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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찬 Nov 27. 2022

10년간의 몸부림

맑은 늦가을 오후 선선한 바람이 졸리우는 날씨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누워 흔들리며 떨어지는 낙엽을 보는 것만큼 싱그러운 휴식이다. 옷이 조금 더러워진다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은 중요치 않다. 어차피 모두 지나갈 테니까.


스쳐 지나간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 있는 나의 모습은 사실 커다란 퍼즐을 맞춰가는 조각이었다. 소심한 성격을 깨기 위해 가끔은 자신도 지나치다 싶을 만큼 스스로 밀어붙이기도 하였다. 쉴 새 없이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만남을 기꺼이 찾아 나섰다. 거절당하는 것이 두렵고 무서우면서도 이윽고 시도하고 실패했다.


갈까, 말까. 말할까, 말까. 수없이 망설이며 한 걸음 다가섰가가도 물러서기 일쑤였다. 그 틈에 눈치를 챈 상대가 먼저 도망가거나 누군가가 선수를 쳐 기회를 채가기도 하였다. 술래잡기를 하려고 과감히 나섰다가도 숨바꼭질을 하는 마냥 안전한 곳에 숨기에만 급급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다음 기회를 찾았다, 바보처럼.


용기를 내어 스스로를 낯선 곳에 던져도 보았고, 어쩌다 보니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새로운 곳에서 생활하기도 하였다. 누군가가 먼저 손을 내밀어주기까지 거친 말과 모진 행동을 견뎌야 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내가 먼저 움직일 수밖에 없던 때에도 냉대와 멸시를 받곤 하였다. 삶의 끝인가 싶을만큼 괴롭고 무기력했다.


실제로 삶이 끝날 뻔한 위기도 숱하게 지나갔다.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몸을 거동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기도 하였고, 과도한 업무로 인한 것인지는 몰라도 환청과 망상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그 와중에도 나는 여전히 웃어야했고, 괜찮은 척 해야 했다. 생계라는 이유로 쉬고 싶어도 쉴 수 없었고 그저 하루하루 무사히 견뎌낼 뿐이었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버텨낼 수 있게 도와준 원동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이었다. 사람 때문에 그 모든 내상을 입었지만, 사람 때문에 그 모든 성장과 회복의 선로를 걸어 왔다. 웃긴 건, 그토록 차갑고 매정하던 사람들이 어느 새 내 편이 되어주고 그토록 부드럽고 따뜻하던 사람들이 사실 내 편이 아니기도 했다는 점일까. 더 웃긴 건, 지나가고 나니 웃음만 나올 뿐인 점.


그 결과 배운 것은, ‘어차피 한 순간’이라는 간단한 문장이었다. 젠가를 쌓아올리듯 위태로우면서도 과감히 만들어간 관계, 머리카락이 빠지고 정신병에 걸릴 정도로 신경을 썼던 일, 그 많은 것들이 결국엔 끝이 있었다. 왜 그렇게 나를 내몰았던가, 서글프기도 하였다. 채워지지 않은 어떤 결핍이 있던 건지, 꿈이라 부르는 어느 추상적인 그림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10년간의 사적인 삶은 그러한 몸부림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 끝에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하기에는 강박적이다 싶을 만큼 도전으로 가득했다. 소심했던 아웃사이더는 10년간 어떤 일들을 겪어내며 무슨 짓을 벌여왔던 걸까. 세상을 향해, 새로이 지나칠 수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울림을 전하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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