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지수-꽃
이젠 안녕 goodbye 뒤는 절대 안 봐
미련이란 이름의 잎새 하나
봄비에 너에게서 떨어져 꽃향기만 남아
꽃향기만 남기고 갔단다
선생님에게 도통 정이 들지 않았다. 잠깐씩 쉬기는 했으나 약 1년을 다녔는데도 선생님과 학원에 애정이 생기지 않았다. 주 2회씩 약 80회 얼굴을 보았는데, 보통 이 정도면 싫어하던 사람도 좋아지게 마련인 시간이다. 그런데 왜 늘 데면데면한 걸까?
처음 학원을 찾아 이곳저곳 전화나 문자를 해볼 때 불친절한 대응을 몇 차례 겪다 보니 나중에는 문의하는 것 자체가 망설여졌다. 그때 가장 친절한 대응을 해주었던 곳이 지금의 영 댄스학원이었다. 문자로 문의를 했었는데, 답변도 빨리 왔고, 말투도 친절했다. 학원에 문의할 때마다 무슨 곡을 하는지, 언제 시작하면 되는지, 초보도 따라갈 수 있는지 등을 물었는데, 질문에 답을 다 해준 곳은 영 댄스학원이 처음이었다. 친절한 답변에 반해 바로 3개월을 등록했다.
첫 수업 때 반갑게 인사하고 들어가는 나와 달리 선생님의 반응은 조용했다. 문자와는 달리 너무나 어색한 대응을 하는 선생님 때문에 내가 못 올 곳을 왔나 생각했다. 처음이니 그렇겠지 했는데 3개월, 6개월, 9개월이 지나도 어색한 우리 사이는 개선되지 않았다.
나도 다정한 선생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태도가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과한 친절이나 가식적인 칭찬을 더 싫어해서 선생님의 차분하고 조용한 태도는 오히려 좋았다. 문제는 수업 내내 낮은 텐션이 유지되다 보니 뭐 하나 물어보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모든 학생들이 나와 비슷한 실력의 초보였기 때문에 금세 안무 순서를 까먹거나 디테일한 동작을 따라 하지 못했다. 안무를 겨우 외워 따라 하더라도 내 동작은 선생님의 동작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는 당연히 학원을 다니면 그런 부분을 봐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저 동작을 외우는 수준이라면 유튜브 보면서 혼자 해도 될 일이니까. 디테일을 봐주거나 동작을 유려하게 하는 팁 같은 것을 배울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가 너무 못해서 가르쳐 주지 않는 건가 생각도 해봤지만, 몇 개월이 지나도 티칭은 변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안무를 모르면 선생님께 묻지 않고 쉬는 시간에 서로에게 물었다. 그러나 정답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학생들이 그러고 있으면 가르쳐 줄 만도 한데, 쉬는 시간에 선생님은 영상을 보면서 다음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니 선생님도 쉬는 게 맞지만, 수업 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학생들을 봐주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학생이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지켜봐야 각각 뭐가 부족한지 알 텐데,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쉬는 시간에는 유튜브를 봤다. 몇 번 안무를 함께해 준 뒤에는 학생들끼리 계속 반복을 하는데, 그때도 선생님은 학생들 하나하나를 봐주지 않았다. 그저 노래를 반복해서 틀어주는 것 말고 선생님이 하는 게 뭔가 하고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정말 안타깝게도 그나마 안무를 외우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내가 안무를 틀리면 다른 사람들도 틀리는 일이 빈번했다. 내가 그냥 머리를 만지고 있는데, 그게 안무인 줄 알고 따라 하는 사람도 생겼다. 웃픈 상황이었다.
