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길은 부산 다대포 해변에서 창원 해양 공원을 지나 진해 국가 산업단지 구간을 걷는 길이다. 길마다 특성이 있다. 길의 특성은 그 지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이 그대로 드러난다. 지역에 공장이 있으면, 공장과 관련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목적의 장소가 만들어진다. 유원지가 있으면,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한 시설과 사람들이 몰려든다. 자연스럽게 그 지역마다 특성에 맞는 문화가 만들어진다.
다대포에 위치한 몰운대(沒雲臺)는 낙동강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곳으로 안개가 자주 발생해서 섬의 모습이 구름 속에 잠겨 있다고 해서 만들어진 명칭이다. 몰운대는 아름다운 곳이다. 해송이 가득하고 기암괴석과 우거진 숲, 다양한 철새들로 유명한 곳이다. 해송 사잇길이나 몰운대 안을 걷는 길은 조성이 잘 되어 있다. 이 길은 새벽녘이나 일몰 시 조용히 산책하기에 아주 멋진 곳이다. 약 10분간 침묵 속에 걸으며 조용히 자신의 마음 정원을 살펴본다.
일몰 명소로 유명한 아미산 전망대를 오른다. 전망대에는 벤치가 놓여 있다. 이곳에서 조용히 일몰을 감상하라는 배려인 듯하다. 낙동강이 바다와 만나는 마지막 지점인 낙동강 하구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낙동강 하구만이 가진 특색 있는 모래섬을 보며 수몰되어 가고 있는 나라들 생각이 떠오른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투발루와 몰디브 등 몇몇 나라들이 수몰 위기에 처해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난다. 특히 투발루는 50년 이내에 국토 전체가 물에 잠길 수 있다고 한다. 모래섬의 모습이 수몰되어 가고 있는 나라들의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곳 사람들을 위한 마음의 기도를 잠시 한다.
포구를 따라 늘어선 작은 선박들과 카페로 가득한 마을 풍경이 마치 이탈리아 베네치아 무라노섬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장림포구 부네치아를 바라본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몰 풍경이 최고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나가는 시간에 날씨가 흐려 일몰을 볼 수 없어서 안타깝다. 낙동강 하구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걷는다. 바람이 없어 잔잔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마음은 자연스럽게 평화로워진다. 어두운 저녁 시간에는 강 건너 야경을 보며 걷는 것도 큰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산책로를 지나 을숙도 대교를 걷는다. 을숙도는 동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라고 한다. 섬의 크기가 상당해 보인다. 자료를 찾아보니 을숙도 공원의 규모가 여의도 크기와 같다고 한다. 공원을 둘러보지 못하고 바쁜 걸음으로 을숙도 대교를 건넌다.
둘째 날은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며 걸었다. 오랜만에 우중 걷기를 하니 마음이 시원해진다. 언젠가부터 우중 걷기를 좋아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이제는 우중 걷기는 식사로 치면 일종의 특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해안가에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걷기도 하고, 때로는 산책로와 평행으로 조성된 소나무길을 걷기도 한다. 중간에 멋진 북카페에 들어가 차를 마시며 각자 발과 장비 점검을 하기도 한다. 걸으며 카페에서 잠시 쉬는 휴식은 걸으며 지친 몸을 회복시켜 주는 최고의 처방이다. 발이 빗물에 젖어 신발의 습기를 제거하고, 발이 아픈 사람은 밴드 등으로 임시 처방을 하며 오늘 걸을 길을 걷기 위한 채비를 한다. 모두 참 열심히 걷는다.
드디어 창원에 들어선다. 창원의 대표 관광 자원인 창원 해양 공원을 지나간다. 이곳에는 군함 전시관과 해전사 체험관, 해양생물 테마 파크 등이 조성되어 있다. 우리는 길을 걸으며 이곳을 스쳐 지나간다. 가끔 걸으며 고민을 한다. 이곳을 모두 들려서 구경을 하는 것도 재미있는 테마 여행일 될 수 있는데, 우리는 마치 수박 겉핥듯 스쳐 지나간다. 우리는 테마 걷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코리아 둘레길 구간 중 남파랑 구간을 걷고 있다. 둘레길 완보를 목표로 하고 있기에 코스대로 따라 걷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스쳐 지나가는 것의 아쉬움은 각자 언제든 편한 시간에 테마 여행을 하며 충족할 수 있을 것이다.
진해 국가 산업단지 지역을 지나간다. 이곳은 조선소가 많이 몰려있는 곳이다. 갑자기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가 떠오른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을 담은 이 단어는 수십조 원 규모의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다. 우리나라가 트럼프의 압박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한 프로젝트다. 각 나라의 문화가 변하고 있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보다는 나 먼저 살아야 된다는 다급함과 초조함이 있다. 같이 살자는 좋은 생각보다는 나만 먼저 살고 보자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그 이면에는 자신의 권력 유지만을 최우선으로 하는 못된 정치인들의 속임수가 있다. 조선소를 지나며 이 공장에서 수십 년간 사업을 유지하고 있는 경영자들과 묵묵히 근무하는 근로자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든,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이 되든 상관하지 않고 오늘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건강한 노동과 노력 덕분에 세상은 돌아간다. 조선소가 몰려있는 산업단지 지역을 지나면서 권불십년(權不十年)이 떠오른다. 불과 채 1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의 권력을 잡기 위해 평생 권력의 노예로 살아가는 불쌍한 정치인들이 안쓰럽다. 반면 오늘 주어진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근로자들은 당당하고 건강한 주인들이다.
길을 통해 사람들이 드나들며 문화를 만들어간다. 그 길을 지나는 사람들과 그 길에 머무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문화다. 길을 함께 걷기 위한 걷기 동호회인 ‘걷기 학교’의 문화는 무엇일까? 우리는 어떤 문화를 지향해야 할까? 걷기를 좋아하고, 코리아 둘레길을 완보하기 위해 매월 남파랑길을 걷고 있다. 이 길 이전에는 해파랑길을 걷기 학교 회원들과 함께 완보했다. 걷기 동호회의 특성 중 하나가 문화가 없다는 점이다. 어떤 의무와 책임이 없고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모임이기에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코리아 둘레길을 완보하며 우리만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라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 리더인 나의 역할과 태도가 중요하고, 나 스스로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그럼에도 가끔 흔들릴 때도 있다. 나 스스로 많은 결점을 지니고 있고 실수를 많이 하는 사람이기에 한계점도 분명히 있다. 이제 남파랑길을 겨우 두 번 걸었을 뿐이다. 앞으로 몇 번 더 걷다 보면 이 길을 사랑하고 걷기 학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주 나오며 우리만의 걷기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그 문화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동시에 나 스스로 점검을 하며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고, 잘못된 부분은 시정하며 리더로서 자질을 좀 더 잘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도 있다. 우리가 걷는 이유는 길벗과 함께 걸으며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기 위함일 것이다. 그 지혜가 바로 ‘배려와 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