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여자)아이들-퀸카
아무거나 걸친 Girl 퀸카카카
마르거나 살찐 Girl 퀸카카카
자신감 넘치는 Girl 퀸카카카
I am a 퀸카
You wanna be the 퀸카
영 댄스학원에 다니면서 남편 옷을 입기 시작했다. 남자 옷을 입어보니 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특히 바지는 신세계였다. 주머니가 많고 깊어 여러 물건을 넣어 다니기 좋았고, 허리 사이즈가 널널해서 소화도 잘됐다. 물론 그런 이유로 입고 다닌 건 아니고, 춤출 때 통이 넓은 바지를 입어야 춤 못 추는 게 티가 덜 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스타일을 맞춰 티셔츠도 남편 것을 입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스트릿 패션 브랜드를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나의 힙합 스타일이 완성되었다.
그런데 이모션 댄스학원에 오면서 옷 욕심이 커졌다. 촬영할 때마다 아이돌 무대 의상을 그대로 재현해 입고 오는 분들 때문이다. 살랑거리는 프릴과 레이스가 달린 치마, 스터드가 박힌 가터벨트나 하네스, 화려한 프린트의 브라탑과 크롭티. 어디서 저렇게 예쁜 옷들을 사는 걸까? 인터넷을 뒤져봐도 마땅히 파는 곳을 찾지 못했다. 댄스 의상만 따로 파는 온라인 쇼핑몰이 있었지만, 거기에도 뭔가 그럴듯한 옷들은 없었다.
옷을 살 수 있다고 해도 과연 내가 그 옷을 입을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도 의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치마나 반바지를 거의 입지 않았다. 하체가 매우 튼실한 체형 때문에 교복 치마를 입는 것이 늘 부끄러웠다. 취업을 하면서 정장을 입어야 할 일이 많아 치마를 입기도 했으나, 그럴 때는 늘 두꺼운 까만 스타킹과 함께였다. 맨다리를, 그것도 허벅지가 보이는 살랑거리는 치마라니,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크롭티나 브라탑만 입는 것도 마찬가지다. 크롭티 밑으로 볼록 튀어나온 뱃살은 어디로 구겨 넣어야 하지? 브라탑만 입으면 출렁이는 내 팔뚝살과 겨드랑이살은 무엇으로 싸매야 하나? 가뜩이나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는데 보정속옷을 입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춤을 추려면 체력이 있어야 하기에 다시 피트니스를 등록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 그것도 남편에게 멱살 잡혀 끌려 나가는 지경으로 꾸역꾸역 다니고 있다. 어쨌든 그 덕인지 체력은 조금 생긴 것 같은데 몸무게는 영 줄어들지가 않고 뱃살도 그대론 것 같다. 예쁜 옷을 입고 춤을 추려면 적어도 5kg은 빠져야 할 것 같은데, 0.5kg도 빠지지 않으니 한숨만 나왔다. 몸에 대해 생각하지 말자는 다짐은 또 무너진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만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몸에 대해 무관심해지려고 하면 할수록 내 몸이 복어처럼 부풀어 보인다.
내가 하도 댄스 의상을 검색하다 보니 인스타그램에 의류 쇼핑몰 광고가 계속 뜬다. 클릭해서 한참을 구경한다. 때론 장바구니에 사고 싶은 걸 죄다 담아보기도 한다. 그러다 결국 창을 닫아버린다. 모델이 입었을 때 예쁜 옷이라 해도 내가 입었을 때 같은 핏을 내긴 힘들다는 것을 수십 년의 쇼핑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 유명 스포츠웨어 브랜드에서는 요즘 아주 다양한 체형의 모델을 볼 수 있다. 빅사이즈 쇼핑몰도 꽤 많이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옷은 아주 마른 사람들의 몸 위에 걸쳐져 있다. 어떤 쇼핑몰은 보정을 너무 심하게 해서 모델이 늘어난 치즈스틱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전지적 참견 시점>이라는 TV프로그램에 모델 신현지와 코미디언 신기루가 식사하는 장면이 나온 적이 있다. 남자 모델 동료 두 명도 함께였는데, 한 입씩 나오는 코스요리를 절반도 먹지 못했다. 신현지가 잘 못 먹는 남자 동료를 보고 “저 오빠도 평소엔 거의 아메리카노만 먹는데!” 하면서 크게 웃는 장면에서 나는 같이 웃을 수가 없었다. 꼭 그렇게 마른 몸이어야만 모델을 할 수 있는 걸까. 패션의 세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평균적인 신체에도 아름다울 옷을 만들기가 그렇게 어려운 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
성인이 된 이후 짧은 기간 급격한 다이어트를 두 차례 했다. 22살 때와 28살 때. 첫 번째엔 운동과 식이조절로 10kg을 빼서 48kg이 됐고, 두 번째엔 운동과 식이조절에 한약을 먹고 주사까지 맞아서 겨우 겨우 8kg을 뺐고, 54kg이 됐다. 그 이후엔 무슨 짓을 해도 몸무게가 드라마틱하게 줄어드는 경우는 없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기뻐하기보다 걱정이 앞설 것 같다. 병이라도 생긴 게 아니라면 그렇게 살이 빠질 리가 없는 나이가 되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마른 나’를 꿈꾼다. 스무 살 무렵부터 살만 빼면 이 옷도 입고, 저 옷도 입어야지 하면서 사둔 옷이 옷장 속에서 곰팡내를 풍기고 있다. 그 옷들도 처치곤란인데, 또 다른 옷을 찾아 인터넷을 뒤지고 있는 나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오늘도 마음에 드는 원피스 하나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 옷을 사서 냉장고 앞에 걸어놓고 ‘저 옷을 입고 춤추는 날’을 염원하며 쫄쫄 굶어야 되는 걸까?
옷에 몸을 맞추기 위해 평생 다이어트를 했다. 드디어 오버사이즈가 유행하는 시대가 와서 이제는 옷에 몸을 맞춰도 두 사이즈는 남겠구나 싶었는데, 44 사이즈의 댄스 의상이 나를 또 초조하게 만든다. 오늘 아침에도 체중계에 올랐다. 300g 쪘네. 날씬하고 젊고 예쁜 댄스 동료들을 부러워하는 나에게 남편은 “니는 힙합여전사 콘셉트로 가면 되겠네!”라고 놀려서 옆구리를 꼬집어 주다가 문득 ‘그거 좋겠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옷에 몸을 맞추기보다 몸에 옷을 맞추는 게 내 정신 건강에 좋을 듯하다!라고 생각만 하고 오늘도 장바구니에 ‘입도 못할 천 쪼가리’ 같은 옷들을 쓸어 담고 있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