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책, 다른 마음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by 화유

새로운 책들이 연일 쏟아지고, 읽어야 할 책과 읽고 싶은 책은 점점 늘어난다. 쉴 새 없이 새로운 이야기가 등장하는 시대. 그래서인지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쳐 드는 일은, 웬만한 계기가 아니고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들이 있다.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남는 문장들, 그땐 스쳐 지나갔지만 지금은 다르게 보이는 페이지들. 그런 책들은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고 다시 떠오른다.


대학생 시절, 꿈에 대한 열망이 절정으로 피어오르던 때. 도서관 서가에서 끌리듯 집어든 세스 고딘의 『퍼플 카우』가 그 시작이었다. "가치 있는 것을 이야기하라."는 문장이 그 시절의 나를 흔들어 놓았고, 이후로도 책은 내게 방향을 제시해 주는 나침반 같은 존재가 되었다.

살면서 읽은 책 중 유독 기억에 남는 것들도 있다.

오히라 마쓰요의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하라 켄야의 『디자인의 디자인』,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나태주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
론다 번의 『시크릿』,
이지성의 『꿈꾸는 다락방』,
프랑수아 를로르의 『꾸뻬 씨의 행복 여행』,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
타샤 튜더의 『타샤 튜더 나의 정원』,
조한영의 『환자 혁명』.

지나온 시절의 감정과 생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흔적들이다. 지금도 가끔 다시 펼쳐보거나,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은 책들. 책을 통해 느낀 감동과 깨달음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마음속 어딘가에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다.


같은 책인데도 다시 읽으면 전혀 다른 문장이 들어온다. 분명 읽었던 문장인데 처음 보는 듯 다가오기도 하고, 예전에는 깊이 간직했던 구절이 지금은 가볍게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그 변화는 책 때문이 아니라, 책을 마주한 내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책은 그대로인데 내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책이 가진 가장 깊은 울림이자 매력인지도 모른다.



가치 있는 것을 이야기하라


세스 고딘의 철학은, 환상 속에서 꿈을 좇기만 하던 대학생 시절의 나에게 훌륭한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시간이 흘러 내 자리를 조금씩 찾아가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는 '신념을 잃지 말라'는 말로 들린다. '가치를 좇고, 그 가치를 잃지 말라'는 조언처럼도 느껴진다. 같은 문장이라도 마주하는 시점의 내가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비슷한 경험은 나태주 시인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에서도 있었다.

처음엔 아름다운 말들이 가득한 시집이라 여겼는데, 어느 날엔 시 한 구절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네가 너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사랑스런 것이고 가득한 것이다
꽃이여, 오래 그렇게 있거라.

―「꽃. 3」 중에서


예전엔 마냥 예쁘기만 했던 문장이, 사람에게 지치고 상처받은 어느 날엔 한참을 멍하니 되뇌게 만들었다. 감정이 차오른 순간, 같은 문장은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같은 책을 펼쳐도, 다르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내가 달라졌기 때문일 거다. 달라진 문장은 곧 달라진 나를 비춘다. 어쩌면 책은 우리보다 더 오래 같은 자리에 머물며, 우리 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한때의 책은 그 시절의 마음을 품고, 다시 읽은 책은 지금의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래서 다시 책을 펼친다. 그때와는 다른 마음으로 또 한 번 읽는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그런 책들은 곁에 두고 오래도록 좋아하고 싶다.



사진: Unsplash의 Rey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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