가장 화가 나는 건 선생님이 안무를 틀리는 상황이었다. 나는 예습을 하는 학생이다. 다음에 할 곡을 반복해서 듣고 가사도 어느 정도 외운 다음 대략의 안무 순서를 익힌 뒤 수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안무와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안무가 살짝살짝 달랐다. 완벽하게 똑같이 할 필요는 없는데, 선생님이 틀리는 건 대부분 포인트 안무였고, 박자까지 틀릴 때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참다가 한 번씩 “선생님, 그 부분 이 박자가 맞는 거 아니에요?” 하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자기가 맞는다고 했다. 집에 와서 확인해 보면 내가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다음 시간에 다시 가르쳐 주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선생님은 단 한 번도 잘못 가르쳐 주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렇게나 가르쳐 줘도 우리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싶어 실망스러웠다. 왜 열심히 준비하지 않을까? 왜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을까? 나는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만 불만인 건 아니었다.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고 엘리베이터에 타면 불만을 토로했다. 진도가 빠르다거나, 선생님이 너무 의욕이 없다거나, 좀 여러 번 가르쳐 주면 좋겠다거나...... 그럼 그때마다 선생님께 요청을 하면 될 텐데 뒤에서만 이야기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갔다. 왜 선생님과 학생들이 서로 소통을 하지 않을까?
학원에 다녀온 날이면 늘 남편에게 투덜댔다. 선생님이 맘에 안 찬다. 배우는 사람들이 연습을 안 해 와서 재미가 없다. 서로 이야기하면서 더 좋은 방법을 찾아가면 될 텐데 앞에서 말 안 하고 뒤에서 말하는 게 싫다 등등. 내 입은 늘 부루퉁하게 나와 있었다.
“니가 다른 데로 가면 되겠네.”
듣다듣다 질린 남편이 말했다. 우문현답이다. 나는 왜 이 학원에 매달려 있는가. 이래서 조상님들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을 했던가.
나는 싫으면 떠나라는 말이 싫었다. 싫은 곳을 좋아지는 곳으로 변화 시키는 게 내 성향에 맞았다. 충분히 노력하고 소통하면 좋아질 수 있는데 떠나라는 것은 너무 폐쇄적인 말 같았다. 유사품으로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이란 말도 좋아하지 않는다. 문제의 원인을 찾아 해결해서 더 나아지겠다는 의지를 단번에 꺾는 말이니까.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 일도 절대 달라지지 않겠다는 몽니 같아 답답했다.
내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내가 어찌해 볼 수 있는 것은 달리 떠오르지 않았다. 그곳은 선생님의 공간이다. 선생님의 철학대로 가르치는 곳이다. 나 또한 내 공간인 책방에서는 철저히 내 가치관대로 운영하고 가르친다. 서로 뜻이 맞지 않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있으면 내 쪽에서 수업을 거부하기도 했다. 댄스 학원 선생님도 자신이 알고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학생을 대하고 있을 것이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나와 다를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니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20대 선생님이 40대 학생들을 대면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고, 취향과 수준, 목표가 다른 사람들을 한꺼번에 가르치다 보니 누구에게 맞춰야 할지 어렵기도 할 것이다. 나 또한 강사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학생들 앞에서 내가 모른다는 것,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20년이 넘게 흐른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알고 있는데도 ‘잘 모르겠다’, ‘더 공부하고 다음 시간에 알려줄게’라는 말이 쉽게 나온다. 이렇게 유연해지기까지 많은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다. 학원을 연지 1년도 되지 않은 초보 선생님에게 나는 20년차의 노련함을 갖추기를 바랐다.
그만두기로 결심을 굳힌 데는 한 학생의 리뷰 글 때문이다. 나와 같이 배우는 학생 중 50대 여성이 있는데, 그분이 영 댄스학원에 대해 블로깅한 것을 다른 댄스 학원을 찾던 중 우연히 보게 되었다.
“동작 하나하나를 정말 꼼꼼하게 설명해주세요. 될 때까지 반복하게 해주시고 이미 잘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속도를 천천히 해서 처음 하는 사람도 잘 따라 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 사람은 내가 당연하다 생각한 것에 대해 칭찬을 하고 있었다. 나는 1년을 다니는 동안 춤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계속 공유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단 한 번도 학원 계정을 태그 하거나 학원 이름을 쓴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여러 번 학원을 홍보하는 게시글을 쓸 만큼 큰 만족을 얻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선생에게 같은 방식으로 배우는데, 나와 정반대의 판단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고 내가 잘못됐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렇다. 중이 떠날 때다. 새 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