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연금과 책임감
일시: 2019년 12월 22일 (불광천 한 바퀴 6km)
2019년 12월 24일
코스: 사천교 – 홍제천 – 한강 – 메타세콰이어길 – 불광천 – 집
날씨: 영상 3도, 날씨 쌀쌀하고 맑음
거리: 9km
누적거리: 134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요 며칠간 마음에 구름이 끼었다. 주택 연금 신청을 하면서 발생한 것이다. 스스로 주택 연금을 신청한다는 것이 조금 불편했지만, 국민연금과 합치면 아내와 나 둘이 죽을 때까지 먹고사는 데는 별 무리가 없고,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생각에 신청을 하게 되었다. 아내는 이 사안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설득 끝에 아내도 마지못해 동의를 했다.
딸아이 결혼 후 우리가 갖고 있는 자산은 빚도 없지만 현금도 별로 없고, 작은 아파트 한 채가 전부이다. 평범한 우리 같은 사람들이 환갑이 지난 즈음에 맞이하는 일반적인 풍경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씁쓸함이 남는다. 아마 아내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와 나는 열심히 살아왔다. 남의 돈 쓴 적도 없고, 돈을 은행에서 빌린 적도 없으며, 월급을 아끼며 차곡차곡 모아 집을 구입했고, 늘 아끼고 줄여가며 생활을 해왔다. 열심히 일 하고 살아왔는데 노후에 맞이하는 지금 이런 상황이 주는 심리적 불편함이 있다.
연금 신청을 위해 주택금융공사에 방문하여 상담을 받았다. 약 두 시간에 걸쳐 상담을 받고 신청하고 나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내의 표정이 밝지 않아 신경이 쓰였다. 아내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마지못해 승낙을 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나 역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속이 후련하다는 얘기를 아내에게 하며 속 마음을 숨기고 있었다. 고민 끝에 상담받은 당일 늦은 오후에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연금 신청을 취하하겠다고 하였다.
아내와 나 둘 다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연금 수령액 대비 정산 금액이 너무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20년 간 총 연금수령액 3억 정도 받을 경우, 은행은 6억 정도로 정산한다. 원래 생각은 연금 받고 우리 부부가 죽은 후 어느 정도의 금액을 아이들에게 남겨 줄 수 있으리라 계산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아이들에게 남겨 줄 것이 한 푼도 남지 않게 된다. 연금 수령액을 복리 이자로 산출하여 정산을 하게 되어 이런 일이 발생한다. 이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런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 외곽 적은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면 차액을 연금 대신 활용할 수 있고, 집은 여전히 우리 명의로 남게 되는 방식으로 하자고 아내와 합의를 하며 연금을 취하하였다.
서류를 되찾아 나오면서 두 시간 정도 걸어서 귀가했다. 걸으며 많은 생각을 하였다. 왜 그렇게 서둘렀을까?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아내와 충분히 의견을 나눌 수 있었는데, 아내에게 설득과 강요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많이 미안했다.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떨쳐버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국민연금과 주택연금을 합하면 풍족하지는 않지만 아끼고 살면 죽을 때까지 살 수 있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살고 싶어서 내린 결정이었다. 아내 역시 매월 정기적으로 나오는 안정적인 연금 내에서 생활하면 편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나와 아내 모두 편안하리라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 둘 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내린 주택연금 취하 결정을 잘 한 결정이다.
길을 걸으며 가장의 책임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다, 과연 우리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가장으로서의 책임, 주부로서의 책임, 아들, 며느리, 아빠, 엄마, 사위로서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모든 기능적인 역할로부터 벗어났다손 치도라도 삶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남는다.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완수했다고 해도 마지막 역할인 ‘삶의 역할’은 여전히 남는다. 살아간다는 것은 과정을 살아가는 것이고, 그 과정 속에서 내린 결정과 그에 따른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그 책임은 우리의 삶이 끝날 때까지 결코 끝날 수 없다. 자신이 맡은 역할과 책임의 짐을 평생 어깨에 메고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그 짐이 바로 소명이고, 우리 자신이며, 삶의 원동력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짐이고, 부담이고, 우리를 무기력에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1kg의 무게를 유아가 느끼는 부담과 성인이 느끼는 부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삶이라는 무게는 변하지 않지만, 견뎌내는 힘을 키우면 키울수록 상대적으로 그 무게는 줄어든다. 결국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지만, 내면의 힘을 키워 짐의 무게를 덜 느끼게 만들 수는 있다. 이 선택과 결정 역시 각자 본인의 몫이다. 책임으로부터 도망가거나, 힘을 키우지 않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거나, 아니면 힘을 키우고 가벼운 발걸음을 하거나, 선택권은 각자에게 있다. 이번 주택연금 취하 결정을 내리며 힘을 키우기로 마음을 다졌다. 어차피 죽지 않고 살아내야 할 삶이라면 힘을 키워 삶의 짐을 깃털처럼 가볍게 만들고 휘파람을 불며 즐겁게 살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배웠다. 아내와 속내를 편안하게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나의 행복이 아내의 행복이 되어야 하고, 그 반대도 정확히 적용되어야 한다. 부부 중 한 사람의 편안함을 위해 다른 한 사람이 희생을 하거나 참는 것을 강요당하거나 설득당한다면 이런 결정은 내리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아내의 마음을 살피지 못한 것이 많이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