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빠진 수제비
“ Peter, 다른 것 더 필요하면 말해요.”
홈스테이 여주인인 라비나가 밀가루와 양파를 가져다주며 내게 말했다. 내가 머무르고 있는 이 따뜻한 홈스테이는 남편 니르시와 아내인 라비나가 운영하고 있다. 둘은 프랑스 가정의 후원을 받아서 파리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중 서로 만났다. 그리고 외국에서 만난 경우라서 종교와 사회적 간섭을 받지 않고 결혼에 성공할 수 있었다. 니르시 말로는 라비나의 아름다운 모습에 한눈에 반해서 청혼을 한 것이라고 하는데 라비나는 그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 이이 나 만나기 전에 다른 여자가 있었어요. 한 눈 반하기는 흥! 그 여자가 네팔에 돌아가니까 나랑 사귄 거죠.”
“ 라비나, 내가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면 당신에게 데이트 신청을 왜 했겠어.”
“ 하하...”
“ Peter, 생각해 봐요. 여자 친구가 있는 상태에서 다른 여자에게 반하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니르시 바람기가 확실히 있어요.”
“ 내 친구 Peter, 남자가 일생에 여자가 하나밖에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 그렇기도 하지만... 니르시 지금 그 말 적절하지 않은 것 같은데?”
“ 혹 모르죠. 지금도 연락하고 있는지.”
“ 라비나, 내 사랑은 당신뿐이라고. 그러니까 당신에게 청혼을 해서 예쁜 두 딸 낳고 이렇게 살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여자는 지금 결혼해서 잘 살고 있어. 내가 연락해야 할 이유가 없잖아.”
“ 저 봐요. 결혼을 한 것은 어찌 알고 있대? 아무튼 내 선택이니 남 탓을 할 필요가 없지만 당신이 나에게 한눈에 반했다는 것은 못 믿어요.”
“ 흠흠... 여자가 있었다는 것과 한눈에 반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는 한데...”
“ 그지? 내 친구 Peter, 역시 남자끼리는 통하는 데가 있다니까?”
“ 하? 둘이 아주 잘 통하네요?”
“ 하하...”
“ 그럼 내 친구 Peter인데. 하하하.”
이렇게 가끔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둘은 정말 사이가 좋은 부부였다. 하긴 로맨틱한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두 사람이니 오죽하겠는가. 마치 버터가 들어간 달밧느낌이랄까? 달밧은 네팔 사람들의 주식으로 달은 콩 수프를 밧은 밥을 뜻하는데 보통 몇 가지 채소 볶음과 같이 곁들여 먹는다. 네팔의 달밧은 인도의 것과 다르게 맛이 대체로 강하지 않고 심심하다. 순박한 네팔 사람들과 닮아있는 맛이다. 그리고 이 부부의 달밧은 분명 버터맛이 가미된 프랑스식 달밧이었다.
“ 음... 라비나, 혹시 말린 조그마한 생선 같은 게 있을까요? 다른 재료는 거의 사 오고 있는데 이것만은 구하기가 힘들어서...”
“ 말린 생선이요?”
“ 없으면 말린 새우라도 있으면 좋아요.”
“ 쓸 일이 없어서 집에는 없는데... 네팔이 바다가 없는 거 알죠? 그래서 생선이나 바다생물을 이용한 음식이 별로 없거든요. 그래도 타멜거리에 가면 팔기는 해요.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어서 가게들이 다 문을 닫았을 거예요. 꼭 필요한 거예요?”
“ 그래요? 그럼 괜찮아요. 어떻게든 한 번 해보죠.”
“ 호호, 그럼 요리 기대할게요. 도움 필요하면 이야기하고요.”
“ 그래요. 맛은 보장을 못하지만 열심히 만들어 볼게요.”
라비나에게 미처 사 오지 못한 재료들을 받은 뒤 열심히 밀가루 반죽을 치대였다. 내가 만드는 음식은 수제비였는데 약간 쌀쌀한 날씨에 몸을 따뜻하게 만드는 음식으로 딱이겠다 싶었다. 손으로 연신 반죽을 조몰락거리는 모습을 식탁 의자에 앉아서 물끄러미 쳐다보던 니아가 슬며시 다가오더니 손을 내민다.
“ Peter, 나 조금만 줘.”
“ 응? 이거?”
“ 응.”
니아에게 밀가루 반죽을 떼어주니 손으로 조물닥거리며 식탁 위에서 가지고 논다. 가지고 있는 토끼 인형에 수염도 만들어 붙였다가 넓게 펴서 플라스틱 블록 조각으로 모양도 만들어 보고 노는데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다른 홈스테이 손님인 미국인 찰리에게 후다닥 달려갔다.
