이 좋아하는 가수였다.(어려서 철이 없었습니다) 장우혁과 은지원의 외모를 살짝 좋아해서, 수능이 끝나자마자 미용실에 가서 “장우혁처럼 해주세요.”하고 탈색을 하긴 했으나, 딱히 노래를 찾아듣거나, 팬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2세대(동방신기, 빅뱅, 소녀시대, 원더걸스, 샤이니 등), 3세대 아이돌(엑소,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레드벨벳, 트와이스 등)이 활동하던 시절엔 TV를 거의 보지 않았다. 20대 초반에는 낮에는 학교 가고, 밤에는 학원에서 아르바이트 하느라 바빴고, 20대 중반부터는 취업해서 밤낮 없이 일에 매달려야 했기에 다른 관심사를 둘 여유가 없었다. 조금의 짬이라도 나면 잠을 자거나 술을 마시거나 연애를 해야지 TV 볼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던 와중에도 아주 잠깐이나마 내 시선을 앗아갔던 아이돌이 있긴 하다. 

어느 주말 저녁이었던 것 같다. 해장을 위해 컵라면에 물을 붓고 TV를 켰다. SBS인기가요였나? 그냥 틀어놓고 라면을 한 젓가락 하려던 그 순간, 나는 젓가락을 툭 떨어뜨리고 입을 헤 벌린 채 화면에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작은 달콤하게 평범하게 나에게 끌려 언제나 그랬듯이 먼저 말을 걸어와~”

‘동방신기’였다. 

당시 내가 알고 있던 동방신기에 대한 불확실한 정보는 ‘이수만이 자신의 요상한 로망을 실현시키려 만든 괴상한 예명(시아준수, 미키유천, 유노윤호, 최강창민, 영웅재중)을 가진 아이돌’ 정도였다. 그런데 이게 뭐야. 너무 멋지잖아! 훤칠한 기럭지로, 샤프한 슈트를 빼입고, 환상적인 노래와 섹시한 춤을 완벽한 라이브로 보여주는 이들을 지금껏 내가 몰랐다니 인생을 낭비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부터 한동안 동방신기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팬심을 가져보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세계에 더는 빠져들지 못했다. 마치 사자성어와 같은 그들의 오글거리는 예명에 나는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동방신기 때문에 여러 영상을 보다가 갑자기 ‘샤이니’에 꽂히기도 했으나, 후에 ‘링딩동’이란 음악의 난해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슬그머니 탈덕하기도 했다.


이후 아이돌 음악에 제대로 귀 기울여 본 적이 없다. 내 마음 속에는 여전히 아이돌 음악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이해하지 못했고, 알지 못해서 거부감이 든 것도 있다. 빠른 템포와 잦은 변주, 알아듣기도 힘든데, 읽어 보면 더 이해가 안 되는 가사, 난해한 콘셉트와 과한 화장 같은 것들에 마음이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게다가 지나치게 마른 몸과 성형 등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고, 포토카드, 굿즈, 음반 사재기 문제 때문에 아이돌 산업 전체를 불편하게 여겼고, 그 산업의 종사자인 아이돌 또한 좋게 볼 수 없었다. 패싸움도 마다 않던 아이돌 팬덤에 대한 편견까지 더해져서 늘 세모눈을 치켜뜨고 있었으니 제대로 알아볼 생각조차 못했겠지. 


그런 내가 지금은 매일 아이돌 음악을 듣고, 아이돌 춤을 따라한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들을 동경하게 된 것은? 반추해보면 2017년 ‘프로듀스 101 시즌2’에 빠져들면서였다.

옳지 않다. 이거슨 정말 옳지 않았다. 청소년 포함 청년들이 안 그래도 이 지독한 경쟁 사회 속에 살면서 괴로운데, 그걸 집약한 듯한 아이돌 경쟁 프로그램은 너무나도 옳지 않은 것이다. 그것도 순위에 따라 피라미드식으로 배치한 저 좌석을 보라. 심지어 최상위권은 의상도 조명도 다르다. 게다가! 상위권이 될 만한 사람들만 편집되어 비춰지니 그 사람들만 인기가 많아지고, 투표를 더 받게 되고, 상위권은 더욱 굳어지고...... 이게 무슨 공정한 경쟁인가!

