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양이쌤 Sep 19. 2024

Shall we dance?

♬BGM

H.O.T-빛     


다 함께 손을 잡아요 / 그리고 하늘을 봐요

우리가 함께 만들 세상을 / 하늘에 그려봐요

눈이 부시죠 / 너무나 아름답죠

마주 잡은 두 손으로 우리 / 모두 함께 만들어 가요          



취미를 계속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시간과 돈과 체력이다. 세 가지 조건이 삼위일체가 되어 좋아하는 마음의 샘이 마르지 않게 해야 취미를 지속할 수 있다. 나의 경우 매주 화, 목요일 1시간씩, 이동 시간까지 더하면 총 4시간 정도를 투자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집에서 하루에 30분 정도 연습할 여유도 내겐 있었다. 한 달 수업료 9만 원도 부담스러운 금액은 아니었다. 가끔 기분 내려고 옷 한두 가지 사는 것 외엔 따로 들어가는 돈도 없었다. 체력이 달려서 헬스를 다시 시작했더니, 처음보다 많이 힘들지 않았다. 삼위일체가 완벽히 잘 돌아가는데 난 뭔가 부족했다. 한두 달 하고 나면 ‘다음 달은 좀 쉴까?’하고 고민했다.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망설여지는 이유가 뭘까.


동료였다. 난 춤추는 걸 같이 즐거워할 동료가 필요했다. 댄스학원에는 혼자 등록하는 사람이 잘 없었다. 둘셋 씩 친구들과 함께 배우러 왔다. 혼자 등록한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혼자 왔든지 같이 왔든지 한 공간에서 같은 목적을 갖고 시간을 보내다 보면 동료애가 생긴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 그런 감정이 싹트지 않았다. 목적이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잘 추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왕 하는 거 진짜 아이돌처럼은 못해도 흉내는 내고 싶었고 30년 후 흐뭇한 미소를 띠며 볼 멋진 영상도 남기고 싶었다. 옷을 맞춰 입고 대형도 연습해서 촬영을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건 오로지 나만의 목적이었다.


댄스학원에서 네 번째로 배운 노래는 뉴진스의 ‘Hype Boy’였다. 정말 좋아하는 노래고 해보고 싶었던 춤이었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열심히 연습했다. 2주에 걸쳐 안무를 끝냈을 때 용기를 내어 선생님께 “이번에 다 같이 대형도 연습해서 맞춰보면 안 될까요?”하고 요청했다. “아휴, 그걸 어떻게 해요. 못해요.”하는 선생님의 대답도 당황스러웠지만, ‘그런 걸 왜 해?’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던 사람들 때문에 민망해졌다. 보통 선생님들은 학생이 더 해보려고, 도전하려고 하면 응원하고 도와주려고 하지 않나 싶어 실망했고, 다른 사람들과 내 마음이 전혀 같지 않다는 것도 황망했다. 나는 댄스학원까지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더 욕심이 있지 않을까 지레 짐작했던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혹시 대형 맞춰서 해볼 생각 없으세요?”하고 물었더니, “우린 안무도 못 외우는데 그걸 어떻게 해요.”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거기에 “연습 안 하시죠? 연습하면 되는데.”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내 의도는 “연습하면 다 잘할 수 있어요!”하는 격려의 말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듣기엔 “연습을 안 하니까 그렇지. 연습 좀 해라!”하는 타박의 말로 들렸으리라. 싸한 반응에 그 후론 단 한 번도 대형을 맞춰보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안무도 못 외우는데 대형까지 외우는 건 불가능하겠지. 학원을 다니는 내내 안무를 다 외우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건 그 사람들이 게을러서도 재능이 없어서도 아니다. 그저 배우는 목적이 나와 달랐을 뿐이다.

어떤 사람은 선생님과의 친분으로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즐기려고 다녔다. 다이어트를 위해, 친구들과 추억을 남기기 위해, 젊은 시절의 로망을 이루기 위해, 몸치 소리 그만 듣고 싶어서 등등 각각의 이유로 최선을 다해 배우고 있었다. 실력자(?)가 되고 싶다는 목적을 가진 사람은 오로지 나 하나였고,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서 안무가 외워질 때까지 연습하는 사람도 나밖에 없었다. 안무를 틀리지 않는 것까지는 대충 해내게 됐으니 이제 그 이상을 나가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케이팝댄스의 가장 큰 매력은 ‘칼군무’라 불리는 멤버들 간의 ‘합’에 있다. 아이돌의 춤 연습 영상을 보면 5명이든 13명이든 마치 한 사람이 춤추는 것처럼 발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까지는 아니라도 나도 ‘합’이 주는 쾌감을 느끼고 싶었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케이팝댄스는 춤이 아니라고 한다. 자유롭게 음악을 느끼며 몸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짜인 안무를 기계처럼 완벽하게 맞추는 것은 춤의 이상과 멀다고 말한다.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똑같은 안무를 추지만 각각이 가진 신체의 형태와 의상, 또 표정과 성격에 따라 전혀 다른 춤으로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하나의 유기체처럼 맞아떨어지는 춤! 참 멋진데 글로 설명이 안 되네. 케이팝 군무의 쾌감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세븐틴의 안무 연습 영상을 참고하시길.   

  

꼭 동료가 필요한 취미는 아니었다. 탱고나 스윙댄스처럼 파트너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축구나 밴드처럼 팀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뜨개질이나 기타처럼 혼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학원에서 춤을 배우고 집에서 연습하고 영상도 찍고 릴스도 올리면서 그렇게 만족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난 독서와 글쓰기처럼 혼자 하는 일에 매우 능숙한 사람이고 자영업자로 혼자 일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운동도 혼자 하는 헬스만 주구장창 하고 여행도 혼자 잘만 다니는데. 그런 내가 왜 이렇게 동료가 아쉬울까?

독서모임을 10년 넘게 운영해 왔다. 글쓰기 모임도 수십 차례 열었다. 혼자 해도 충분하지만, 함께하면 혼자 할 때는 절대 갖지 못할 것들을 얻을 수 있다. 함께 책을 읽다 보면 내가 당연하다 여겨왔던 생각이 박살 날 때도 있고, 새로운 관점 덕분에 가치관이 확장되기도 한다. 함께 글을 쓰다 보면 열 번을 퇴고해도 눈치 못 챘던 논리적 오류도 지적받고, 설명이 과하거나 부족한 부분도 대번에 알 수 있다. 그것만 해도 감사한데, 온갖 응원과 사랑까지 덤으로 받게 된다. 글쓰기 모임이 아니었다면 나는 절대 세 권의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이 글도 글쓰기 모임에서 반년 간 함께 쓴 것이다. 혼자 해야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해지는 일들을 함께 했기에 더욱 잘할 수 있었다. 내가 아무리 1년 내내 약속이라곤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파워집순이내향인이라 할지라도 배울 때만은 무조건 함께이고 싶었다. 내게 절실한 게 댄스학원과 선생님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동료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Shall we dance?”하고 손 내밀어 본 것은 아니다. 하기 싫어할 거라는 생각도 혼자만의 짐작일지 모르고, 어떤 사람은 누군가가 좀 더 부추겨주길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더는 특별히 말을 걸지 않았다. 나처럼 눈에 불이 이글거리는 학생이 들어오길 기다렸으나 3개월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도 그런 사람은 안 보였다. 심심하고 지루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렵게 찾은 댄스학원이었고, 대안도 없었다. 동료가 없음을 무엇으로 메울 수 있을지를 찾아야 했다. 어쨌든 오래오래 춤추고 싶으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