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짓

by 걷고

유명 배우나 감독이 전성기가 지난 후에 ‘B급’ 영화에 출연하거나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나는 깨달았다. 괜찮은 어른은 젊음이라는 전성기가 끝났다는 사실을 빠르게 납득하고 하던 일을 묵묵히 해 나가는 사람이었다.” 이 기사를 쓴 문화 칼럼니스트인 김도훈이 한 얘기다.


이 글을 읽으며 한 해를 돌아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다. 내년에 칠순을 맞이하는 나는 약 70년의 세월을 ‘헛짓’하며 살아왔다. 그 ‘헛짓’은 자신의 내부를 바라보거나 정갈하게 가꾸기보다는 외부를 향해 늘 무언가를 추구하고 욕심내며 살아온 삶이다. 자신의 그릇보다 큰 그릇이 되기를 바라며 살아왔다. 길 가의 잡초가 사과나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잡초로서의 삶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70년의 세월을 ‘헛짓’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이 조금 안타깝기도 하지만, 노욕을 부리지 않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 ‘헛짓’은 그 당시에는 의미가 있었고, 그 ‘헛짓’을 통해 인정받고 싶었고, 누군가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낫다는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야 이 모든 것이 ‘헛짓’이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절감하며 ‘헛짓’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헛짓’을 하며 그것이 ‘헛짓’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빠져들지 않을 수는 있을 것이다. 70세에 이르러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논어의 글귀가 생각난다. 알고 있으면서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모르는 만도 못하다. 그럼에도 이 말을 알고 있기에 이와 비슷한 삶의 방향을 향해 갈 수는 있다. 이 말씀은 삶의 풍랑 속에서 등대가 될 수 있다.


‘마음챙김 걷기’ 책을 발간한 후, 내년 초에 ‘마음챙김 걷기’에 관한 교육안을 만들어 다양한 기관과 단체에 강의 제안을 할 계획이었다. 강의를 한 후 수강생을 대상으로 걷기, 명상, 상담을 접목한 심신 치유 프로그램인 ‘WMC 8’을 진행할 계획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굳이 그렇게까지 분주하게 여기저기 문을 두드리며 강의를 제안하고, 강의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 나이 되도록 내면을 촘촘하게 들여다보지 못하고, 외부에 관심을 갖고 있을까? 외부의 상황과 사람은 정작 나에 대해 그다지 관심도 없고, 그들의 말이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엄지 척’이나 ‘좋아요’를 기대하며 젊은 세대처럼 살아가고 있을까? 무의미한 소통과 관계야말로 ‘헛짓’이다.


지난 삶을 돌이켜보니 봉사나 나눔을 하지 못하며 살아왔다. 나 자신과 그리고 주변 사람에게 그다지 따뜻하거나 친절하게 대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또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기초적인 상식과 지식으로 아는 체하며 살아왔다. 무척 후회되는 일이다. 나 혼자 모르고 살아가면 되는데, 모른 것을 아는 체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한 것은 지옥고를 면하기 힘든 업이다. 이제 아는 체하는 ‘헛짓’도 그만두어야겠다. 제대로 완전하게 알지 못하는 ‘앎’은 ‘알지 못함’보다도 못하고, 훨씬 더 위험하다.


늘 해오던 삶의 모습이 있다. 걷고, 글 쓰고, 명상하고, 상담하는 일이다. 이왕 걷는 일 함께 걷는 것도 좋다. 걸으면서 길벗에게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하면 더 좋다. 이왕 글 쓰는 일 조금 더 책임감 갖고 신중하고 써서 단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눔이 될 수 있다. 명상은 늘 해오던 대로 그냥 하면 된다. 잘 되든 그렇지 않든 그냥 꾸준히 하면 된다. 그리고 제대로 알지 못하는 명상이나 불교에 대해 아는 체하는 ‘헛짓’은 그만하자. 지난 몇 개월 동안 상담 봉사를 하지 않았다. 이제 다시 시작할 때다. 심리적으로 또 신체적으로 고통받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이 또한 나눔이 될 수 있다. 책을 꾸준히 읽었지만, 대부분 어떤 목적을 갖고 읽었던 거 같다. 이제는 목적 없는 독서를 마음껏 하고 싶다. 그리고 그 책의 내용이 걸으며 숙성되어 글로 표현되고, 자연스럽게 삶 속에 녹아들어 명상과 상담에 도움이 되는 삶을 꾸준히 묵묵하게 살아가고 싶다.

비록 ‘A급’은 아닐지라도, ‘B급’이나 ‘C급’이라도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꾸준히 길을 간다면 그런 삶은 ‘A급’이 아닐까? 굳이 급을 나눌 이유나 필요가 있을까? 급을 나누는 것은 외부의 일이고, 급에 대해 분별하지 않는 것은 내부의 일이다. 새해에는 내부를 잘 다스리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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