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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쌤 Dec 13. 2024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BGM

김연자-아모르파티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

이제는 더 이상 슬픔이여 안녕 왔다갈 한 번의 인생아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

눈물은 이별의 거품일 뿐이야 다가올 사랑은 두렵지 않아

아모르 파티 아모르파티 아모르 파티     


          

“화수 님은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이모션 댄스 학원에 입성한 지 한 달쯤 됐을 무렵이다. 새 안무를 들어가면서 “여러분, 이 안무 아시죠?”하고 선생님께서 시범을 보였다. 나는 속으로 ‘아, 나 저거 아는데, 어디서 봤더라. 아, 맞다!’하고는 “서태지와 아이들!”하고 대답했는데, 아주 다행스럽게도 목소리가 작아서 “르세라핌요~!”하는 다른 사람들의 대답에 묻혔다. 그러곤 어두운 조명 아래 빨개진 얼굴로 깨달았다. ‘여기에 서태지 알 만한 사람이 없겠구나......’

처음엔 연령대가 다양해 보였지만, 몇 번 더 보니 대부분 20, 30대로 보였다. 40대 이상은 없는 것 같았다. 이전 학원은 수강생도 적은 데다가, 대부분 40대 언저리였고, 50대인 분들도 계셔서 내 나이가 의식되진 않았다. 그런데 이곳은 아무래도 분위기가 다르다는 게 조금씩 느껴졌다.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분이 자신을 ‘할미’라고 칭한다거나,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분을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거나 하는 상황 속에서 나이를 들키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이가 많다고 쫓겨나거나, 갑자기 사람들이 극존칭을 쓰며 어려워한다거나 그러진 않겠지만(사실 큰 관심도 없겠지만), 이상하게도 숨기고 싶었다. 나이에 대한 편견이 없다고 여겨왔는데 왜 이런 마음이 들었던 걸까?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마흔 중반에 다다르면서 나는 부쩍 나이 드는 게 두려워졌다. 동안이란 소릴 많이 들으며 살아왔기 때문인 듯하다. 대학생 때 동전이 없어 지폐로 버스 요금을 내면 기사님이 내 얼굴을 슬쩍 보고 청소년 요금으로, 때론 어린이 요금으로까지 계산해 잔돈을 주었다. 어려 보이는 게 싫어 정장 스타일을 고수하던 때도 있었다. 우습게 보이는 것 같아서 일부러 노숙하게 입고 말도 세게 했다. 결혼한 이후에도 어딜 가면 어리게 보고 반말을 하거나 무례하게 구는 사람이 많아 나이를 은근슬쩍 드러내곤 했다. 그러면 깜짝 놀라면서 “그렇게 안 보인다.”며 사과했다. 어린 사람에게도 무례하면 안 되는 건데 여전히 나이가 벼슬인 곳이 존재한다.

30대 중후반에 들어서면서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서서히 줄었고, 그때부터는 오히려 어려 보이고 싶어졌다. 학원에 출근하는 게 아니라 내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턴 옷차림 부담이 없어서 캐주얼한 옷을 많이 입게 됐고, 어린이, 청소년과 얘기를 많이 나누다 보니 좋게 말하면 마인드 노화도 느린 편이다. 그런데, 이제 몸이 늙기 시작한 것이다.

노안이 오고, 기미와 새치가 늘고, 팔자주름이 깊어지고, 살이 축축 늘어지고. 아무리 젊은 생각과 유행하는 스타일을 유지하려 해도 늙어가는 몸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이돌 노래만 주구장창 들어도, 결국 내 몸이 반응하는 건 90년대 댄스곡인 것처럼.


어쨌든 이건 내 문제니 다른 사람과 상관없겠지 싶었는데, 댄스학원에서 나이를 들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뻗치니 뭔가 다른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왜 이렇게 나이를 특급비밀정보로 여기고 있을까?     

내가 여는 독서모임에 나이 든 회원이 왔을 때 나는 그리 친절한 사람이 못 되었던 것 같다. 20~30년의 격차는 생각보다 더 컸다. 요구가 많았고(“모임 전에 미리 전화를 해 줘.”/“책을 사다 줘.”), 자기중심적이었으며(말이 너무 길다/남의 말을 안 듣는다), 다른 사람의 말을 쉽게 무시했다(“자기들이 아직 어려서 모르는 거야.”/“내 나이 되면 다 알게 돼.”). 그럴 때마다 난감해하며 “아, 그런가요...”하고 순하게 대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나이 먹는다고 지혜로워지는 게 아닙니다.”하고 따박따박 심기를 거스르는 말들을 해댔다.

지금은 이해한다. 인터넷이나 SNS 사용이 쉽지 않았기에 요구 사항이 많았던 것을, 젊은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잘 몰랐을 것이고, 나이 들었다고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더 과하게 표현하기도 했을 거라고. 독서모임에 나오는 것 자체가 큰 용기였을 거라는 것도 뒤늦게 깨닫게 됐다. 그렇다고 지금 그런 회원이 온다 해도 나는 더 친절하고 배려 깊은 진행자가 될 것 같진 않지만......

늙음에 대한 편견을 가진 내가 어떤 공간에서 드디어 ‘늙은 사람’의 포지션을 갖게 되는 순간이 왔다. 편견이 나에게 투영되자 자동적으로 움츠러들었다. 내가 말만 해도, 살짝만 움직여도, 숨만 쉬어도 한물 간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다. 같이 연습할 때 내가 의견을 내면 꼰대 같이 보이거나 지시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나이 든 사람 끼워줘서 고마워.” 같은 자기 비하적 태도를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이를 숨기고 싶었나 보다.     


“저는 91년생인데, 화수님은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스스로를 할미라 칭하던 사람이 물어왔다.

“하...... 어떡해요. 저는 81년생이에요......”

얼굴을 감싸 쥐고 괴로움을 한껏 표현한 내게 예의 바르고 배려 깊은 댄스 학원 동료들이

“우와! 도대체 관리를 어떻게 하신 거예요. 비법 좀 알려주세요.”하며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그 뒤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면 연습을 하다 헤어졌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사실은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는 더 겁나는 게 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어리게 봤던 그 사람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다. 관리를 너무 잘해서 그렇게 어려 보이는 거면 내가 더 비참할 것 같아서. 보이는 것과 현실이 맞아떨어져서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김연자는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아모르 파티)’라고 노래했다. 44살이라는 나이가 겁나는데 앞으로 더 큰 숫자만 만나야만 하는 내 혼란스러운 마음이 진짜라고 생각하니 좀 암담하다. 그렇다고 늙음을 애써 긍정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까지 경험한 신체의 노화 중 긍정적인 것은 없었으니까. 시간이 흐르면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는 있을지언정 억지로 더 좋은 것이라 정신승리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일단은 관절이 허락할 때까지 춤추고 싶고, 옷이 몸에 맞을 때까지는 원하는 스타일을 입고 싶다(요즘은 힙합 스타일에 빠져있다). 생각이 멈춘 사람은 되고 싶지 않으니 변화하는 세상을 계속 따라가려도 애쓸 것이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배우고 싶은 곳이라면 눈치 보지 않고 (많이 망설이긴 하겠지만) 도전할 것이다. 그곳에 있는 젊은 사람들이 나랑 있는 것을 불편해하면(기류를 읽을 수만 있다면) 굳이 어울리려 애쓰지도 않을 것이다. 늙음을 사랑할 수는 없겠지만, 늙음을 비참해하지 않을 수 있는 삶을 꾸리고 싶다. 그래서인지 요즘 알고리즘에 각양각색의 멋진 할머니들 계정이 자꾸 뜨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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