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내는 돈도 되지 않는 걷기와 글쓰기를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준다. 책을 발간하느라 수고했지만, 앞으로는 더 이상 발간하지 말라고도 한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뒤따르지 않는 것이 안타까워 한 얘기다. 비록 아무런 보상이 없더라도 꾸준히 하고 있는 모습을 아내가 칭찬해 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지만 늘 그 기대는 빗나간다. 그렇다고 지지해 달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지도 않는다. 후속 공격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 말을 하면 사람들은 아내가 돈만 밝히고 남편의 기를 죽이는 사람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천사 같은 사람이다.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아내 말씀은 전적으로 옳은 말씀이다. 걷거나 글을 쓴다고 돈이 되지 않는다는 객관적인 사실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물론 하루에 8,000보를 걸으면 백 원을 주는 서울시 손목닥터 프로그램이 있다. 그러니 돈이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 점을 얘기하며 아내에게 항변을 한다면 이는 역린을 건드리는 일이 된다. 그러니 잠자코 걸을 수밖에. 글 쓰는 것도 그렇다. 인세가 나오기는 하겠지만, 발간 비용을 보상받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약 7년 전 산티아고 책을 출간한 후 지금까지 인세와 강의료 등을 모두 합쳐도 출간 비용에 못 미친다. 남는 장사는 아니다. 그래도 글을 쓴다.
“왜 돈도 되지 않고 힘만 드는 일을 계속해서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잘못된 점이 있다. ‘힘만 드는’이라는 표현 자체가 이미 잘못된 말씀이다. 걷고 글 쓰는 일이 힘들기는커녕 오히려 즐겁다. 걸으면 피곤하지 않고 오히려 에너지가 쌓이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즐겁다. 글쓰기는 잠자고 식사를 하는 것처럼 하지 않으면 할 일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찜찜하다. ‘힘만 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에 활력이 된다. 그러니 걷고 글을 쓴다.
‘돈도 되지 않는 일’이라는 표현에도 모순이 있다. 수입은 늘리고 지출을 줄이는 것이 돈 버는 유일한 방법이다. 수입을 늘릴 방법은 없다. 나를 필요로 하는 직장을 구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돈을 벌기 위해 삶의 질을 저하시키면서까지 돈벌이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어느 정도 살만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껴 쓴다면 말이다. 그럼 지출을 줄이면 된다. 죽기 직전에 평생 벌어온 돈의 80%를 병원에 바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과거의 희미한 기억이다) 만약 80%를 40%를 줄일 수 있다면 40%의 수입이 발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만약 건강을 잘 유지해서 20%만 병원비로 사용한다면 60%라는 어머어마한 돈을 버는 것이 된다. 걷기는 이를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그러니 걷기는 ‘돈도 되지 않는 일’이 아니라 지출을 줄일 수 있는, 즉 돈을 버는 행위가 된다. 또한 글쓰기는 치매 예방에도 좋다고 하니 이 또한 지출과 가족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아주 좋은 방편이다.
아내의 말씀을 거역하고 역린을 건드리는 일임에도 걷기와 글쓰기는 계속할 것이다. 그게 나의 소명이고 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음만 기다리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죽음은 기다린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저절로 시간이 되면 찾아온다. 그때 웃으며 맞이하면 된다. 죽음이 찾아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걷고 글을 쓰며 웃고 살아갈 것이다. 게다가 길벗이 있고, 글벗이 있고, 수다 친구가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루틴을 만들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고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지만, 지금은 흔들리는 삶 속에 루틴이 나를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 “는 어느 서점의 캐치프레이즈가 있다. ”내가 루틴을 만들고, 루틴이 나를 만든다. “ 나의 캐치프레이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