그런 옳지 않은 프로그램을 매번 챙겨보면서 얘는 이래서 안 돼, 쟤는 저래서 안 돼 하면서 평가질하고 있는 내 자신은 또 무엇인가. 자괴감에 시달리면서도 나는 그 프로그램을 본방 보고 재방 보고 하이라이트 편집도 보았고, 결국 내가 찍은 사람이 ‘워너원’으로 데뷔하는 것까지 감격적으로 지켜보았다.

가장 인상적으로 보았던 건, 시그널 송인 ‘나야 나’를 연습하는 과정이었다. 고음 작렬한 노래와 고난이도의 안무를 3일 만에 완성해서 테스트를 거친 뒤 실력에 따라 자리를 배정 받는다. 가장 잘한 사람은 가운데서 하이라이트 안무를 가져가고(가운데 무대는 위로 솟구치기까지 한다. 세상에나!), 등급이 가장 낮은 사람들은 처음엔 아예 등장도 못하고 조명 꺼진 무대 가장 낮은 곳에 자리한다. 잔인하다, 잔인해. 쯔쯧.

이 미션에서 김재환 연습생을 보면서 ‘나도 춤을 출 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이 사르르 피어올랐다. 춤을 춰 본 적이 없다는 김재환은 처음엔 혹평을 받아 눈물까지 보였지만, 3일 동안 밤낮없이 연습해서 안무를 틀리지 않고 해내어 자기 등급을 지킬 수 있었다. 저게 노력으로 되는 거구나. 저렇게 복잡한 안무도 노력하면 외워지는 구나. 혹시 나도? 


그때는 단지 생각 만이었다. 그러나 내 머릿속엔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라는 노래가사가 내내 맴돌았고, 이후 수없이 쏟아지는 아이돌 경쟁 프로그램을 통해 케이팝 커버 무대를 보게 된다. 멋지다, 재미있겠다, 나도 해보고 싶다가 쌓이고 쌓여 결국 더 늦기 전에 해보자로 폭발했다. 마흔이 넘으면서 초조해진 게 가장 큰 이유긴 하다. 더는 시간이 없다는 초조함이 나를 뭐든 하는 쪽으로 밀고당겨주었다.      

세상에 많고 많은 춤 중에서 굳이 케이팝댄스냐고 물으면, 나도 잘 모르겠다. 케이팝을 그렇게 좋아한 적도 없고 아이돌의 팬이 된 적도 없다. 그럼에도 내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것은 케이팝이 유일했다. 친구들과 함께, 또 나를 맘껏 드러내며, 내가 주인공임을 믿고 마냥 즐기며 췄던 춤은 케이팝댄스 뿐이었다. 


얼마 전 ‘춤 플래닛’이라는 케이팝댄스 관련 다큐멘터리를 잠깐 본 적이 있다. 유럽 청소년들이 케이팝댄스에 빠지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해 한 전문가가 이런 대답을 했다. 

“케이팝댄스는 소녀들이 공공장소를 되찾게 만들었다. 이전에는 이런 행동은 위험한 일로 인식되어 왔다. 또, 아이들은 케이팝댄스를 통해 자기 신체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 자기 신체로 무언가를 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게 됐다.”

구경하는 사람에서 보여주는 사람으로 변신 가능한 춤은 내가 배워본 춤 중에 케이팝이 유일했다. 탱고도, 재즈댄스도, 스윙댄스도, 살사도 나에게 이런 용기를 주지 못했다. 나를 무대로 불러내는 유일한 춤, 내 신체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을 자랑스럽게 만들어 줄 춤, 케이팝댄스여야만 했다.  



이전 05화 나의 댄스 역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