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by 화유

소설이라는 장르에 마음이 열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확히 말하면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다. 그동안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지금 생각해 보면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책에는 수많은 장르가 있고, 선택지도 다양하다. 하지만 유독 ‘소설’만은 내게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어릴 적 처음 접한 소설이 귀여니 작가의 『그놈은 멋있었다』였던 탓일까. 분명 재미있게 읽었지만, 지나치게 유치하게 느껴졌던 장면들이 ‘소설은 다 그렇다’는 내 안의 프레임으로 굳어져 버렸다. 이후로는 소설보다는 자기 계발서나 에세이를 더 자주 읽었다. 정보나 위로가 더 직접적이라고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디오북으로 김금희 작가의 『첫여름, 완주』를 듣게 됐다. 낯설고도 편안한 이야기 흐름 속에 잠기듯 빠져들었고, 울고 웃으며 장면을 따라갔다. 이야기의 끝에서는 연극이 막을 내린 뒤처럼 묘한 여운이 남았다. 그 감정이 좋았다. 아, 소설이라는 세계가 이런 거였구나. 이야기의 결은 사람의 마음을 헤엄쳐 다닐 수도 있구나.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가입한 문학동네 북클럽 ‘독파‘에서 우연히 이기호 작가의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티저북 챌린지를 알게 됐다. 푸릇푸릇한 표지, 무해한 강아지 그림(사실은 비숑 프리제였지만, 내 눈엔 삽살개였다), 그리고 이시봉이라는 이름. 호기심이 ‘딸깍’하고 신청 버튼을 누르게 했다.

책은 공책 한 권처럼 얇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생각보다 훨씬 풍성했다. 첫 장을 펼치자마자 이시봉과 함께 놀고 웃고, 때론 감탄하며 따라갔다. 특히 인스타그램 계정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편집 방식은 실제 화면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생생했고, 유쾌한 문체와 담백한 문장들은 쉽게 멈추지 못하게 만들었다.


p.45
얜 대체 오빠를 어떻게 알고… 오빠가 수학만 바닥인 줄 아니? 오빤, 영어도 엄청나.

―이기호(2025),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 문학동네


작가님이 참 궁금해졌다. 이야기를 가볍게 다루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무겁지 않게 쓰는 그 균형감. 담담하지만 유머가 있고, 유쾌하지만 울림이 있다. 나도 언젠가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을까. 이기호 작가님을 보며,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소설이 좋아졌고, 조금씩 읽는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 그 흐름 속에서 만난 책이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이다. 담백하면서도 유쾌한 이 이야기를 통해 글이라는 것의 또 다른 방향을 알게 됐다.


이시봉과의 유쾌한 만남을 가능하게 해 준 문학동네, 유머와 울림을 동시에 담아낸 이기호 작가님께 작지만 진심 어린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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