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소식 때문인지 취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각자 자신의 건강상태와 상황에 맞춰 걸으면 된다. 그런 면에서 취소를 해 준 사람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런 결정이 함께 걷는 길벗을 위한 배려가 될 수 있다. 또 갑자기 생긴 상황에 맞춰 결정을 바꾸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한번 결정을 했기에 무조건 그 결정에 따른다는 것은 책임감 있는 행동일 수는 있지만, 현명한 행동은 아니다. 자신의 결정을 바꾸어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오히려 더 현명한 태도다. 걷기 동호회 활동을 하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점이다. 평소에 누군가를 의식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면, 동호회 활동은 자신의 의견을 존중하고 따르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다만 그 의견과 태도가 동호회 활동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으면 된다. 자신의 의지나 결정 그리고 동호회 회원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균형감을 이루며 지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고 지혜로운 일이다.
온종일 비가 내리고 있다. 원래 코스는 봉산과 앵봉산을 걸을 계획이었다. 일기예보를 보니 바람도 제법 거세고 강우량이 5~7mm로 적지 않은 비가 내린다고 한다. 코스를 변경하기로 했다. 조금 편안한 길을 심신의 휴식을 취하며 걷고 싶었다. 참가자들을 만나 코스 변경에 대한 의사를 물었고, 모두 동의했다. 결정을 바꾸는 것을 상의하고, 그 바뀐 결정을 존중해 주는 길벗의 모습이 보기 좋다. 매봉산을 지나 하늘공원과 노을공원, 한강 공원, 월드컵 공원을 걸었다. 상암동 공원 투어다. 모두 우비를 쓰고, 우산도 쓰고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즐겁게 나누며 걸었다. 길벗이 저절로 바뀌며 다른 길벗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서로 걷는 속도가 다르고 잠시 쉬는 시간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다른 길벗과 얘기를 나누게 된다. 가정 얘기, 자신이 살아온 얘기, 앞으로 살아갈 얘기 등 대화 주제도 딱히 정해져 있지 않지만 대화는 끝없이 이어진다.
새 우비를 입고 걸었다. 그동안 다양한 우비를 사용했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가볍고 덥지 않고 비를 최대한 피할 수 있는 우비다. 머리 위에는 작은 창이 있어서 모자 끝 부분에 맞물리며 비바람을 막아준다. 안경 위에 빗방울이 맺히지 않아서 시야가 편안하다. 두 팔이 있는 판초형 우비다. 대부분 판초형 우비는 팔이 없어서 팔과 옆구리 부분이 노출되어 비를 맞게 된다. 하지만 이 우비는 양팔이 달려있다. 그리고 손목 부위에는 조이는 끈이 있어서 비바람의 노출을 최대한 막아준다. 또한 판초형 우의는 바람이 불면 날리게 되는데 허리 부분에 끈이 달려 있어서 몸과 우의를 묶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다양한 기능이 있는 가볍고 단순한 우의를 입고 걸으니 몸도 마음도 가볍고 기분도 좋다. 비 오는 날이 오히려 기다려진다. 우의 하나가 비를 대하는 마음에 변화를 만들어주었다.
우리는 걷기로 한 날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걷는다. 약속이다. 약속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약속은 우리의 정체성이다. 걷기 동호회는 걷는 것이 최우선이다.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일상을 희생한다면 이는 매우 잘못된 활동이다. 집안일과 자신의 일상을 모두 마친 후 여가 시간에 편안하게 걷는 것이 걷기 동호회 활동이다. 모든 일에 순서가 있듯이, 동호회 활동은 그 우선순위에서 당연히 후순위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후순위 활동을 할 때에는 그 활동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걷기가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오늘도 우리는 각자 자신의 역할을 해낸 후 일상을 벗어나 걷기를 최우선으로 하며 빗속을 걸었다. 참가한 길벗에게 감사를, 참가하지 못한 분들에게 감사를, 내리는 비와 우비에 대한 감사를, 걸을 수 있는 건강에 대한 감사를, 오늘 하루를 즐겁게 보낸 자신에게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