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039]
살기 위해 걷는다
일시: 2020년 3월 21일 (일산역 – 고봉산 – 황룡산 – 운정 호수공원 - 운정역)
거리: 15km
누적거리: 600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나는 왜 걷는가”라는 주제로 책을 쓰기 위해서 어제 첫 면담자를 만나 차 한잔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가장 많은 길을 걷고, 길을 많이 알고 있고, 길에 대한 열정과 탐구욕이 가장 높은 사람이다. 나는 그를 “현대판 김정호”라고 부른다. 그와 얘기를 나누며 나와 비슷한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고, 그런 이유도 훨씬 더 많은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코리아 둘레길 4,500km를 정부에서 관광공사와 함께 준비하고 있다. 이미 동해안 길인 해파랑길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고, 남파랑길은 남해안을 따라 걷는 도로로 준비 중에 있다. 서해안길도 준비 중에 있고, DMZ 평화누리길은 어느 정도 정비가 되어있다. 하지만 해파랑 길을 걸으며 받은 느낌은 제법 오래전에 열린 길임에도 아직 정비가 잘 되어 있지 않아 많이 아쉬웠다. 제주 올레길은 민간인이 운영하여 제대로 정비되어 있고, 계속 발전하고 있는데 비해, 정부에서 운영하는 다른 길들은 각 지자체 벌로 별도의 길을 만들어 코리아 둘레길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길 안내 표식이나, 식당, 게스트 하우스 등이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산티아고 길처럼 코리아 둘레길이 잘 정비되어 많은 국내외 사람들이 걸을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어제 만난 첫 면담자 나들이님과 함께 남파랑길 일부와 서해안길, 평화누리길을 같이 걸을 것이다. 해파랑길을 같이 시작했다가 개인적인 이유로 참석하지 못해 나들이님에게 미안하다. 이제 아내의 허락을 받았으니 앞으로는 같이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몇몇 길동무들이 뜻을 같이 하고 있어서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길을 걷는 중간에 사찰에 잠시 들려 쉬는 시간을 가졌다. 사찰 마당에 연등이 많이 매달려있다. 금년 부처님 오신 날은 어쩌면 신도들 없이 법회를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자등명 법등명 (自燈明 法燈明)을 말씀하셨다. 자신의 본성과 부처님 법의 등불을 밝혀 수행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금년 초파일 법회에 모든 신도들이 ‘모든 존재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온하기를, 모든 존재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기도하면 좋을 것 같다. 잠시 사찰 마당에서 코로나로 인해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원을 했다.
걷기 마친 후 뒤풀이를 함께 했다. 어제 오랜만에 만난 길동무 한 분은 아들이 교통사고로 생사의 기로에 놓였을 때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해파랑길을 걸었던 분이다. 아드님이 다행스럽게 건강이 회복되어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다니 너무 고맙고 좋았다. 그 분과 길을 걸으며 받은 첫 느낌은 너무 힘들어 보였다. 그 얘기를 하니 힘든 마음을 열면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가슴이 먹먹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은 모두 같다. 그 이후로 같이 걸으며 아들 근황을 묻게 되었고, 그런 인연으로 서로 마음을 열고 편안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 좋은 인연이다.
어제 뒤풀이 장소에서 다른 한 분은 자신이 면역성 질환이 있어서 많이 힘들었고, 걸으며 건강을 회복 및 유지하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아이 한 명이 백혈병으로 힘든 시간도 보냈다고 하였다. 처음 듣는 얘기여서 놀라기도 했다. 늘 씩씩하고 사람들과 아주 원만하게 지내고 있고, 나이에 비해 많이 성숙하고 가끔은 초탈한 듯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런 힘든 상황이 있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어쩌면 그런 상황을 통해 그분이 세상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서 사람과 상황을 대하는 모습이 많이 어른스러웠다는 생각도 든다. 뒤풀이 장소에서 한 사람이 자신의 속내를 꺼내놓으니, 다른 분들도 저절로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는다. 적은 인원의 뒤풀이 장소에서는 이런 속내를 나눌 수 있는 귀한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힘든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걷는다. 걸으며 상처를 치유받고, 건강을 회복하며,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걷기는 단순한 신체 운동이 아니다. 몸이 변하면 마음도 변한다. 몸이 건강하면 마음도 건강해진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Sound body, sound mind” 아주 정확한 문구이다. 지금 힘든 상황을 걷기를 통해 극복해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