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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고 어울려라

by 걷고

요즘 날씨는 변덕이 심하다. 아침에 눈이 왔고 오전부터 바람이 불고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친구 두 명과 함께 은평구 봉산을 걸었다. 오후 1시에 만나서 걸으니 날씨가 푸근해졌다. 지자체에서 은평구 봉산에 산책길을 새로 조성해 놓은 길을 찾아 나섰다. 봉산에서 앵봉산으로 연결되는 이 길은 서울 둘레길 코스 중 하나로 제법 난이도가 있는 코스다. 하지만 오늘 길은 그 길의 일부와 봉산 옛 길을 구석구석 볼 수 있는 산책로로 인적이 드문 길이다. 내린 눈이 녹지 않아 조금 미끄럽지만 많이 얼어있지 않아서 걷기에 큰 불편함은 없다. 한적하고 걷기 편안한 좋은 길이지만 길 안내 표식이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아서 조금 아쉽다. 우리도 길을 잘못 들어서 엉뚱한 길을 걸었지만 산책로로 돌아오는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어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된 상태다. 이 기간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은 점점 힘들어하고, 서로 만나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모이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네 명 이하의 모임을 만들어 만날 사람들은 만나면서 나름대로 적응하며 살아간다. 지금 이 상태로는 금년 말이 되어도 마스크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옛날에 봤던 영화 중 사람들이 물속에서 살아가면서 손과 발에 물갈퀴가 생긴 것을 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물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진화가 발생한 것이다. 끔찍한 일이지만, 앞으로 태어나는 사람들은 생존하기 위한 신체적 진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망상을 해 본다.

가끔 같이 걷고 있는 친구들은 요즘 걷기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다. 한 친구는 이번 주 내내 출퇴근길에 많이 걸었다고 한다. 걷기를 마치고 생맥주 한 잔 하며 서로 속내를 얘기했다.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과 자신들의 속내를 얘기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각 가정마다 쉽게 말하지 못할 사정들이 있고 어려움도 있다. 우리네 삶에는 굴곡이 있다. 늘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늘 나쁜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이 섞여서 우리의 삶을 이루고 성장을 돕는다. 또한 자신과 타인의 고통을 통해서 삶 자체가 고통이라는 보편성에 대한 이해도 하게 된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도 삶의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움직이고 어울려라’라는 말이 있다. 힘든 상황에서도 몸을 움직이면 삶의 활기를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다. 홀로 견디기 힘들면 주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잠시 마음의 여유 공간을 찾아 회복할 힘을 얻을 수도 있다.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며 고통 속에서도 몸의 감각을 통해 순간순간 고통을 잊을 수 있다. 고통은 스스로 부정적인 생각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발생한다. 생각과 감정을 몸의 감각으로 변환시키면 생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고통을 잊게 되며 삶의 회복력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 친구들과 함께 걸으며 살아가는 얘기를 하는 것은 ‘움직이고 어울려라’에 아주 적절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친구들에게 평상시 생각해왔던 ‘걷고의 걷기 학교’ 개요에 대해 설명했다. 걷기를 통해 사람들의 심신 건강과 치유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다고 얘기하며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묻기도 했다. 다행스럽게 두 친구 모두 관심을 갖고 있고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조금씩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 특히 프랑스의 '쇠이유' 같은 걷기를 통한 ‘청소년 교화’ 프로그램과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 오랫동안 생각해 온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맞춤형으로 구성해서 제공할 수 있다. 큰 원칙을 알게 되면 응용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기본 원리는 걷기, 명상, 상담을 접목한 프로그램으로 대상들에 따라, 기간에 따라, 원하는 요구에 적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공할 수 있다. 직장인, 은퇴자, 주부, 청소년 등 다양한 대상과 기업체, 지자체, 학교, 사회단체 등 단체나 조직을 대상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과 접목한 심신치유 프로그램도 오랫동안 구상해온 프로그램이다.


미국에 외로운 사람들과 함께 산책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피플 워커(People Walker)라는 회사가 있다고 한다. 사람들의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함께 걸어주고 얘기를 경청하며 들어주는 일이다. ‘걷고의 걷기 학교’에 이런 내용을 포함시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걷기 동호회 활동에서 만난 사람들 중 가입 후 처음 발걸음을 하기까지 수개월 이상 걸린 사람들도 많다.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 참석을 꺼리기도 하고, 걷기에 자신이 없어서 걱정하기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불편해서 참석을 망설이기도 한다. 혼자 걸으려 해도 길을 잘 모르고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의 거리와 시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망설이는 사람들도 많다.


걷기 동호회에서 만난 60대 초반의 여성인 안개님은 평생 회사일과 집안 일만하며 살아왔던 사람이다. 아드님이 교통사고로 큰 곤경에 처했을 때, 엄마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무력감에 괴로워했다. 하지만 평생 아들을 책임져야 되겠다는 책임감에 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연히 걷기 동호회를 검색하다가 ‘걷기 마당’이라는 카페를 알게 되었다. 첫 발을 내딛기가 어려웠지만, 용기 내어 동호회에서 진행하는 해파랑길을 따라 걸으며 힘든 시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아드님은 건강하게 회복해서 직장 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한다. 길 안내를 하는 분의 봉사와 함께 걷는 길동무들의 격려 덕분에 어려운 시간을 버텨내고 극복할 수 있었다. 힘든 상황에서 ‘움직이고 어울리며’ 극복해 낸 것이다. 그녀는 해파랑길을 완주한 후에 남파랑길을 따라 걷고 있다. 걷기를 통해 힘든 시련을 극복해 낸 그녀는 요즘 걷는 재미에 빠져 하루하루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걷고의 걷기 학교’는 홀로 걷기 힘들어하는 분이나, 외롭고 마음이 아픈 분들, 어딘가 떠나고 싶은데 혼자 가기 어려운 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드릴 수 있다. 또한 걷기를 통해 심신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제공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걷기 학교’라는 문구가 조금 딱딱해 보인다. 만약 단체를 조직해서 운영한다면 ‘함께 걷는 사람들’ 또는 ‘함께 걸어요’라는 이름으로 단체 명칭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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