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096]

늙어가는 것이란?

by 걷고

코스: 20200729 수요 걷기 리딩 외 (선유도역 – 선유도 – 마포대교) 외 19km

누적거리:1,456km

평균 속도: 4.5km/h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저녁 시간에 선유도를 걷는 재미는 걸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희미한 물안개 사이로 선유도에 야간 조명이 켜지며 드러나는 비경은 이름 그대로 선유도, 신선이 노니는 섬이 된다. 선유도의 낮과 밤은 완전히 다르다. 낮에는 죽어있던 섬이 밤이 되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다. 나무도 살아나고, 매미와 개구리, 그리고 많은 풀과 꽃도 부활하듯 기지개를 켠다. 공원 전체가 다시 아침을 맞이한다. 마치 밤이 되면 환락가가 화려한 부활을 하듯. 환락가에 비유한 것이 선유도에 대한 모욕이다. 그럼에도 그만한 표현을 찾기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이 표현을 쓴다. 표현력의 한계를 실감하며 웃으며 좌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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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하루 일을 되돌아봤다. 수원에 채용 면접관으로 오전 8시 반까지 가야 해서, 5시에 기상하여 6시에 집을 나섰다. 혹시나 늦을까 걱정이 되어 전철을 놓치는 꿈을 꾸기도 했다. 명함 지갑을 챙기는데 무겁게 느껴졌다. 지갑 안에 들어있던 카드 몇 장과 명함 몇 장을 빼내서 무게를 줄였다.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오후 3시 반경. 피곤해서 한 시간 정도 낮잠을 잔 후에 쉬었다가 저녁 걷기 길 안내를 위해 나가서 회원들과 함께 선유도를 걷고 있다.


생각이 많아진 이유는 명함 지갑을 무겁게 느꼈던 점과, 수원이라는 거리가 주는 부담감 때문이다. 명함 지갑 안에서 명함 몇 장, 도서관 카드 세 장과 운전면허증을 빼내고, 신용카드 한 장과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등록증’만 들고나갔다. 신용카드는 교통 카드와 점심 식사를 위해 준비했고, 등록증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들고나간 것이다. 명함 지갑을 들면서 무게감을 느끼는 순간 신체적 노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님에도 생활권 밖으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면서 심리적 노화를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걷고 왕성하게 활동을 해서 노화 현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어느 피아니스트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연주할 곡의 수를 줄였고, 연습을 더욱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하며 예전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아주 속도가 빠른 부분의 속도감을 살리기 위해서 다른 부분을 조금 늦게 연주하는 연습을 통해서 빠른 부분의 감흥을 관객이 느낄 수 있게 노력했다. 아주 현명한 방법이다. 자신의 상태를 잘 이해하고 수용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어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까? 노화를 실감하며 생활 습관과 삶의 방향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았다. 마음 관리, 몸 관리, 일 관리, 이렇게 세 부분으로 분류해서 정리했다. ‘마음 관리’를 생각하며 ‘回光返照(회광반조)’라는 선구(禪句)가 떠올랐다 외부로 돌렸던 시선을 자신의 내부로 돌리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늘 외부로 향해있어서 서로 비교하고 욕심부리고 비난하며 자신의 삶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지내는 것이 아니고, 같이 살면서 시선을 자신 내부로 돌리는 것이다. 습관적인 생각과 시각의 전환을 위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비판단적으로 자신과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연습이 바로 명상이다.


다행스럽게 ‘걷기’가 습관화되어 ‘몸 관리’에 많은 도움이 된다. 최근에 하루 10km 걷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매일 걷지 못할 수도 있지만 주 단위로 70km 정도 걷는 것은 그다지 무리가 되지 않는다. 걷기 동호회에서 매주 수요일 저녁 걷기 길 안내와 격주 간으로 서울 둘레길 안내를 하고 있다. 서울 둘레길 안내를 위해 바로 전 주에 그 길 답사를 다시 다녀온다. 그 외에 평일 저녁 식사 후 홀로 두 시간 정도 걸으니 주당 목표 달성은 무난할 것 같다. ‘몸 관리’는 걷기라는 좋은 친구가 있어서 잘 되고 있다. 나이 들어가면서 제일 신경 쓰이는 부분이 치매나 몸을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다. 걷기를 통해 몸 관리와 인지 능력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꾸준히 걸을 생각이다.


‘걷기’라는 좋은 일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걷고의 걷기 학교’를 준비하고 있다. 걷기, 명상, 상담을 접목한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심신이 힘든 분들과 함께 나누려 한다. 또한 ‘걷고의 걷기 일기’를 죽을 때까지 쓸 생각이다. 벌써 95개의 일기를 썼다. 걸은 후 느낌과 평상시 생각을 글로 옮기고 있다. 걷기와 일기 모두 인지력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일 관리’로는 남과 함께 어울리고 나누며 즐겁게 할 수 있는 ‘걷고의 걷기 학교’와 ‘걷고의 걷기 일기’, 이 두 가지가 있다.


노화 현상을 실감하며 오히려 현명하게 늙어가고 살아가는 방법을 정리하게 되었다. 노화 역시 삶의 과정이다. 죽음이 그렇듯. 그런 과정에 맞춰 ‘선택과 집중’을 하며 자신의 주인공을 찾고, 그 주인공과 하나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춤추고 노래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늙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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