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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by 걷고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을 꼽는다면 주저 없이 ‘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과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이 두 권을 선택할 것이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사회인으로, 또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지 알려주는 지침서이다. 주인공은 고통을 노동으로 승화하고, 노동이 수행이 되고, 그런 삶 속에 평온한 삶을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 그분의 일상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풍요롭게 살 수 있게 되었다.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이전의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많은 종교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에 대한 얘기를 하고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종교의 많은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망 속을 헤매고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근본 원리에 대한 이해 없이, 또 간절함이 없이 그 가르침과 종교를 대하고 있기에 우리는 여전히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마음속에서 ‘행복한 삶’에 대한 간절함이 있거나, 삶의 의미와 태어난 의미를 갈구하는 분들에게는 감로수와 같은 책이다.


“자기의 ‘머릿속 목소리’가 실은 자신이 아님을 깨닫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유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누구인가? 자신은 생각하는 자신을 보고 있는 사람이다. 생각 이전의 그 알아차림, 생각이 일어나는 공간이 바로 자신이다. 에고는 형상과의 동일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 형상은 주로 생각의 형태이다.” (본문 중에서)

첫 도입부의 이 문장이 이 책의 모든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자신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말은 불교의 화두와 일맥상통한다. 형상으로 만들어진 자신의 모습이 아닌 본래의 모습, 즉 본성, 불성을 찾는 방법이 화두이다. 그 화두를 타파하면 견성(見性), 즉 본성을 보게 된다고 한다. 간화선(看話禪)은 화두를 보는 공부이다. 즉 ‘자신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아는 것이 간화선 수행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형상에 둘러싸인 에고를 보는 것이 아니고, 에고 이전의 원래 모습을 보는 것이다.


실상을 보기 위해서는 현재의 순간에 머물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의 내용물 즉, 재력, 명예, 학력, 지위, 체형과 얼굴 등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허상 이면에 감춰진 실상을 보는 것이다. 실상을 보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머물러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순간 형상에 사로잡힌 자신의 모습은 사라지고 본성이 드러나게 된다. 결국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참나’가 아니고 ‘거짓 나’ 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이 바로 무아(無我)이다. 나의 내용물과 형상이 ‘나’가 아니라고 알게 되면 불교의 핵심 가르침 중 하나인 ‘제법무아(諸法無我)’를 깨닫게 된다. 바꾸어 얘기하면 ‘무아’를 깨닫기 위해서는 자신의 형상을 버려야 하고, 버리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에 고요히 머무르는 것이 필요하다.


형상 속에서 당신은 언제나 어떤 사람보다 열등하고 어떤 사람보다 우월할 것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본질 속에서는 당신은 누구보다 열등 하지도 않고 우월하지도 안다. 진정한 자존과 진정한 겸손은 이 깨달음으로부터 생겨난다. (본문 중에서)


고요히 지금 이 순간에 머물면 모든 상(相)을 여의게 되고, 모든 상(相)이 사라지면 본래 모습이 홀연히 드러난다. 거울에 낀 먼지를 지우면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듯이. 그 본성은 열등하지도 우월하지도 않고, 줄거나 늘지도 않으며, 죽거나 살지도 않는다. 이분법적인 분별심은 본성이 가려진 어리석음, 즉 무명(無明)에 의해 시작된다. 이것과 저것을 나누고 분류하고 평가한다. 그런 분별심은 분열을 조장하고 ‘너’와 ‘나’를 분리된 존재로 보고, 타인을 경쟁의 존재, 투쟁의 대상으로 만든다. 상(相)이 있는 한, 또 상(相)에 집착하는 한, 이런 비교는 항상 존재하고 그로 인해 우리의 불행은 시작된다.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는 이런 비교와 분리하는 생각을 멈추고 자신의 본성을 보아야 한다.


깨어남은 그 안에서 생각과 알아차림이 분리되는, 의식 속의 전환이다. 자신의 호흡을 자각하십시오. 자신의 호흡을 자각하는 것은 생각으로부터 관심을 돌려 내적 공간을 만들어 준다. 당신이 해야만 하는 것은 그것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다. 긴장도 노력도 개입하지 않는다. 또한 호흡 사이의 짧은 멈춤을 주목하라. 특히 숨을 다 내쉬고 난 뒤 다시 들이쉬기 전의 고요한 지점을. 호흡의 자각은 당신을 현재의 순간으로 오게 한다. 이것이 모든 내적 변화의 열쇠이다. 호흡을 의식할 때 당신은 절대적으로 현재의 순간에 존재한다. 호흡에 의식을 집중하면 마음의 활동이 정지된다. (본문 중에서)


삶 속에서 깨어있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과 알아차림이 분리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생각’은 ‘형상’이고 ‘알아차림’은 ‘존재’이다. 그 원래의 존재를 알기 위해서, 보기 위해서, 찾기 위해서 하나의 방편을 제시한다. 바로 ‘호흡’이다. ‘호흡’은 바로 ‘지금이 순간’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아주 쉽고 효과적인 방편이다. 망상의 바다를 헤매고 있을 때 안전하게 닻의 역할을 해 주는 도구이다. 우리는 호흡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지만 호흡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호흡으로 돌아와 호흡을 관찰한다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생각과 알아차림이 분리되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다. 그 순간에 내적 공간이 만들어지고, 그 공간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볼 수가 있다. 내용물은 그냥 알아차리면 사라진다. 굳이 없애려 애쓸 필요가 없다. 사라지면 바로 실상이 저절로 드러난다.


내일부터 10일간 위빠사나 수행을 위해 ‘담마 코리아’라는 명상센터에 들어간다. 연말연시를 조금 의미 있게 보내고 싶고, 마음이 많이 산만한 것 같아 조금 차분해지기 위해서 신청했다. 약 2주 전부터는 상담 외의 모든 외부 활동과 모임을 자제하고 홀로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금 이런 시점에 이 책을 만난 것은 아주 큰 행운이다. 이 책이 지금 이 시점에 눈에 들어왔다는 것은 이 책과의 인연이 될 시점이 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우주의 질서와 흐름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 상황은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진리를 알려주고 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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