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가호-시작(이태원 클라스 OST)
원하는 대로 다 가질 거야
그게 바로 내 꿈일 테니까
변한 건 없어 버티고 버텨
내 꿈은 더 단단해질 테니
다시 시작해
영 댄스학원을 그렇게 씹어 대면서도 1년을 꾸역꾸역 다녔던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새로 갈 ‘절’이 없었기 때문이다. 댄스를 배우기로 결심하고 학원을 찾았을 때, 그때 나는 내가 인구 12만의 소도시에 살고 있음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1년을 넘게 주변 댄스학원에 나와 맞는 시간대의 반이 생기길 기도하다가, 영 댄스학원을 발견하게 됐고, ‘ㅎㅎㅎㅎ’를 잔뜩 붙인 친절하고 다정한 그 문자에 속아(?) 영 댄스학원에 발을 들인 것이다.
한두 달 만에 선생님께 실망한 나는 다시 이모션 댄스학원과 아일랜드 댄스학원의 인스타그램을 들락거리기 시작했지만, 오전반이 개설될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떠나지 못하는 중이 된 것이다. 즐겁자고 시작한 일에 스트레스만 잔뜩 받는 날이 계속되었고, 결국 자아성찰 끝에 내가 이상하다는 걸 인정하고 깨끗하게 그만두....지는 못하고 잔뜩 질척거렸다. 그만둔다는 문자를 보낼 때 “다음 달에 가능하면 다시 연락드리고 갈게요~!”라는 여지를 두었다. 혹시 갈 데 없으면 다시 가려고......
그렇게 댄스학원을 못 간지 2개월이 흘러버렸다. 갈 곳은 여전히 없었다. 통영 헬스장에서 하던 수업도 수강생이 없어 사라진 것 같았다. 혹시나 해서 책방에 오는 학생들에게 댄스를 배울 곳이 없는지 수소문했지만, 어른들이 다니는 학원은 모른다고 했다. 인근 초등학교 학부모 동아리에 댄스팀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나는 초등학교 보낼 자식이 없다. 왜 통영에는 케이팝 댄스를 추고자 하는 어른이 없을까? 줌바댄스도 있고, 라인댄스도 있고, 폴댄스도 있고, 밸리댄스도 있고, 쌈바, 룸바, 차차차도 있으면서! 왜 때문에 케이팝 댄스만 없느냐고!
거제도에 있는 댄스학원의 인스타그램 계정만 무기력하게 들어갔다 나왔다 하던 중 드디어 기다리던 소식이 올라왔다. 아일랜드 댄스학원이 확장 이전을 하면서 오전 성인반을 모집한다는 피드가 올라온 것이다! 이전 기념으로 일주일간 무료 수업을 한다는데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나는 당장 체험 수업 신청서를 보냈다. 나이를 적으라고 해서 살짝 당황하긴 했으나, 만으로 적어 보내는 귀여운(?) 꼼수를 부렸다. 왠지 조금이라도 어려 보여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오랫동안 댄스학원을 찾아 헤매면서 일이 쉽게 풀린 적이 없어 긴장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수업 전날 ‘오전반은 신청자가 없어 무료 수업을 진행하지 않습니다. 저녁 수업으로 신청해 주세요’라는 문자가 왔다. 온 우주의 댄스 신이 나를 거부하는군. 저녁은 여전히 시간이 안 되지만, 마침 수업이 없는 날이 있어 경험이나 해보자 싶어 찾아갔다. 무료라 그런지 약 스무 명의 사람들로 복작이는 교실로 들어서는 순간, 선생님의 ‘쨍’한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영 댄스학원의 낮은 텐션에 투덜거리던 내게 댄스 신은 정확히 그 반대에 있는 선생님을 보내주셨구나. 오마이갓! 50분 동안 떨어지지 않는 텐션, 한 옥타브를 가뿐히 넘기는 높은 목소리, 마이크가 없이도 강당 하나를 채울만한 성량. 온통 기가 빨려 학원을 나설 때 혼이 나가 있었다.
아, 낮아도 문제, 높아도 문제라면, 결국 내가 문제로구나. 나처럼 까탈스러운 학생이면 선생님도 정 떨어지겠다. 물론 선생님이 마음에 쏙 들어도 이곳은 다닐 수가 없었다. 난 저녁에 시간이 안 나니까. 이제 정말 댄스학원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하나? 아니면 민망하지만 영 댄스학원으로 돌아가야 하나?
나는 매년 2월 말에 수업 시간표를 짜고 3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같은 시간표를 운영한다. 이번에도 여느 때처럼 시간표를 짜고 있었다. 어! 그런데! 의도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화, 목요일 저녁에 일찍 마쳐지는 쪽으로 시간표가 짜이는 것이다! 댄스 학원 다니려고 억지로 바꾼 것도 아닌데 학생들 사정에 맞추다 보니 딱 그 시간에 있던 수업이 다른 요일로 옮겨갔다. 어맛! 이것은 댄스 신의 은혜인가! 나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던 것인지 어떤 학원도 갈 수 있게 됐다!
시간표가 정리되고, 3월 수업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드디어 새 댄스학원에 갈 결심이 섰다. 애초에 가장 가고 싶었던 이모션 댄스학원으로 마음을 정했다. 오랫동안 유지된 성인취미반이 있는 곳, 촬영을 잘해주는 곳, 고수들로 보이는 사람이 많은 그 곳. 뚝딱이가 갈 곳은 아닌 듯 싶었지만, 미뤄왔던 만큼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혹시나 수업 전날, “폐강되었습니다.”라는 문자가 올까 싶어 잠을 설쳤지만, 다행히 등록 안내 문자만 왔다. 새로 산 전투복(?)을 입고, 물통을 챙기고, 운동화 끈을 조아 매고 나의 새 ‘절’, 이모션 댄스학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