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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과 추억

by 걷고

사가정역에서 모여 출발한다. 명월관 중식당을 지나치며 지난주 비 오는 날 이 식당에서 즐겁게 웃고 떠들었던 추억이 떠오른다. 장소는 그냥 장소에 불과하지만 그 장소는 단순한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다. 그 장소에서 행한 다양한 경험이 만들어 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단순히 스쳐 지나가면서도 지난주의 추억이 떠오른 이유다.


사가정 공원에 잠시 멈춰 서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다. 이제는 걷기 전 스트레칭이 하나의 루틴이 되었다. 걷기 전 스트레칭을 통해 부상을 예방하고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할 수 있다. 지난주에 내려왔던 계단을 오른다. 내려올 때는 이 길이 무척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는데, 막상 오늘 올라가니 생각보다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번 걸었던 길은 가깝게 느껴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처음 만날 때는 다소 거리감도 있지만, 다시 만나면 금방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동시에 초심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처음 걸을 때 느끼는 길에 대한 추억이나 즐거움과 설렘이 자주 걷다 보면 사라지거나, 첫 기억의 추억을 잊고 아무 생각 없이 걷게 된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 만날 때의 설렘과 기대감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런 느낌은 퇴색되고 아무런 느낌 없이 그냥 습관적으로 만나는 경우도 있다. 가끔 초심을 돌아볼 필요도 있다. 초심은 첫 경험을 떠올리며 길과 사람을 처음 만나는 마음으로 대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깔딱 고개의 계단 역시 마찬가지다. 몇 년 전 처음 이 계단을 오를 때는 무척 힘들게 올랐다. 하지만, 이제는 편안하게 오른다. 계단은 늘 있었다. 같은 수의 계단이고, 계단의 모습이나 높이가 변하지도 않았다. 나는 몇 년 전보다 더 노화했지만, 이 계단을 오르는데 힘들지 않다. 이 길에 익숙해진 것인지, 건강 상태가 좋아진 건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잘 아는 길이기에 천천히 여유롭게 걷고, 중간에 쉬며 걸었기에 힘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길을 걸으며 배운 것 중 하나는 아무리 높고 힘든 길도 천천히 쉬어가며 걸으면 그다지 힘들지 않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힘든 길이나 높은 길은 빨리 올라가 쉬려고 애쓰며 걸었다. 그만큼 힘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는 천천히 쉬어가며 걷는다. 훨씬 더 쉽게 오르며 힘도 들지 않게 오를 수 있다. 길을 걸으며 길에서 배운 지혜다.


광나루 역 부근 식당에 들어가 점심 식사를 했다. 예전에 들렸던 식당이다. 이 식당에서 즐겁게 먹고 마셨던 추억이 있고, 음식 맛도 좋고, 주인의 정성스러운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 식당도 장소이지만, 그 식당이 만들어 준 추억이 있다. 좋은 추억이 있는 곳은 다시 찾아가게 되고, 그렇지 않은 식당은 다시 찾지 않게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만나면 좋은 친구는 자주 보고 싶고, 반면 만나면 피곤한 친구는 멀리하게 된다. 나는 어떤 친구일까? 누군가에게는 좋은 친구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만나기 싫은 친구일 수도 있다. 대인 관계는 상호관계다. 둘 사이에 문제가 있다면, 이는 상대방만의 잘못이 아니고 나도 그 문제의 원인이 된다. 하지만, 늘 자신은 문제가 없고 상대방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며 상대방에 대한 원망만 하는 경우가 많다.


광진교를 지나 한강공원을 걷는다. 드론 경기장에서 드론 월드컵이 열린다. 예전에는 장난감 비행기를 날리던 것이 이제는 드론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곳에 활용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드론이 전쟁에 사용되며 사람과 장소를 공격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위해 만든 물건이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발명품은 문제가 없다. 그 발명품을 사용하는 사람이 문제가 있다.


암사동 선사 유적지 앞 카페에 들어가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한다. 2027년도 제주 올레길 완보하는 것에 대한 얘기를 한다. 길을 걷다 쉬면서 또 길에 대한 얘기를 한다. 길벗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길벗 덕분에 즐겁게 걸었고, 좋은 추억을 쌓았다. 언젠가 이 카페에 오면 이날 같이 웃고 떠들었던 길벗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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