“ 찰리 찰리, 이거.”
재밌는 장난감이 생기니 같이 놀 사람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거실에서 레아와 요가를 하고 있던 찰리가 잠시 니아와 밀가루 반죽을 가지고 놀더니 레아에게 바통을 넘기고 주방으로 걸어 들어왔다.
“ Peter, 뭐 도와줄 거 있어요?”
“ 아니 괜찮아. 간단한 요리거든.”
“ 근데 뭐 만드는 거예요?”
“ 아, 이거? 수제비라고 부르는 한국 음식이야.”
“ 수제비?”
“ 응. 수는 손이고 제비는 접는다는 의미인데... 뭐 결국 손으로 만든 음식이라는 거지.”
“ 그렇군요. 그런데 한국 음식 많이 맵다고 들었는데 이것도 매운 음식이에요?”
“ 아니 이건 안 매운 음식이니까 걱정 안 해도 돼.”
“ 다행이네요. 매운 음식 좋아하기는 하는데 한국 매운맛의 레벨은 완전 다른 수준이거든요. 저번에 대학에서 같이 공부하던 한 한국 친구가 맵지 않다며 준 라면을 먹었다가 혼쭐이 났었어요.”
“ 하하. 한국인들이 매운걸 많이 먹기는 하지. 한국사람들이 맵지 않다고 하는 말은 그대로 믿으면 안 돼.”
“ 호호, 맞아요. 혀가 타는 느낌이었어요. 그럼 저녁 기대할게요. 도울일 있으면 말하고요.”
말을 마친 찰리는 레아와 요가를 하러 거실에 돌아갔고 니아도 반죽을 가지고 노는 것이 지겨운지 찰리의 요가 수업에 동참했다. 미국인이 네팔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요가 수업이라나 뭔가 반대가 된 느낌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는 잠시 셋이 요가를 하는 모습을 쳐다보다가 다시 수제비를 만드는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멸치가 없으니 채수를 내야 했는데 될 대로 대라는 식으로 파뿌리를 왕창 넣고 물을 끓인 후 감자와 양파를 많이 넣기로 했다. 일단 밀가루 반죽을 떼어 넣기 전에 충분히 국물을 우려내고 중국식 간장을 3스푼 넣은 후 고추를 조금 썰어 넣어 알싸한 맛이 조금 돌게 했다. 그리고 감자가 충분히 익었을 때 파뿌리를 건지고 반죽과 파를 넣고 소금 간을 했다. 어디서 본 것인지는 기억이 안 났지만 감자가 들어간 음식은 오래 끓일수록 그 맛이 진해진다고 했었다. 감자의 전분 때문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그 말만 믿고 멸치 없는 수제비 조리가 강행되고 있었다. 사실 맛이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도 많이 되었지만 먹을 수만 있으면 괜찮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진짜 수제비 맛은 나만 알고 있으니 똥 배짱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걱정을 완전히 떨칠 수는 없어서 주방을 떠나지 못하고 냄비 앞에서 끓고 있는 수제비 국물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도 준비된 재료가 다 들어가고 시간이 흐르니 슬슬 좋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집에서 먹던 것과 비슷한 것이라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때 배가 고팠는지 니르시가 어느새 주방에 들어오며 내게 말을 건넸다.
“ 내 친구 Peter. 냄새 좋은데? 맛있을 거 같아.”
“ 그렇겠지? 사실 자신이 없기는 한데...”
“ 괜찮을 거야. 한국음식은 맛있잖아.”
“ 하하... 그렇기는 한데 가장 중요한 재료인 멸치가 빠져서 걱정이야.”
“ 멸치? 그 작은 생선?”
“ 응, 그게 정말 중요한 재료거든.”
“ 음... 어차피 우리는 그 맛을 모르니까 괜찮을 거야.”
“ 그럴까?”
“ 그럼. 그리고 냄새가 좋은데 뭘 걱정해. 그나저나 다 익어가는 것 같은데?”
“ 어? 그러네? 잠시만, 맛을 봐야겠다.”
냄비를 보니 밀가루 반죽이 다 익어서 보기 좋은 색으로 변해있었다. 나는 제 맛이 나기를 간절히 바라며 숟가락을 집어 들어 감자와 국물을 같이 떠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
“...”
“ 내 친구 Peter, 어때?”
“ 음... 괜찮은데? 먹어도 되겠다. 요리 다 끝났어요. 어서들 와요.”
저녁 식사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