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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남파랑길

동상동몽 (同床同夢)

by 걷고

동상이몽이라는 사자성어는 겉으로는 같은 행동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는 의미다. 어쩌면 우리네 삶의 모습이 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살아가며 생각이나 감정이 행동과 일치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대부분 자신이 느끼고 있는 생각이나 감정과 다르게 행동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의 의지, 감정, 생각과는 상관없이 사회적인 관습, 예의, 또는 어느 조직이나 단체만의 임의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틀 안에서 행동을 하기에 스트레스가 발생한다. 자신의 경험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힘들고 괴로운 일이다. 좋은 일이 있으면 웃고 즐거워해야 한다.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짜증이나 화가 나야 하고, 슬픈 일이 있으면 울거나 슬픔을 느껴야 한다. 하지만 이런 표현도 못할뿐더러 감정조차 감추며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이 있다.


동호회 활동을 하거나 취미 생활을 하며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어내고,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찾고, 하며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기도 한다. 동호회는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어떤 책임이나 의무도 없고, 가입과 탈퇴가 자유롭고, 익명으로 활동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일반적인 사회생활에서는 하지도 않거나 또는 할 수 없는 언행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만을 위한 활동이기에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에 충실한 것은 좋지만 그로 인해 주변 회원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같은 동호회 활동을 하지만 각자 생각이 다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살아온 과정이 다르고, 살면서 경험한 것이 다르고, 살아가는 삶의 가치가 다르기에 각자 다른 이유나 다른 생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같은 취미를 갖고 있다는 공통점. 걷기 동호회는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고, 음악 동호회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동호회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참가하고 활동한다. 그럼에도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언행과 일치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평상시의 모습과 습관은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심리상담의 목적은 지금보다 건강한 마음으로 사회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게끔 만드는 작업이다. 상담사가 내담자에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상담 장면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부정적인 태도나 언행을 내담자가 스스로 통찰하게 한 후 스스로 노력해서 원하는 삶의 방식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작업이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통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쌓아온 부정적인 태도는 쉽게 바뀌지 않고, 경험과 언행의 불일치라는 심리적 불편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상담가는 상담 장면에서 내담자가 변화를 위한 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마음의 근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내담자는 마음 근력을 얻은 후 일상에서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 나가게 된다. 도전과 좌절의 반복을 통해 마음의 근력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스스로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동호회 활동은 심리상담과 같다. 사회생활에서는 표현할 수 없는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상담장면에서 내담자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된다. 그 자체가 큰 치유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표현을 하며 일시적인 부적응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스스로 하면서 어색하고, 처음 해 보는 방식이기에 서툴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집중하느라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놓치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가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 역시 원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스스로 균형을 잡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동호회 활동은 단체 활동이다. 함께 하는 활동이기에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에 충실한 것도 좋지만, 그로 인해 단체 활동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나의 즐거움과 편안함이 동료의 즐거움과 편안함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불편함을 유발하기도 한다. 나 자신이 소중한 만큼 동료 각자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다. 이 균형을 잡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동호회 활동을 하며 균형을 잡는 힘을 키울 수 있고, 그 균형의 힘으로 일상을 조금 더 긍정적이고 적응적이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길을 걸으며 길이 주는 행복감과 불편함이 있고, 날씨가 주는 행복감과 불편함이 있고, 길벗이 주는 행복감과 불편함이 있다. 길을 걷지 않는다면 굳이 만날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굳이 집을 나와 길을 걸으며 행복과 불편함을 감수한다. “현대인은 더 편해지는 것을 행복의 조건으로 여기지만, 사실 진짜 행복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건 큰 편안함이 아니라, 적당한 불편함과 도전일지 모릅니다.” (도파민네이션 저자, 애나 램키 미 스탠퍼드대 교수) 자연이 베푸는 무언의 가르침과 치유가 있다. 어떤 날씨에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어떤 상황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때로는 조용히 침묵 속에서 걸으며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게 되고, 길벗과 수다를 떨며 길벗을 통해 좋은 인연을 쌓아가며 동시에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길을 걸으며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이 동상동몽(同床同夢)으로 변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동상동몽은 마음과 생각이 일치하는 상태다. 이렇게 되면 주어지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힘든 것은 힘든 대로,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대로, 행복한 것은 행복한 대로, 슬픈 것은 슬픈 대로 느끼고 경험하며 지나간다. 힘든 것을 억지로 힘들지 않은 척하지도 않고, 행복한 것을 일부러 감추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 경험하고 언행을 해도 서로에게 걸림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걸으며 마주치는 상황과 사람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고, 경험과 행동의 일치를 만들어 나가고, 나아가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걸림이 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이 우리 걷기 학교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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