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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일기 쓰기 시작한 지 1년

by 걷고

오늘이 걷기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몇 년 전 다니엘 페나크의 ‘몸의 일기’를 읽었다. 한 사람이 소년기부터 죽을 때까지 자신 몸의 변화와 세상의 변화를 보며 느낀 점을 일기 형식으로 써 온 글이다. 죽기 직전에 일기를 딸에게 전달했고, 딸이 책으로 출간했다. 전쟁으로 인해 몇 년간 쓰지 못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꾸준히 일기를 썼다. 그 책을 읽은 후 나도 나름대로 일기를 쓰고 싶었다. 책 제목도 흉내 내어 ‘걷고의 걷기 일기’로 정했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걸으며 정리한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걷고의 걷기 일기’는 아주 적합한 제목이라고 자화자찬한다. 걸으며 떠오른 생각, 만났던 사람들, 걸었던 풍경, 계절의 변화, 누적 거리 등을 글로 옮기고 있다. 걸었던 코스도 기록하고, 찍었던 사진 중 마음에 드는 사진을 한두 장 선별해서 같이 올리고 있다. 20, 30년 후에 일기를 읽으며 그때 걸었던 기억을 회상하며 상상 속에서 다시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기록도 오랜 기간 쌓이면 역사가 된다. 생각의 변화도 역사 속에서 발견해 낼 수도 있고, 옳고 그름도 역사가 판명해 줄 것이다. 가족의 변화도 가족 역사가 된다. 오랜 기간 꾸준히 하는 것은 일상의 균형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습관이 되면 습관이 우리 자신을 만들어 준다. 일기를 계속 쓰면 가끔은 걷기 싫어도 일기를 쓰기 위해서 걷는 날도 올 것이다. 몸이 노쇠해져서 걷기 힘들어도 걸으며 힘든 내용을 기록하기 위해서라도 억지로 걷기를 할 수도 있다. 그런 걷기가 하루 더 버티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아니고, 죽기 전까지 걷고 몸을 움직이며 살고 싶다. 편안하게 한 시간 정도 걷고, 샤워를 한 후, 한 시간 정도 명상하고, 마지막 일기를 쓴 후에 잠들면서 눈을 감을 수 있으면 좋겠다. 비록 욕심일지라도.


가족의 변화도 일기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내년 2월에는 손자가 태어난다. 손주들이 학교에 입학하고 기념하기 위해 가족들끼리 모이는 것도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글로 남겨질 것이다. 아내와 나의 늙어가는 모습도 글로 남겨질 것이고, 손주들의 성장하는 모습도 추억거리로 정리될 것이다. 사위와 딸의 변화되는 모습도 글로 남겨질 것이다. 지금은 30대인 아이들이 40대, 50대가 되면서 늙어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삶에 지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같이 힘들어 할 수도 있을 것이고, 행복한 순간을 지켜보며 같이 행복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가족과 나는 한 몸이 되었다. ‘그들’이 ‘나’이고 ‘내’가 ‘그들’이다. 그들의 고통과 행복이 바로 나의 것이 된다. 점점 더 이 사실을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다.


1년간 걸었던 거리가 2,554km로 하루에 약 7km 정도 걸었다. 목표인 10km에 비록 못 미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걸었다. 10km 목표는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고 싶다. 스스로 걸었던 누적 거리를 확인하고 싶은 생각에 기록하는 것도 하나의 재밋거리다. 언젠가는 손주들에게 내가 얼마나 걸었는지 자랑을 할 날도 올 것이다. 손주들이 어른들이 되고, 내가 아이가 되는 날도 올 것이다. 아이가 된 나는 손주들에게 걸은 누적 거리를 자랑하고 그들의 칭찬을 들으며 웃을 수 있을 것이다. 1년간 127개의 일기를 썼으니 약 3일에 한 건 정도 쓴 꼴이다. SNS에 올리기 때문에 ‘걷기 일기’는 잘 보관될 수 있다. ‘걷기 일기’가 나중에 책으로 발간되어 손주들에게 삶의 길을 밝혀줄 수 있는 등불이 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손주들을 위한 글을 쓰기 위해 나 역시 꾸준히 공부하고 노력하고 걸을 것이다. 일기가 나의 활력과 성장을 위한 방편이 되기도 한다. 나와 가족은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1년 전과 비교하여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걷는 속도가 조금 느려진 것을 가끔 느낀다. 또한 평상시 활동량보다 조금만 더 움직여도 몸이 피곤함을 느낀다.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약속은 하지 않게 되면서 삶은 점점 더 단순해지고 있다. 몸에 무리가 가는 과음도 안 하게 되고, 술을 마시는 횟수도 줄어들고, 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자연스럽게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 화내는 일도 많이 줄었고 무리해서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는 욕심도 많이 사라졌다. 그냥 하루하루 편안하게 보내고 있다. 일 년 뒤에는 또 어떤 일기가 나올지 궁금해진다. 아내와 주변 사람들 덕분에 이런 편안함과 행복함이 있게 된 것이다. 아내를 포함하여 모든 주변 사람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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