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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Nov 27. 2024

구업(口業)과 수행

어제 업무 차 지방에 하루 종일 다녀오느라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평상시보다 일찍 일어나니 몸이 피곤하다. 전철 안에서 또는 이동하면서 발과 배의 감각에 집중하려 했지만 잘 되는 않는다. 대신 차분한 음악을 듣는다. 비 오는 아침에 듣기 편안한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이다. 클래식 음악의 문외한이지만 지인이 보내 준 음악으로 늘 들으며 비 오는 평온한 아침에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음악이다. 차분하고 조용하고 약간은 우울한 음악이지만 이런 날씨에는 제격이다. 음악을 듣고 잠시 배의 감각에 집중해 보지만 시간에 쫓기며 이동하다 보니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그냥 편안하게 밖을 쳐다보거나 눈을 감고 쉰다.   

   

업무 마치고 동료 차에 네 명이 타고 함께 이동한다. 같은 업무를 하며 가끔 만나는 동료들이다. 나이는 10년 이상 차이가 나지만 업무 전문성 차원에서는 나보다 선배들이다. 이 모임에서는 나이 든 티를 내지 않으려 나름 노력하고 있다. 쓸데없는 말 하지 않고, 듣는 입장을 취하는 편이다. 차 한잔 마시게 되면 찻값을 먼저 내고, 질문하지 않는 한 나서서 먼저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근데 어제는 업무 마쳤다는 홀가분함과 편안한 기분 때문인지 이동하는 차 안에서 그 자리에 있지 않은 사람에 대해 가볍게 디스 하는 말을 하면서 웃는 분위기를 만들어보았다. 비록 차 안에 있지는 않지만 모두 아는 사람들이어서 함께 웃으며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물론 그 사람들을 디스 하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냥 차 안 분위기를 조금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한 말이었다.      


집에 돌아와 갑자기 그 생각이 들면서 그 자리에 없는 사람 얘기를 쓸데없이 한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굳이 그런 얘기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것도 좋은 얘기도 아니고 가볍게 디스 하는 얘기를? 구업을 지은 것이다. 구업에는 거짓말, 아첨하는 말, 이간질하는 말, 남을 비방하는 말 등이 있다. 어제 한 말은 남을 비방하는 악구(惡口)다. 재미를 위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타인에 대해 디스 하는 것은 비방하는 것과 같다. 그것도 그 자리에 없는 사람 얘기를 한 것은 큰 결례다. 이 생각을 하며 나 자신의 구업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본다. 굳이 거짓말할 필요가 없어서 하지 않는 편이다. 이제는 아첨할 일도 없다. 아첨할 대상과 아첨해서 얻을 이익이 없으니 할 일도 없다. 이간질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또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나쁜 결과가 돌아온다는 것을 과거의 수많은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또 상담사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습관 중 하나가 남에게 들은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는 것이다. 남이 나에게 다른 사람 얘기를 해도 그냥 듣고 흘려보내는 편이다.      


하지만 아직도 남에 대한 불만이나 불편한 얘기는 가까운 사람에게 하는 편이다. 악구를 하는 습을 갖고 있다. 또한 악구로 인한 업보도 받고 있다. 어제 일로 후회하는 것이 바로 악구에 대한 업보다. 한 가지 더 있다. 나 자신을 은근히 자랑하려거나 내세우려는 나쁜 습관도 있다. 일종의 명예욕이자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정욕구다. 이는 매우 교묘하게 이루어진다. 그런 듯 아닌 듯 표현하고 있어서 나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고 한참 지난 후에야 겨우 알아차리고 후회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얘기를 들은 사람은 경우에 따라 바로 알아차릴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한참 후에야 나의 진면목을 보고는 씁쓸한 입맛을 다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일종의 기만이다. 나 자신을 속이고 주변 사람을 속이는 일이다. 악구와 자신을 드러내려는 말, 이 두 가지는 앞으로 조심해야 할 구업이다. 구업은 수행하는데 장애가 된다. 수행 시 자꾸 떠오르며 후회를 하고, 이는 수행 집중을 방해한다. 아무리 좋거나 사소한 말이라도 타인에 대한 말을 하지 말고, 나 자신을 드러내려는 마음을 빨리 알아차려 구업을 짓지 말아야 한다. 계율이 수행의 근본이 된다는 사실을 이런 경험을 통해 직접 체득하게 된다. 자신도 모른 채 디스를 탕한 두 친구에게 진심으로 참회한다.      


어제 하루 종일 외부 업무를 보고 와서 그런지 꽤 피곤했다. 집에 와서 저녁 식사 후 설거지를 모두 마치고 나니 오후 8시경이 된다. 뉴스를 보고 영화 채널을 돌려본다. 뉴스를 본 후  무의미하게 채널을 돌리며 때로는 예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보기도 하며 시간을 죽이는 일을 하는 나쁜 습관을 고치고 싶다. 하지만 몸이 피곤한 상태여서 그런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이럴 때 경행과 좌선을 하면 되는데 이 조차하고 싶지 않고 그냥 편하게 쉬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다른 시간 대 뉴스를 보고 영화 채널을 돌리며 마땅한 영화를 찾지 못해 예능 프로그램을 본 후 11시경 잠에 들었다.      


아침에 7시경 일어나 간단히 씻은 후 아침 식사를 하고 신문을 보고 나니 9시가 된다. 왜 두 시간이나 걸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는 바쁘지 않은 날이니 상관없다. 9시부터 한 시간 경행과 한 시간 좌선을 한다. 경행 시 두 번째 단계에서 발을 들어 올리는 데 발등에 바람이 느껴진다. 지금까지는 발을 이동 시 발등과 발가락 사이에 바람을 느꼈다. 하지만 오늘은 발은 드는데 바람이 느껴진다. 그리고 세 번째 단계에 들어가자 잠이 밀려온다. 경행을 하며 잠을 이기느라 정작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 다만 손, 얼굴 부위에 가려운 감각을 가끔 느낀다. 한 시간 경행 후 좌복에 앉아 좌선을 한다. 좌선 시에도 잠이 몰려온다. 정신 차리고 한 호흡만이라도 배의 감각을 느껴보려 노력한다. 겨우 한 두 번 성공했고 다시 잠에 빠진다. 다시 허리를 펴고 다시 배의 감각에 집중해 본다. 잠과 배의 감각, 이 두 가지의 팽팽한 겨루기가 한 시간 내 지속된다. 자세는 바꾸지 않고 같은 자세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경행 후 좌선으로 바꾸는 동작에서 집중이 유지되지 않는다. 앞으로는 경행을 좌복 위에서 마치며 바로 좌선에 들도록 하며 집중을 유지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경행 마친 후 좌선을 할 때에도 경행 시 공부가 계속해서 이어져야 한다. 어제 업무 때문에 피곤한 것인지, 아니면 아직 공부가 익지 않아 잠이 몰려오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공부의 과정이라 생각하고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잠으로부터 해방될 날이 올 것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나 눈이 제법 쌓였다. 지금도 눈이 계속해서 오고 있다. 오후에는 한강변을 걷고 올 생각이다. 걷기 학교 한강 걷기 준비를 위한 답사 겸 혼자 걸으며 경행 수행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이다. 일상생활에서 걸으며 수행을 할 수 있는 기초를 쌓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침묵 속에서 혼자 조용히 걸으며 설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은 수행이 될 수 있다. 다만 감상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만 하면 된다. 눈의 무상함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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