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영감

by 화유

얼마 전 메모장에 적어두었던 단어가 있다. ‘텍스트힙’.

당장 무엇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쓴 건 아니었는데, 그 단어는 브런치 첫 글의 주제가 되었다.



나는 오래도록 창작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왔다. 그만큼 ‘영감’이라는 건 단순한 낱말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자 호흡처럼 느껴진다.


창의력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어디선가 갑자기 떠오르는 섬광 같은 감각이나 타고난 몇몇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능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마주해 온 창의력은 그런 것과는 조금 다르다. 우연히 들은 말 한마디, 눈에 밟힌 장면, 스쳐 지나간 생각. 그냥 넘겨도 이상하지 않았을 무언가가 어느 날 생각의 중심에 떠오른다. 그런 조각들은 흘려보내지 않고 기록한다. 메모 앱에 적어 두기도 하고, 아이디어 노트에 두서없이 써 내려가기도 한다. 나중에 보면 의미가 희미해질 때도 있지만 그 조각 하나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한다.


그렇게 기록해 둔 것들을 어느 순간 다시 꺼낸다. 내 방식대로 다시 펼쳐보고, 형태를 바꾸고, 새로운 흐름을 만든다. 흘려보냈다면 사라졌을 조각들이 내 작업 안에서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렇게 어떤 순간을 지나 말이 되고, 그림이 되고, 캐릭터가 되고, 문장이 된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영감이다. 특별한 재능이라기보다는 내 삶 안으로 찾아온 감각. 창작은 그런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자주 멈춘다.

마음이 조금 더 머무는 곳에 시선을 두고, 언젠가 말을 걸어올지도 모를 감각을 기다린다. 스쳐가는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일. 영감의 씨앗에 흙을 덮어주는 일. 그 일들이 모여 저마다의 방식으로 피어난다고 믿는다.



사진: Unsplash의 Caroline Badran

keyword
이전 09화같은 책, 다른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