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ll it back, that siren / Pull it back, that siren
Yeah back with a new generation
닳아버린 운동화 다시 Lace up
문을 박차고 / Let's show the world
We don't stop it / 연습실 불은 계속 켜있어
4년 전, 스윙댄스 동호회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하루 다녀온 적이 있다. 단기로 두세 달 수업을 진행한 후 동호회를 만들 수도 있다고 들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과 손 붙잡고 춤출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지만, 용기를 내어 수업을 신청했다. 첫날 다녀온 후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만, 어쨌든 이왕 회비도 낸 거 수업은 끝까지 들어보자 싶었다. 그러나 다음 수업날이 오기도 전에 앞으로 참여가 어렵다는 메시지를 선생님께 보내게 되고 말았다. 막내 고양이가 많이 아팠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막내 고양이의 병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책방에 오는 학생이 “선생님, 랏샤가 이상해요.”하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고, 신장이 이미 치료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졌다는 말을 듣게 됐다.
2017년에 책방을 연 후 쏟아지는 일에 치여 3년을 정신없이 보내다 팬데믹을 맞닥뜨리게 됐다. 잠시 일을 내려 놓으면서 일과 관련 없이 하고 싶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그때 마침 스윙댄스 소식을 듣게 됐다. 집합 금지가 슬슬 유연해지던 때였고 모임에 대한 욕구도 일어서 신청했던 수업인데, 다녀온 다음날 막내 고양이가 앞으로 얼마 살지 못할 거란 진단을 받은 것이다.
한 달 뒤 막내 고양이는 세상을 떠났다. 나이 든 고양이 셋보다 다섯 살 막내가 먼저 내 곁을 떠날 것이란 상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랬던 건지 나는 심각한 펫로스 증후군에 시달렸다. 내가 잘 돌보지 못해서, 내 일에만 빠져서 일찍 떠나보내게 됐다는 생각에 큰 죄책감에 시달렸는데 특히 시한부 진단을 받은 전날 춤을 추러 간 것이 못 견디게 부끄러웠다.
애는 방구석에서 아픈 걸 꾹 참고 견디고 있었는데 나는 뭐가 신난다고 웃으면서 춤이나 추러 다녔을까? 고양이도 오로지 내 즐거움만을 위해 기르고 있는 건 아닌가? 내 삶의 전부라고 말하면서 그냥 방치만 해둔 것은 아닌가? 있는 일 없는 일 다 들춰가며 죄책감의 크기를 부풀려갔다.
계속 그러다간 우울증이 올 것 같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잊어버리기 전에 내 삶에 들어온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한 줄 한 줄 써나갔고 두 달 만에 책 한 권 분량이 되었다. 투고를 통해 운 좋게 출판을 하게 되었는데,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에서 쉽게 예상되는 행복뿐 아니라 고통과 슬픔도 솔직히 써주어 좋았다는 리뷰를 많이 받았다.
숨기지 않고 다 썼지만, 그때 쓰지 못했던 것이 춤을 추러 간 것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그건 도저히 부끄러워 쓰지 못했다. 고양이를 잘 돌보지도 않으면서 여러 마리를 키운다는 비난을 받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비난받을 만큼 유명한 작가가 아니라서 참 다행이긴 하다만 사실 그게 비난받을 일도 아니란 걸 이젠 안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나는 ‘놀면 안 된다’는 생각 속에 나를 가두었던 것 같다. 일하고 잠자고 먹고 씻고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나에게 남는 시간이 별로 없는데, 그 시간만큼은 고양이들과 함께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 한두 달에 한 번 본가나 시가의 가족을 만나는 걸 제외하면 나는 약속이 거의 없다. 1년에 한두 번 친구를 만날까 말까 하고, 특별한 용건 없이 “얼굴이나 보자, 수다나 떨자”하는 제안은 거절한다. 집을 좋아하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크지만, 고양이들과 있어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더 크다.
책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취미였으나 그게 일이 된 후엔 때론 스트레스가 되었다. 일터가 곧 집이라 이 공간과의 분리도 필요했다. 가끔은 노트북 들고 예쁜 카페에 가서 글을 쓰고 싶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집 밖에서 하는 취미를 갖고 싶다고도 생각했지만, 장시간 집을 비우기는 힘들었다. 고양이들이 어릴 때는 1년에 한두 번 혼자 여행도 다녔으나 노묘가 한둘 생기면서 이제는 펫시터를 두지 않고는 불안해서 여행도 갈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일 말고는 다른 일상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마음의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졌다. 매일 술을 마시는 사람,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사람, 수면제가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사람, 가족이 있어도 외롭다며 눈물짓는 사람, 갱년기가 오는지 늘 짜증이 난다는 사람, 부당했던 과거의 일이 시간이 갈수록 선명해져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사람 등등.
