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은 어디에서 태어났을까

관계자(나) 외 출입금지

by 화유

어릴 적 엄마였는지 언니였는지 모르겠지만 자물쇠 달린 비밀 일기장을 내게 선물해 줬다. 작은 상자에 꼭 맞게 담긴 이중 잠금의 일기장. 그게 내 솔직한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그때 그 일기장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도 솔직하게 표현하는 법을 찾느라 헤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언제 솔직해질까?

아마도 내가 보호받고 있다는 안정감이 들 때.

온라인에서는 익명이나 닉네임 뒤에, 오프라인에서는 직접 얼굴을 마주 보지 않을 때. 그제야 조금은 솔직해질 수 있다. AI에게조차 마음을 완전히 열지 못하는 우리니까.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솔직해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비공개로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도 된다. 아무도 보지 않을 전용 계정이나 노트. 보여줄 생각 없이 쓰는 글 속에서는 마음껏 자유로울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모닝 페이지'에서도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에서 모닝 페이지는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p.39
모닝 페이지를 쓰는 데 잘못된 방법은 없다. 아침마다 적는 이 두서없는 이야기는 남들에게 보여줄 작품이 아니다. 심지어 글쓰기라고 할 수도 없다. 이 책을 활용하는 분들 중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이 점을 확실히 짚어주고 싶다.

― 줄리아 카메론(2025), 『아티스트 웨이』, 위즈덤하우스


어릴 적 이야기도, 끝난 관계에 대한 감정이어도 좋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고, 무엇을 느꼈는지. 지금의 나는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순서대로 써보는 것만으로도 글쓰기는 시작된다.


정해진 틀은 없다. 혼잣말처럼, 투덜거리거나 누군가에게 털어놓듯이. 일기처럼 때론 편지처럼. 가볍게 시작해야 비로소 자유로이 활주할 수 있다. 비밀 일기처럼 시작된 글도 시간이 지나면 밖으로 꺼내고 싶어질 때가 있다. 나만 보던 문장이 누군가에게 닿는 순간, 글은 처음과는 다른 얼굴을 하게 된다.

그렇게 자라난 글은 날개를 달고 마침내 세상으로 날아간다.



사진: Unsplash의 Hello Rev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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