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화사-I love my body
I love my body 윤기나는 내 머리
발끝까지 My body (Yeah that's my body)
Yeah that's my body 사랑스런 내 Tummy
Unique한 팔과 다리 (Yeah that's my body)
살 빠졌네 안 빠졌네 그게 왜 궁금한 건데? 반가웠던 맘 사라지게
쓸데없는 인사치레 Cause my body's more than that
질겅질겅 너의 그 입에 오르락내리락 막 다룰 존재는 아냐
여기는 엠넷인가? 이태원 클럽인가? 내가 있을 곳이 맞나? 어리둥절했다.
먼저, 조명이 달랐다. 이 푸르고 붉고 보랏빛이 도는 퇴폐적인(?) 조명 밑에 서있자니 기지개만 켜도 폼 날 것 같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 게 부끄러워서 댄스 학원 다니는 내내 천장 아니면 바닥만 봤는데, 지하 클럽 같은 조명 아래에선 거울이 잘 안 보여서 슬쩍슬쩍 내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영 댄스학원은 학생이 적을 때가 많아서, 혹시 오늘 나만 출석하면 어쩌지 걱정을 할 때도 종종 있었는데, 이곳은 스무 명 넘는 사람이 복작복작 모여 있었다. 사람에 비해 공간이 좁은 거 아닌가 했는데, 이렇게 저렇게 서니까 대부분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볼 수 있는 각도가 나왔다. 두세 줄로 서면 선생님이 줄을 바꿔 가면서 시연을 보여주고, 팀을 나누어 번갈아 시켜보기도 했다. 다들 오래 다녔는지 익숙한 것 같았다.
사람들 면면도 얼마나 다양한지, 연령, 성별, 체형이 다양했고, 하물며 국적(한국인일 수도 있지만)까지 다양했다! 맨날 책방에만 처박혀 있어서 그런지 이런 다채로운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상황이 어색하기도 하고 이것이 바로 뉴노멀(?)인가 하는 두근거림도 있었다.
엠넷에서 방영한 ‘스트릿우먼파이터 2’를 한 회도 빼놓지 않고 보고, 콘서트까지 다녀왔다. 1편부터 흥미롭게 보고 있었지만, 춤에 관심이 커져서 그런지 2편은 방송시간을 다이어리에 꼬박꼬박 기록해 두고 본방사수 할 만큼 몰입했다. 가장 좋았던 점은 일본과 호주의 크루가 참여하면서 다양함을 보여준 것이다. 특히 호주 크루인 ‘잼 리퍼블릭’의 신체는 경이로웠다. 리더 커스틴의 춤을 보면서 ‘인간의 엉덩이가 도대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가? 등? 목? 아니야. 거의 뒤통수를 치겠는데!’하며 놀라워했다.
한국의 아이돌을 보면서 ‘저렇게 마르지 않으면 의상도 춤도 제대로 소화할 수는 없겠다.’, ‘나 같은 몸으로 저 춤을 따라 하면 흉할 거야.’, ‘일단은 말라야지 잘 추는 것처럼 보이겠다.’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얼굴은 통통한데 뼈밖에 없는 몸으로, 웃으면서 격한 안무를 소화해 내는 아이돌은 때론 기괴해 보이기까지 했다. 다이어트를 하면 얼굴 살만 빠지고, 뱃살은 여전한 나로서는 같은 인간이 맞을까, 저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비정상이구나, 기괴한 건 나와 내 몸이다 하는 자기 비하로 빠지기도 했다.
‘잼 리퍼블릭’의 구성원들은 피부색도 몸의 크기와 생김새도 다양했다. 커다란 허벅지로, 건장한 어깨로, 볼록 솟은 엉덩이로 춤을 춰도 멋지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처음 깨달았던 것 같다.
“아, 내 춤이 이상해 보인 게 몸 때문이 아니라 실력이 없어서구나!”
나의 깨달음을 들은 남편은 “그걸 인제 알았나?”하고 핀잔을 주었지만, 나는 정말 내 몸이 이상해서 춤이 더 괴상하게 보인다고 여겼다.
이모션 댄스학원에는 여러 몸이 존재했다. 키가 크거나 작은 사람, 살집이 있거나 없는 사람, 엉덩이가 크거나 작은 사람, 허리가 길거나 짧은 사람 등등.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었다. 같은 몸을 한 사람은 오로지 보정을 잔뜩 한 인스타그램 사진 속에서나 존재하는 건데.
다양한 몸들 속에서 나는 내 몸에 신경 쓰지 않고, 남의 몸도 흘끗 대지 않고 춤을 출 수 있었다. 첫날부터 힘든 안무를 하는 바람에 신경 쓸 새가 없기도 했지만 말이다. 사람들이 관심 있는 건 오늘 배울 안무가 무엇인지, 내가 그 동작이 되는지 안 되는지, 오늘따라 더 힘들다(더 쉽다는 없음. 늘 힘듦.) 같은 것밖에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늘 다른 사람의 눈에 내 몸이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며 살았다. 옷을 살 때도 뚱뚱해 보이지 않는가가 선택의 가장 큰 기준이었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짧은 치마나 반바지를 입은 적이 없다. 다른 사람을 볼 때도 몸을 유심히 보았다. 처음에는 그냥 뚱뚱한지 날씬한지만 봤다면, 몸에 관심을 두면 둘수록 어깨가 넓은지 좁은지, 배가 나왔는지 아닌지, 종아리가 얇은지 두꺼운지 세세하게 눈에 들어왔다. 나중엔 어깨가 직각인지 둥근지, 팔다리의 모양은 어떤지, 그냥 마른 건지 몸매가 좋은 건지 등 무슨 체형교정전문가처럼 몸을 부분 부분 뜯어보며 점수를 매겼다. 사람이 아니라 고기처럼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끔찍해지기도 했는데 그런 태도는 나 자신에게 가장 엄격했다. 다른 사람의 몸에는 사실 판단만 내린다면 내 몸에 대해서는 가치 판단을 내렸다. 엄격한 기준 때문인지 나는 나 자신을 실제보다 훨씬 크게 느끼곤 해서 늘 어깨와 등을 움츠렸다.
내 몸에 대해 가혹한 판단을 내리는 건 결국 내가 남을 몸으로 판단하는 사람이라는 걸 아프게 깨닫고 생각을 바꾸려 애썼지만, 쉽게 달라지진 않았다. 나이가 들면 달라질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건강과 결부되어 이젠 마른 몸이 아니라 근육질의 마른 몸을 기대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운동하지 않거나 살이 찌면, 게으르고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일까 걱정되기까지 한다. 내가 이렇게 몸에 예민한 이유는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후반까지 살집 있는 몸으로 살면서 주변에서 듣는 평가에 예민해졌기 때문이겠지만, 그렇다고 남의 몸을 판단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고, 나 자신에게 이렇게 가혹하게 구는 건 정신 건강에도 좋지 않다.
체험 수업을 하면서 나는 결심했다. ‘이곳을 오래 다니겠다. 다니는 내내 몸에 대해 신경 쓰는 버릇을 고치자.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당당하게 보자. 콘서트에서 봤던 스우파 멤버들처럼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 되자.’고. 이 정도면 댄스학원에 심리 상담까지 맡긴 셈인가. 체력과 멘털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하는 과도한 야망을 품고 일단 1개월 수업료 12만 원을 입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