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QWER-고민중독
거울 앞에서 새벽까지 연습한 인사가
손을 들고 웃는 얼굴을 하고서 고개를 숙였다
아, 아, 아직도 준비가 안됐나 봐요
소용돌이쳐 어지럽다구
쏟아지는 맘을 멈출 수가 없을까?
너의 작은 인사 한마디에 요란해져서
어떤 집단이든 오래 있었던 사람들 간의 끈끈함이 새로 유입되는 사람들에게는 큰 장벽처럼 느껴진다. 집단이 잘 유지되려면 분명 연대감이 중요한데, 신입 입장에서는 자기들끼리만 친하다는 식으로 여겨질 수 있다. 10년간 독서모임을 유지하면서 내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기도 했는데, 그래서 ‘회식은 없다, 사적인 만남을 커뮤니티 내에서 모집하지 않는다’ 등의 규칙을 두었다. 그러나 아무리 친하다는 걸 숨기려 해도, 말투나, 호칭, 분위기 등에서 드러나기 마련이다. 결국 신입의 입에서 “오래 같이해서 친하신가 봐요.”하는 말이 나온다.
새로 온 사람들에게 얼마만큼의 친절과 관심을 보여야 할지도 늘 고민이었다. 나이나 직업, 결혼 여부, 사는 동네 같은 걸 물어보는 게 나을지, 같이 밥 한 번 먹자고 해야 소속감이 생길지, 말을 얼마나 시켜야 관심을 적당히 표현하는 게 될지, 연차가 아무리 쌓여도 답을 알기 어려운 질문들이었다.
새 댄스학원에 가기로 결심하면서 내가 그곳에 잘 섞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10년 넘게 내가 만든 모임을 운영하고, 내가 만든 수업을 진행하기만 해봐서, 다른 집단에 새로 들어가는 게 쉽지 않게 느껴졌다. 영 댄스학원에 갈 때는 큰 부담이 없었다. 문 연지 얼마 안 된 곳이니 대부분 신입이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또 분위기가 함께 무언가를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인사 정도만 나누면 다른 이야기 나눌 일이 없었다. 끝나고 같이 밥 먹으러 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때때로 학원에서 회식도 열었는데, 나는 춤을 함께 추고 싶은 거지, 친구가 필요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수업 시간 이외에 어울리고 싶지는 않았다. “같이 대형 맞춰서 연습해보면 안 되나요?”하고 건의했을 때 “어려워서 못할 걸요.”했던 선생님과 왜 그런 걸 하자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눈빛들을 본 후로는 동료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팍삭 시들어서 더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있다.
독서모임을 할 때도 그냥 책만 읽지는 않았다. 나는 끊임없이 뭔가를 해보자고 하는 사람이었다. 독서신문을 만들자, 소설 낭독회를 열자, 작가를 초청하자, 다른 도시로 책방 여행을 가자 등등. 사람들과 합심하여 손에 잡히는 결과물을 만들고 싶었다. 혼자 하던 같이 하던 시작을 했으면 결과를 보아여 직성이 풀렸다. 그런데 영 댄스학원에서는 1시간 춤추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어떤 게 안 되는지도 알 수 없었고, 성과물도 없으니 시간 낭비하는 것 같아 허무했다.
이모션 댄스학원을 선택한 데에는 결과물을 확실히 만들어 준다는 것이 가장 컸다. 사람들과 합을 맞춰 춤을 춰보고도 싶었다. 그걸 가장 열심히 하는 곳이 이모션 댄스학원이었다. 그런데 이미 합을 잘 맞추고 있는 사람들 틈에 내가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까? 잘 못하는 사람이 들어가면 귀찮고 싫지 않을까? 아이돌처럼 멋지게 옷을 갖춰 입고 열정적으로 춤추는 사람들인데 내 존재가 민폐가 되지 않을까? 그건 둘째 치고 말이나 걸 수 있을까? 나도 같이 연습하고 촬영해도 되냐고 언제쯤 말하는 게 좋을까? 처음부터 그러면 너무 나대는 것 같겠지? 마치 5월에 전학 가는 학생처럼 걱정에 근심에 시름까지 겹겹이 쌓고 있었다.
