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확산으로 정부 지침이 더욱 엄격해졌다. 커피숍에서도 매장 내에서 음료를 마실 수가 없고, 테이크 아웃만 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집합 장소는 대부분 영업을 할 수가 없다. 음식점에서도 오후 9시 이후에는 판매가 중지되었다. 이번 기회에 코로나 확산을 막지 못하면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판단하에 내린 결정이다. 의료진의 피로도도 점점 더 쌓일 것이고, 자영업자들이나 소상공인들의 속이 타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많이 안타깝다. 개인 사업을 해봤던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그 고통을 좀 더 실감할 수 있다. 부디 이번 기회에 확산이 중지되어 조금씩 안정되길 바란다.
요즘 웹진을 준비 중에 있다. SNS를 통해서 활동을 알리거나 글을 올리고 있는데, 어딘가 한 곳에서 정리된 방식으로 소통하고 싶어서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지인이 왜 웹진을 시작하느냐고 물었다. 소통을 하고 싶어서라고 대답했지만, 답변이 어딘가 아쉬웠다. 왜 소통하고 싶을까? 나 자신을 홍보하거나 알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굳이 SNS 활동을 하지 않고 조용히 살아도 되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알고 있는 것을 전달해서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나누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시간을 견뎌내게 만들어 준 명상, 걷기, 상담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홍보하여 사람들이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바탕에 있었다. 하고는 싶지만 어디서 어떻게 시작할지 모르는 분들에게 첫 발을 내디딜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어제 한 선배를 광흥창 역에서 만나 웹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지도를 받았다. 역 주변의 커피숍은 모두 테이크 아웃만 가능하다는 상황이 주는 적막함을 절감할 수 있었다. 길가에서 사람들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아직 영업이 가능한 작은 커피숍에서 마스크를 쓴 채 노트북을 펴고 지도받았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주는 따뜻함과 위로와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친절하게 가르쳐 준 후, 직접 만든 빵까지 전해 주셨다. 배우고 받은 것 자체도 고맙지만, 그 마음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고마움이다. 예전에는 일상적이던 이런 일들이 이제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될 정도로 세상이 변하고 있다.
광흥창에서 일을 마치고 집까지 한강 공원을 따라 두 시간 정도 걸어서 왔다. 한강변에는 아직도 수해의 잔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길도 중간중간 물이 고여서 우회를 할 수밖에 없었다. 간혹 자전거 타는 사람들과 걷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홀로 걸을 때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걷는데, 어떤 사람들은 불편하고 못마땅한 눈치를 주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앞에서 누군가가 오면 서로 얼굴을 돌리거나 턱스크를 올려 쓰기도 한다. 이런 외면은 타인을 위한 외면이다. 배려를 위한 외면으로 변한 것이다.
귀한 선물도 받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선승이신 송담 스님께서 그리신 ‘기우귀가 (騎牛歸家)’ 그림이다. 원본은 불사를 위해 다시 사찰로 돌려주셨고, 사본을 액자에 고이 모셔두었는데 그 사진을 전해주셨다. 내가 며칠 전 쓴 글 ‘심우도’를 읽고 좋아할 것 같아서 전달한다고 했다. 송담 스님을 몇 년 전 친견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받은 화두첩을 지금도 액자로 만들어서 보관하고 있다. 화두를 마음속에 늘 들고 다녀야 하는데, 집안에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 한심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어리석은 내게 그 친견이 주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친견한 후에 불교에 대한 모든 의문이 저절로 사라졌었다. 스님 말씀 외에 어떤 것도 들리거나 볼 수가 없었다. 송담 스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올바른 불교 공부법을 친절하게 지도하고 계신다. 기우귀가 한 후에 입전수수를 하고 계신 것이다.
송담 스님의 가르침, 선배의 지도와 따뜻한 마음, 준비하고 있는 웹진과 심신 치유 센터 ‘숨터’를 운영하는 것은 깊이와 넓이 그리고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실은 같은 맥락이다. 알고 있는 것, 갖고 있는 것, 경험을 통해 체득한 것 등을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알려주어 겪고 있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일이다. 코로나로 사람들 간의 관계가 단절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일의 소중함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나눔을 통해서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주는 따뜻한 위로와 편안함이 있다.
‘기우귀가’는 목동이 소를 찾아서 힘든 싸움 끝에 소 등에 타고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오는 그림이다. 탐심, 진심, 치심을 모두 조복 받고 상황에 끌려다니지 않는 수처작주 (隨處作主)의 삶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그 사진을 보며 ‘기우귀가’는 반드시 깨달음만을 위한 그림이 아니고, 모든 삶의 장애물과 함께 살아가는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들, 빈부 격차로 인한 상실감, 실패로 인한 절망감, 질병으로 인한 고통, 미움으로 인한 괴로움,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한 분노 등과 함께 슬기롭게 살아가는 것이 ‘기우귀가’이고, 그런 삶이 바로 ‘수처작주’의 삶이다. 어제 받은 ‘기우귀가’ 사진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시절 인연이 만들어 준 귀한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