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저)

by 걷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고 나서 아내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 뒤 그는 고독 속으로 물러나 양들과 개와 더불어 한가롭게 살아가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다. 그는 나무가 없기 때문에 이곳의 땅이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달리 해야 할 중요한 일도 없었으므로 이런 상태를 바꾸어 보기로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 한때 엘제아르 부피에는 1년 동안에 1만 그루가 넘는 단풍나무를 심었으나 모두 죽어 버린 일도 있었다. 그래서 그 다음 해에는 단풍나무를 포기하고 떡갈나무들보다 더 잘 자라는 너도밤나무를 심었다.”


이 책을 처음 만난 지는 10년이 훌쩍 넘은 것 같다. 그 당시에는 그냥 편안하게 읽으며 한 사람의 삶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만이 보였다. 하지만 힘든 시간을 겪어내는 과정에서 다시 읽은 후 이 책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단순하게 희망을 보았다면, 지금은 그 사람의 고통과, 고통을 노동으로 승화시키며 하루하루 묵묵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눈물겹게 외롭고, 자신과의 처절한 투쟁을 하며 동시에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며 마음 수양을 해나가는 모습에서 수행자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은 방황하고 좌절감에 휩싸일 때 삶을 대하는 태도를 제시해 주었다.


아내와 아들을 모두 잃고 황무지 같은 산속에서 홀로 살며 매일 상수리 열매 100개를 정성스럽게 골라서 심는 모습은 우리가 삶을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또한 1만 그루가 넘는 나무가 모두 죽은 후에도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다른 나무를 심은 모습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부피에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늘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어쩌면 상황을 그대로 수용하기에 저절로 평정심이 항상심이 되었을 것이다. 기분이 좋거나 우울하거나, 절망스럽거나 희망에 부풀어있거나, 날씨가 좋거나 나쁘거나, 그대로 받아들이며 하루하루 스스로 정한 주어진 일에 충실할 뿐이다. 해 뜨면 밖에 나가 일하고, 해 지면 들어와 내일을 준비한 후에 잠을 자고. 단지 오늘을 살 뿐이다.


인생이모작 계획의 일환으로 상담심리사 자격증을 늦게 취득하였다. 하지만 어느 상담센터에서도 상담 경력이 짧은 나이 많은 남성 상담사를 필요로 하는 곳은 없었다. 젊고 유능한 상담사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고, 수요 대비 과잉공급이 된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할 일을 찾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직장생활과 개인사업을 운영한 내가 막상 사회에 나와서 할 일을 찾는 것은 논 바닥에 떨어진 바늘을 찾는 것과 다름이 없다. 아내에게 미안했고, 할 일이 없다는 사실에 심한 좌절감을 느꼈다. 막막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정리해 보았다. 명상, 걷기, 상담, 글쓰기, 강의 등이었다. 잘하거나 전문가 수준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이고, 하면 즐겁고,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나아질 수 있는 일들이다. 경제적인 수입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를 필요로 하는 곳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시 이 책을 읽었고, 애니메이션 영화도 보았다. 또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분들에게 ‘인생이모작 준비’에 관한 강의를 하며 이 영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어떤 분은 자신의 상황이 너무 절실하기에 부피에의 삶이 와 닿지도 않고, 왜 이런 영화를 보여주냐며 불편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어떤 분은 땅도 없고, 먹고 살기도 바쁜데 어떻게 저렇게 태평하게 살 수 있냐고 하였고, 다른 분은 부피에의 삶은 인생을 포기하고 자연 속으로 도피한 삶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내가 기대했던 효과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 나와서 당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분들의 절실함과 절망감이 느껴져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그들에게 또 나 자신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품위를 유지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의 태도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삶의 절망감이 너무 깊어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에 갇힌 느낌이 들 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세상 한탄만 하며 누군가가 와서 구해주길 기다린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환경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변하면 환경이 변하기 시작한다. 세상과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하면서 둘러싸고 있는 세상과 환경이 변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설사 그 길이 앞이 아니고 뒤로 간다고 해도 계속해서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매 순간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주어진 일에 자신을 던지며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해야 한다. 결과에 대한 기대와 희망도 버리고, 그냥 순간을 사는 것이다. 기대와 희망은 오히려 목을 더 조여 오고 더 지치게 만든다. 부인과 아들을 잃고, 심었던 나무 1만 그루가 모두 죽었을 떼도 부피에는 그다음 날 다른 나무를 심기 위해 집을 나섰다. 나무가 어떻게 될지 어떠한 기대와 희망도 품지 않은 채, 할 일을 묵묵히 한 것이다.


힘든 하루하루를 버티며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주어진 일을 하다 보니 저 멀리 아득한 빛 한 줄기가 터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숨을 쉴 수 있고, 마음도 조금씩 편안해지고 있으며, 하루하루 좀 더 즐겁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명상, 상담 관련 전공 공부, 걷기 등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조금씩 하고 있다. 물론 가끔 못할 때도 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다음 날 다시 하면 되니까. 어차피 평생 할 일이니 포기하지 않고 그냥 꾸준히 하기만 하면 된다. 부피에가 매일 나무를 심으러 산으로 나가듯이, 매일 주어진 일을 한다. 남은 시간에는 좀 더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탐색하고, 사람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며 소통을 하기도 한다. 부피에의 나무 심는 일과, 나의 할 일은 같은 것이다. 삶은 그렇게 사는 것인가 보다.


순간을 살다 보면 무엇인가가, 누군가가, 어떤 것이 먼저 다가올 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날을 기다릴 필요는 없다. 그냥 오늘 할 일만 하면 되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할 시간에 지금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과거에 대한 후회를 할 시간에 할 일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나머지는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우리에게 길을 열어 줄 것이다. 만약 길이 열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직 시간이 오지 않았거나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걱정할 일은 없다. 단 한 가지, 오늘 하루 충실했는가로 자신을 점검하는 것, 그 외에 다른 일은 없다. 부피에는 우리에게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책과의 인연이 귀하고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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