나에게도 곧 닥칠 일일지도 모른다. 여간해선 우울해지지 않는 성격이지만, 조금씩 늙어가는 내 육체에 대해 주기적으로 우울감이 왔다. 막내 고양이를 잃고 우울의 입구까지 다녀온 후로는 언젠가는 나에게도 마음의 문제가 크게 오리라 여기고 담담히 받아들이자고 마음먹고 있다. 그때를 대비해서 나는 사다리를 만들어 두고 싶었다. 우울의 맨홀에 빠졌을 때 딛고 올라올 수 있는 사다리.
처음 댄스 학원에 가기로 맘먹었을 때, 혹시 등록하자마자 고양이가 아프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당시 12살, 11살, 10살, 7살 고양이를 모시고 있었고, 그중 셋은 만성적인 질환을 앓고 있어 격주로 병원에 다니는 아이들이었기에 망설여졌다. 막내 고양이를 놓쳤듯, 춤에 빠져서 다른 고양이들도 중요한 시기를 놓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망설이는 시간 동안 고양이들은 죽음에 한 발 한 발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춤을 추러 가도 가지 않아도 시간은 흐르고 나는 늙고 고양이들도 언젠간 내 곁을 하나둘 떠날 것이다. 아직 네 번의 죽음을 더 맞이해야 하는데, 또 자신을 탓하며 마음을 우그러뜨리고 싶지 않았다. 하나가 떠나도 남은 애들을 명랑하게 돌볼 힘이 필요했다.
춤은 온통 정적인 내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석 달 단위로 학원을 등록하는데 석 달이 끝나면 밀린 일을 해치우기 위해 한두 주 쉬었다. 쉴 때마다 남편은 “니 빨리 댄스 학원 다시 가라.”라고 한다. 학원을 가지 않는 때 내가 너무 기운 없고 우울해 보인 단다.
댄스 학원을 쉬지 않기 위해 조금 일찍 일어나서 집중해서 짧은 시간에 일을 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일을 미루지 않게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을 찾게 됐다. 평생 고치지 못할 줄 알았던 불규칙한 수면과 과다 수면도 서서히 고쳐서 지금은 12시면 잠들어서 8시면 눈을 뜬다. 춤을 추러 가는 날은 아침부터 살짝 텐션이 높아진다.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고 평소엔 하지 않던 화장도 조금 해본다. 에너지 넘치게 수업을 끝내고 얼른 텀블러와 수건을 챙겨 학원으로 간다. 운전하는 동안 배울 노래를 반복해서 듣고 흥얼거리며 가사를 외운다. 수업을 마치고 땀이 범벅돼서 학원 밖으로 나오면 사우나에 다녀온 듯 상쾌하다. 그 기분으로 또 며칠을 쾌활하게 산다.
작년 가을에 첫째 고양이 룬을 무지개다리 너머로 떠나보낸 후 학원을 그만둘까도 생각했었다. 간 종양 판정을 받고 1년 넘게 잘 지내다 갑자기 상황이 나빠져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났다. 룬의 시한부 판정 이후에도 계속 춤을 췄고, 떠나보내고 한 달을 쉬긴 했지만 다시 춤을 추러 갔다. 그간 만들어 둔 활력과 체력의 사다리가 꽤 쓸모가 있었던지 슬픔의 맨홀에서 빨리 올라올 수 있었다. 덕분에 막내를 죄책감으로 보내준 것과 달리 첫째는 그간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고마웠다고, 너도 날 만나 분명히 행복했을 거라고 말하며 보내줄 수 있었다.
앞으로 세 고양이를 보살피고 보내줄 일이 남았다. 그 일 또한 잘해 낼 수 있도록 나는 꾸준히 즐겁게 몸을 흔들어 볼 생각이다. 사실 댄스 에세이를 마무리 짓는다는 핑계로 학원에 가지 않은지 한 달이 되었다. 몸이 근질근질해 가끔 음악을 크게 틀어두고 책방을 누비며 춤을 추고 있다. 글 쓴다고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사다리가 녹슬고 부서졌다. 튼튼하게 고쳐서 잘 유지하려면 너무 오래 멈추는 것은 옳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