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의 참 맛은 무엇일까? 길일까? 걷기일까? 길벗일까? 길에서 마주치는 상황과 사람들일까? 아니면 그 외에 다른 무엇일 있을까? 무척 궁금했던 질문이다. 그간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답을 찾으려 여러 표현을 했다. 겉으로는 멋진 말일 수도 있지만, 과연 그 표현이 나의 마음을 적확하게 표현했을까? 그 당시의 느낌은 진실이었다. 하지만 트레킹의 참 맛에 대한 정의는 시시각각 변한다. 오히려 변하는 것이 당연하고 진실될 수 있다. 이번에 비로소 참 맛을 알게 되었다. 바로 사람이다. 함께 걷는 길벗, 그리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성찰하고 반성하며 조금씩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에피소드 #1 망양 삼성 모텔 사장님
기성 망양 해수욕장에 ‘망양삼성모텔’(054-783-8450)이 있다. 첫날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다. 도착 시 벌써 날씨는 어두워졌다. 주변에 식당도 없다. 주인께 근처 식당을 물어보았더니 3km 정도 가면 식당이 있다고 한다. 인터넷 검색 시 이 모텔 1층에는 식당이 있어서 좋았는데라는 아쉬움을 말씀드렸다. 사모님께서 외유 중이어서 지금 식당 운영을 하지 않는다며 주인께서 우리를 차에 태워 식당까지 데려다주셨다. 그리고 식사 마칠 때쯤 다시 전화를 해서 태우러 오셨다. 다음 날 아침식사도 걱정이었는데, 사골 곰탕 라면을 끓여주셨고, 밥을 새로 지어 함께 내어오셨다. 인사를 드리고 숙소를 나와서 3km 정도 걸었을 때 일행 중 한 명이 핸드폰 충전기와 보조 배터리를 숙소에 두고 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인께 전화를 드려 집으로 보내 주실 수 있느냐고 말씀드렸더니, 차로 직접 오셔서 전달해 주시고 가셨다. 잊지 못할 감동이다.
에피소드 #2 지혜로운 길벗과의 만남은 축복이다
1) 평상시 자신을 챙기지 못하며 살아왔다. 이제부터라도 자신을 챙기고 싶어 먹고 싶은 음식도 주문하고,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이라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표현도 한다. 작은 변화지만 엄청난 용기가 만들어 낸 변화다. 이런 사소하지만 매우 중요한 자기 돌봄을 하기 시작하니 행복감이 엄청났다. 1을 자신에게 주었더니 10이 돌아왔다. 역지사지! 혹시 타인에게 1을 주고 10을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라고 사고의 초점을 전환시키고 확장시켜 보았다.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 사람들 간의 갈등 또 자신과의 갈등이 많이 사라졌다. 길벗의 통찰이 더욱더 확대되어 자리이타의 삶이 되길 기원한다.
2) 주변 사람들이 찾아와 자신의 어려움을 얘기할 때 해결해 주지 않으면 직무유기라는 책임감과 부담감을 안고 살아왔다. 도움을 주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며 노력했다. 하지만 상대방의 그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관성대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실망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단지 들어주기만을 원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 후 경청에 초점을 두며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이 편안해졌다. 상담의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원칙을 통찰한 길벗에게 진심으로 응원을 보낸다.
3) 나는 누군가가 모임에서 너무 주도적으로 말을 많이 하는 경우 불편함을 느낀다. 하지만 길벗은 불편감은 전혀 없고 오히려 그 사람들을 칭찬하고 인정해 준다. 나의 좁은 소견과 그의 사람을 품는 그릇의 차이를 느낀다. 사람의 크기는 생각의 크기다. 그를 통해 나의 그릇을 보게 된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불편함 보다는 불편함을 느끼는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는 나의 길벗이자 도반이고 스승이다. 고맙다.