처음 배운 안무는 ‘RISE’의 ‘Siren’이었다. 30초밖에 안 되는 짧은 노래였는데, ‘이 춤추면 구급차 불러야 함’이란 영상이 있을 정도로 격한 안무다. 다음 시간에 촬영을 하는 것 같은데, 원장님도 선생님도 어느 누구도 촬영에 대해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먼저 물어보면 되는데 왠지 쑥스럽기도 하고, 잘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다음에 좀 익숙해지면 물어보자 생각했다.
다음 수업에 가니 촬영을 위해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한창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밖에서 기다릴까 하다가 어떻게 하는지 구경이나 해보려고 들어갔는데, “같이 촬영하시지 않을래요? 오늘 의상이 딱 저희하고 맞춘 것 같은데요!”하고 누군가 다가와서 물어봐주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그래도 될까요?”하고 조심스레 답했다. 이후로는 아주 자연스럽게 “저도 촬영하고 싶어요!”하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먼저 친절하게 말을 걸어준 사람 덕분에 홀로 쌓아갔던 걱정탑을 와르르 무너졌다.
나이가 이렇게 들었는데도 여전히 신입은 두렵다. 처음 속하게 된 곳에서는 언제나 실수를 많이 했다. 학원에서 처음 일할 땐 복사를 못해서 운 적도 많았다. 잘못 복사된 용지를 들키면 혼날까 봐 숨겨뒀다가 집에 가지고 온 적도 있다. 친절하고 다정하게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스물이 넘어서 그거 하나 못하느냐고 핀잔을 주는 사람들 때문에 복사할 때마다 긴장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기들 복사기도, 종이도 아니면서 신입에게 왜 그리 모질게 굴었는지 묻고 싶다.
시간이 흘러 내가 고인물이 되었을 때 나 또한 신입에게 친절하지 못했던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 간섭하고 신경 쓰면 상대방이 더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 모른 척 할 때가 많았다. 내 친절을 이용해서 귀찮게 하는 사람도 있었기에 나중에는 일부러 차갑게 굴기도 했다. 뒤늦게 다시 신입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니 내 모임에 오는 사람들에게도 좀 더 다정하지 못했던 게 미안하다. 글쓰기를 배우러 오는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먼저 말 걸고, 인사하고, 다정하게 안내해주는 사람이 되는 게 늘 쉽지만은 않다.
이모션 댄스학원 2주차가 되었을 때, 새로 체험하러 오신 두 분이 있었다. 안무가 힘든데 진도가 빨라서 그 분들이 다음 수업에 안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한 사람이 많다 보니 수업 진행이 빡빡한 편인데 그래서 신입에겐 불친절하다고 느껴질 것 같았다. 나도 그랬으니까. 집에 와서 “너무 어렵고 빠르니까 새로 온 사람들이 힘들잖아. 기존 사람 보다 신입을 좀 배려해 주면 좋겠다.”고 하니까, 남편이 “니는 수업할 때 오래 다닌 학생한테 맞추나, 아니면 새로 온 학생한테 맞추나?”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나도 오래 다닌 친구들의 수준이나 필요를 떠올리면서 책을 선정하고 수업 주제도 정하는 편이라 말문이 막혔다.
그래도 신입에게 작은 배려와 친절이 당연했으면 좋겠다. 말 한마디라도, 신경 쓰고 있다는 눈빛 한번으로도 계속할 용기를 가질 수도 있으니까. 처음 내게 말을 걸어준 분처럼 다음 수업에 가면 내가 먼저 그 분들께 말을 걸어 보기로 결심했다. “힘드시죠? 저도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따라가기 쉽지 않네요. 같이 열심히 해봐요!”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