에피소드 #3 대화
저녁 식사 이후 깊은 대화를 이어간다. 나이가 만들어주는 주제가 있다. 죽음이다. 죽음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서로를 통해 배운다.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 잘 죽기 위해 잘 살아야 된다는 얘기, 시신 기증을 약속한 얘기, 자신의 몸을 누군가에게 의탁하거나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 열심히 걷는다는 얘기 등, 각자 삶의 모습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진솔함이 주는 감동이 크다. 그리고 대부분 비슷한 고민과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는 보편성이 주는 위안감도 있다. 때로는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어 얘기하기도 하고, 치유된 자신의 모습과 상황을 얘기하기도 한다. 이런 대화는 참 소중하고 이런 말을 나눌 수 있는 친구는 참 귀하다. 귀한 인연에 감사를 표한다.
에피소드 #4 나의 민낯을 보다
1) 같은 방을 쓰는데 길벗의 움직임은 고요하다. 반면 나는 무척 산만하고 경박하다. 행동의 가벼움과 들뜸과 시끄러움은 마음의 드러남이다. 그의 고요한 움직임이 나에게 묵언의 가르침을 준다.
2) 등산화와 발목이 부딪치며 아프다. 길벗은 등산화를 바꿔 신자고 하며 자신의 등산화를 먼저 건넨다. 바꿔 신은 후 편안하게 걸었다. 자신의 등산화를 기꺼이 내준 길벗을 보며 과연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못할 것 같다. 그런 사고를 할 만큼 유연하지 못하고 또한 이기적인 사람이다. 아직도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3) 문어 짬뽕과 홍게 짬뽕을 주문했다. 홍게 짬뽕을 주문한 길벗이 번거롭게 손질한 게를 몇 점 주신다. 나는 문어를 혼자 먹었다.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에피소드 #5 공명심
걷기학교는 함께 대화도 나누고, 길도 찾아 나서고, 심신의 건강을 도모하기 위해 만든 모임이다. 걷기학교에서 걷기를 통한 봉사를 하고 싶었다. 조심스럽게 길벗에게 얘기를 꺼냈다. 모두 진지하게 들으면서 신중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씀하셨다. 의견을 들으며 혹시나 봉사가 나의 공명심을 위한 봉사는 아닌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자신을 드러내는 봉사는 봉사가 아니고 이기심과 공명심의 표현에 불과하다. 어리석었다. 걷기학교를 시작했던 초심을 유지하고 지키고 이어가는 것이 봉사라는 명분으로 만들어 자신의 공명심을 채우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 있다. 좋아하고 잘하는 걷기를 통해 걷기학교를 찾아오시는 모든 분들에게 자그마한 재능기부하는 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아니다!! 나 자신의 심신 건강을 위한 방편이기도 하니 기부가 아니다. 그냥 함께 걷고 즐기고 웃고 대화하며 살아갈 뿐이다.
에피소드 #6 이것은 트레킹인가 맛 기행인가?
이번에 먹은 음식을 나열해 본다. 은어튀김, 된장찌개, 사리곰탕라면, 오삼불고기, 모둠생선, 홍게 짬뽕, 문어짬뽕, 편의점 음식을 사 와 함께 먹은 멋진 조식, 신선한 회와 매운탕, 안동 참마 보리빵. 그 외 각자 준비해 온 다양한 간식.
우연히 들린 식당에서 먹은 음식이다. 모두 한결같이 맛있다. 주인의 인심도 넉넉하다. 우리 모두 먹는 복은 타고난 것 같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해 맛집 기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음식은 보여주기 위한 방편이고, 맛은 뒤편이다. 우리는 걷기 위해 먹는데 멋진 길벗과 함께 먹는 음식은 모두 맛있고 보양식이다. 맛은 사진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눈, 코, 입으로 보고 냄새 맡으며 맛보는 것이다.
누구와 함께 걷고, 대화를 하고, 음식을 먹고, 함께 숙소에 머무는가가 트레킹의 묘미를 알 수 있게 만들어준다. 결국 트레킹의 참 맛은 사람에게 달려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트레킹은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다. 함께 동참한 길벗, 길에서 만난 마음 따뜻한 분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덕분에 참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